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포도밭으로 가겠습니다, 주님!

윤성희

포도밭으로 가겠습니다, 주님!

 9월 28일, 연중 제 26주일 마태 21,28-32.

교황님께서 한국에 다녀가셨다.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렸다. 신자와 비신자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가시는 곳마다 가장 아파하는 자들을 먼저 챙기셨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이 외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교황님의 그런 행동은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었다. 나 또한 그 분께서 보여준 사랑에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8월 14일 오전 10시 30분, 교황님께서 탄 비행기가 서울공항에 착륙했다. 교황님을 영접하기위해 30여 명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 새터민, 이주노동자 등으로 소외계층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교황님께서 비행기에서 내려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누시다 세월호 유가족 앞에 서시며 한 손을 가슴에 올리셨다. 그리고 희생자들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교황님께서 그들 앞에 서시며 손을 가슴에 올리실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 후로도 교황님은 나를 여러 번 울렸다.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대전월드컵 경기장으로 들어서시다 세월호 가족들 앞에서 차를 멈추신 모습에서, 그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그들을 위로하시는 모습에서, 유가족들이 전해준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미사를 집전하시는 모습에서,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고 기도하시는 모습에서 난 울고 말았다. 진실로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계신 그 분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눈물들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평화방송을 통해 시복미사 중계를 보았다. 미사 전 서소문 성지에서 기도하신 교황님께서 시청에 도착해 카퍼레이드를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 “비바 파파”를 외치며 그 분을 맞이했다. 나의 마음은 광화문 광장 한 가운데 있었다. 자신의 딸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며 34일 째 곡기를 끊은 아버지가 거기 계셨기 때문이다. 교황님께서 탄 차가 제대 앞에 도착한 후 다시 반대방향으로 돌았다. 손을 흔들며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미소로 답하시던 교황님께 통역하는 사제가 다가섰다. 두 분이 대화를 나누시자 차가 멈췄다. 교황님께서 두 손을 모으고 잠시 기도하신 후 차에서 내려오셨다. 그리고 단식중인 유민아빠에게 다가가셨다. 교황님께서는 유민아빠가 내민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식 잃은 아비를 위로하셨다. 그리고 그가 건넨 노란 편지 봉투를 수단 주머니에 넣으셨다. 교황님의 이런 모습은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교황님의 모습에서 아픈 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하시는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다음 날 교황님께서는 세례성사를 집전하셨다. 아들을 잃고 십자가를 멘 채 800㎞를 걸었던 한 아버지가 ‘프란치스코’로 새롭게 태어났다. 비록 교회가 정해놓은 교리를 받지 않았지만, 교황님께서는 그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씀하셨다. 세례를 받기 전, 성전에 앉아 기도하는 그를 방해하지 않으시려고 교황님께서는 오랫동안 뒤에서 기다려주셨다고 한다. 한 없이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교황님의 모습을 보면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프고 병들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연대하고, 그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멈추어 서는’ 신앙인의 모습을 말이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큰아들도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포도밭으로 가서 일하라”고 이르신 주님의 말씀에 비록 ‘싫다’고 했지만, 마음을 바꿔 행동으로 보여주던 큰아들….

낮은 곳으로 향하는 교황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그분의 부르심에 크게 대답하고 행동하는 큰아들이 되고 싶어졌다. 주님께서 ‘가서 일하라’고 하시는 포도밭이 어디든, 그 곳에서 ‘아가타’라는 이름으로 ‘아가타’답게 행동하며 살고 싶다. 30년 전, 그 분의 부르심에 “예! 주님!”이라고 대답했던 것처럼 그 분이 보내시는 포도밭으로 달려가, 그 밭을 일구는 일꾼이 되고 싶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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