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론 제5호 (2016년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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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시작했던 ‘자비의 희년’도 이제 차츰 저물어 갑니다.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며 저희도 그 자비를 실천하라는 초대에 얼마나 응답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를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으로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것, 상처받은 이를 위로하고, 용서하고 기도하기 등 여러 가지를 제시하였습니다(『자비의 얼굴』 15항 참조). 사회적 사랑을 실천하고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자비의 길이라는 초대입니다.

그래서 이번 《가톨릭 평론》 5호 특집에서는 우리 시대 이 땅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 고통받는 사람들이라고 여겨지는 이들과 함께 하느님 자비의 의미를 새겨보고자 했습니다. 독거노인, 이주민, 입시경쟁에 내몰린 청소년,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는 이들……. 고통받는 당사자 혹은 그들의 가장 가까운 곁에서 그 목소리를 전해줄 수 있는 이들에게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과연 자비는 누구에게?”라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있는 그분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비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기에 다른 가난한 이들과 서로 나누고 기대며 살고, 상처받았기에 다른 상처받은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연대하는 분들에게서 오히려 하느님 자비를 만납니다. 그분들이 보여주시는 자비의 얼굴에서 이 희년의 정신을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이번 5호에는 또 다른 특집이 ‘평화’인가 싶을 만큼 비평이나 인터뷰, 연재 내용 중에 평화와 관련한 주제들이 여럿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둘러싼 논쟁이 그만큼 뜨거운 탓이겠지요. 세상이 말하는 평화와 다른 그리스도인의 평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며 또 그래서 신앙의 길입니다.

 

* 제목 : 가톨릭평론 제5호 (2016년 9-10월호)

 

* ISSN : 2465-9487(977-2465-948005)

 

* 목차

[권두언]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 이미영

 

[특집] 자비, 함께 맞는 비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 최현숙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넘어 하느님의 자비로 | 네시포라 팍투란

‘나’와 ‘타인’이 함께하는 자비의 교육 | 황주환

희생된 이들의 존엄함 속에 계신 하느님 자비의 얼굴 | 정현숙

 

[사람, 그리고 사람]

민족의 화해와 형제애의 회복을 위하여 _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 편집부

일상과 관계를 회복하는 공동체를 꿈꾸는 생태철학자 신승철 | 편집부

찬미와 감사의 나팔을 불며 _살레시오회 왕 요셉 신부 | 권은정

 

[세계동향] 지금이야말로 무력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를

 

[비평, 시대의 소리]

히로시마에서 본 일본 가톨릭교회의 평화운동 | 이용철

무기로 이룰 수 없는 평화: 사드의 평화론 | 황동환

브렉시트의 교훈 | 안정현

파리 기후변화총회가 남긴 과제와 종교의 역할 | 김현우

영화 <곡성>과 근본주의: 선악의 이분법 | 박현준

세계청년대회 단상 | 김승한

사도 마리아 막달레나, 사도들의 교회 전통을 새롭게 말하다 | 최우혁

 

[나무메아리] 너의 생각 | 김유철

[서평] 행복, ‘being’이라 쓰고 ‘becoming’이라 읽는다_『행복의 기원』 | 김 랑

[문화비평] 믿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성찰한 <사이비> | 황진미

[성숙한 신앙] 신앙 언어의 역사적 상황 | 서공석

[성경으로 세상 읽기]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의 연대 | 송창현

[여성과 종교] 가정을 넘어 세상과 연대하는 여성 | 이은주

[가톨릭 건축기행] 상징은 성령을 통해 구체적 현실로 드러난다_김천 평화성당 | 조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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