문화톡톡 – 결핍이 결핍으로 채워질 때 – 스티브 맥퀸, 영화 「셰임」

이승혜

결핍이 결핍으로 채워질 때

– 스티브 맥퀸, 영화 「셰임」

텅 빈 얼굴의 남자

한 남자가 나신으로 침대 위에 누워있다. 남자의 얼굴은 흡사 죽은 자의 것처럼 창백하다. 남자는 착잡한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영화 「셰임」의 첫 장면이다. 영화의 주인공 브랜든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하다. 수려한 외모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일하며 직장동료와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한마디로 그는 뉴욕의 성공한 여피다. 그런 그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의 생각이 온통 섹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그의 이러한 이중생활은 별 무리 없이 지속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비정상적인 생활은 순조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의 동생인 씨씨가 나타나면서 그의 일상은 삐걱대기 시작한다. 씨씨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떠돌이 가수로 브랜든의 친동생이다. 브랜든은 씨씨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씨씨 또한 브랜든 못지않게 비정상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데 이러한 그녀의 상태는 그녀가 브랜든의 집을 찾아온 그날 밤, 그녀가 ‘누군가’와 하는 통화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녀의 문제는 잠깐이라도 감정적으로 스쳤던 타인과의 관계에 집착한다는 것이며 이는 관계를 배제한 채 타인과의 쾌락에 집착하는 브랜든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어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결핍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씨씨는 브랜든을 설득해 뉴욕에서 공연하는 기간만 집에서 함께 지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낸다. 씨씨는 자신의 공연에 브랜든을 초대하게 되고 브랜든은 그 자리에 직장동료인 데이비드와 함께 찾아간다.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씨씨를 바라보며 브랜든은 눈물을 흘린다.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전 오늘 밤 떠나요.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그곳에는 작은 마을의 우울이 없을 거예요.

뉴욕에서 내가 해낼 수 있다면 난 어디서도 해낼 수 있을 거예요.

묘한 우울감을 주는 씨씨의 공연을 보고 데이비드는 호감을 나타내고 브랜든의 침실에서 씨씨와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 이미 가정이 있는 데이비드에게 씨씨는 그저 하룻밤 상대에 불과했지만 씨씨는 데이비드와의 관계에 다른 이에게 했던 것처럼 또다시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모습을 브랜든은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기만 한다. 

섞일 수 없는 관계욕망

그러는 사이 브랜든은 직장동료인 마리안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레스토랑에서 이뤄진 첫 데이트에서 중간중간 끼어드는 정적은 두 사람의 관계가 앞으로 공허해 질 것을 예견하듯 등장한다.

이 데이트에서 이뤄진 둘의 대화를 통해 영화는 브랜든이 가지고 있는 관계에 대한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브랜든은 마리아에게 자신이 이때까지 여자와 진지한 관계를 맺어본 적 없다는 것과 평생 한 사람과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이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마리안과 브랜든이 가지고 있는 관계에 대한 가치관이 조금씩 충돌하지만, 서로에게 여전히 호감을 느끼고 있던 두 사람은 다음 데이트를 기약한다. 다음 날, 브랜든은 마리안과 함께 호텔에 간다. 두 사람은 서로의 육체를 끌어안으며 감정을 교류하나 브랜든은 끝내 그녀를 돌려보낸다. 그녀를 보낸 후 혼자 남겨진 브랜든은 콜걸을 불러 마리안과 있던 자리에서 관계를 갖는다. 그에게는 의미 있는 ‘대상’이 아닌 자신과의 관계가 배제 된 ‘익명의 대상과’의 쾌락적 욕망만이 실현 가능한 것이다.

피학적인 쾌락을 향한 달음질

두 남매는 소파에 나란히 앉은 채 대화를 나눈다. 씨씨는 브랜든에게 “우린 결코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상처받은 사람일뿐이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두 남매는 그 자리에서 각자의 치부를 들추며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만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브랜든이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태가 된, 원인을 보여주지 않고 현재 그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 준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충족되지 않는 결핍을 결핍으로 채우는, 그래서 자신을 끊임없이 망가뜨리는 모습은 상영 시간 내내 지속된다. 이러한 스토리의 전개는 쾌락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배우들의 베드신이 주인공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불편함을 느끼게 해준다. 쾌락을 위해 끊임없이 달리지만, 고독과 결핍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시간에 인물들은 점차 스러지게 된다. 새벽이 어렴풋이 밝아 올 무렵, 브랜든이 집으로 가기 위해 탄 전철에서 사고가 난다. 그로 인해 길 위에 서있던 앰뷸런스의 소리가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고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브랜든은 씨씨에게 전화를 하며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끝이 나도 여전히 흘러가는 그의 욕망

영화 후반부에 텅 빈 길을 달리던 브랜든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우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모든 기행을 일삼은 그가 결국 다다르게 된 곳은 달리고 달려도 벗어날 수 없는 삭막한 분위기를 풍기는 넓게 펼쳐진 길 위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욕망한다. 그러나 욕망, 그 자체로 수치스러운 것이어서 타인에게 뿐만 아니라 스스로조차 인정할 수 없다면 욕망의 주체는 점점 지쳐가거나 무너지게 된다. 브랜든이 더욱 처참해 질 수밖에 없게 된 이유는 자신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욕망에 중독되어서일 것이다. 중독이란 완전히 채워지지 않아 대상에 지나치게 빠져들게 되어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다시, 전철 안에서 낯선 여자와 끈적끈적한 시선을 주고받는 브랜든. 영화는 절정을 넘어 숨을 고르지만 그의 성적인 유혹과 욕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해주며 막을 내린다. 그의 욕망은 여전히 스크린을 넘어 현실 속에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승혜 글을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을 좋아하며, 동물을 사랑한다. 3년 전 겨울에 분양받은 멍멍이 ‘도도’를 키우고 있다. 최근엔 애완견이 주인의 감정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도도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노력 중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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