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2014년에게

윤성희

2014년에게

 12월 28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가정 성화 주간, 루카 2,22-40

너를 처음 맞이했던 날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몹시 아팠다. 몸에 생긴 어떤 이상이 내 기운과 기분을 모두 침체시켰다. 그래도 새해가 되면 그 병이 나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래서 네가 반가웠다. 너를 맞이하며 나도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면역력을 잃어 헤매던 몸들이 조금씩 회복을 하려고 할 때, 여기저기서 비보가 들려왔다. 아끼던 사람들의 묘비에 너의 이름이 새겨졌고, 마음이 한 동안 휘청거렸다. 슬픔을 채 거둬내기도 전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꽃 같은 아이들이, 누군가의 엄마와 아빠가 되돌아오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온 가슴이 슬픔으로 물들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절망과 슬픔과 분노가 치밀었다. 밀양의 할매들과 강정의 활동가들이 경찰에게 들려 나가고, 2,000일을 길 위에서 보내던 아버지들은 결국 회사로 돌아갈 수 없다는 판결을 들어야 했다. 아버지의 복직을 소망하던 아홉 살 아들이 눈물을 터뜨렸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엄마들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꿈을 향해 달리던 아이들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갔던 젊은이들이 피멍이 든 주검이 되어 부모 곁으로 돌아왔다. 나의 청춘을 위로해주던 노래들이 주인을 잃었고, 함께 투병하던 한 여인이 삶의 여행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갔다. 환풍기 위에서도 목숨이 무너졌고, 펜션과 요양원에서도 생명은 사라졌다. 모질게도 너는, 견디기 힘든 이별을 수없이 허락했다.

너의 모든 날이 끝나면 가슴에 새겨진 아픔이 지워질까. 네가 가고 새날이 오면 우리의 눈 앞에도 정말 새로운 날들이 펼쳐질까. 너를 보내며 나는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보았다.

만약에 봄에 떠난 사람들에게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허락됐다면, 꽃 같은 아이들이 그 배를 타지 않았다면, 아니 착하게, 너무나도 착하게 가만히 있던 아이들이 구조됐더라면, 밀양과 강정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뒀더라면, 복직을 바라던 아버지들에게 회사로 돌아가라는 판결을 내렸다면, 꿈을 향해 달리던 아이들이 빗길에 미끄러지지 않았다면, 군대의 상사들이 후배들을 사랑으로 껴안아 주었다면, 두 아이의 아빠인 그가 아이들과 더 오랜 시간을 머물 수 있었다면, 소녀처럼 웃던 그녀가 선후배들과 함께 다시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면 나는 너를 보내며 희망과 마주했을까.

세상에 내려와 살면서 올해처럼 이렇게 마음이 힘든 적이 없었다. 올해처럼 이렇게 수많은 이별을 목격한 적이 없었다. 너와 함께 했던 부활은 탄식의 부활이었고, 너와 함께 맞이할 성탄도 환한 기쁨은 되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무거운 마음으로 성탄을 맞이하게 될 것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내게 ‘희망’을 얘기한다. 이렇게 아파하고 슬퍼하는 자들을 위해서 내가 ‘사람이 되었다’고. 깊은 슬픔과 절망을 짊어지기 위해 내가 세상으로 내려왔다고. 그리고 한 어머니에 관해 말씀하신다. 아이로 인해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고통을 받을 한 어머니를.

세상의 왕이 될 아이를 낳았다는 기쁨도 잠시,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고통을 받는다는 예언을 들은 어머니를 보면서 비로소 나는 깨닫는다. 기쁨과 슬픔은 언제나 하나의 길 위에 나란히 있고, 희망과 절망은 다른 이름이 아니라 결국 같은 이름이라는 것을. 그래서 2014년의 끄트머리에서 너를 보내며 너를 다시, 생각한다. 너 또한 슬픔만은 아니었으며, 절망만은 아니었다고. 내가 너를 견디며 아직 여기 있을 수 있었던 건 너의 어딘가에서 기쁨과 희망을 만났기 때문이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작은 목소리로 이별의 인사를 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웠다고, 너도 매우 힘들었을 테니 이제 그만 편히 쉬라고.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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