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날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되는 일

지요하

날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되는 일

12월 21일, 대림 제4주일, 루카 1, 26-38

매일 오후에는 한두 시간씩 걷기운동을 할 수 있는(또는 해야 하는) 처지라 비교적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며 생활한다. 복음을 실천하기 위한 내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참여도 많이 하기에 분주히 움직이는 편이다. 움직일 때마다 늘 묵주를 손에 지니고 다닌다.

심지어는 운전을 할 때도 묵주기도를 한다. 왼손잡이라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묵주를 쥔 채 변속기를 작동하기도 한다. 장거리 운전을 할 때는 가끔 졸음 방지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과자 따위를 먹기도 하는데, 주로 ‘환희의 신비’를 바칠 때 먹곤 한다. ‘환희의 신비’ 2단을 바칠 때는 성모 마리아님과 친척 언니인 엘리사벳님이 반갑게 만나 즐겁게 음식을 나누는 장면을 떠올리기도 한다. 또 ‘빛의 신비’ 2단을 바칠 때는 가나의 혼인 잔칫집 풍경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러면 과자 맛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고통의 신비’를 바칠 때는 절대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씹던 껌도 뱉는다.

하루 두 시간가량씩 걷기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묵주기도 덕분이라 생각한다. 혼자 그냥 걷기만 한다면 몹시 지루하고 힘도 많이 들 것 같다. 묵주기도를 하며 걷기에(영적인 동행자들이 있기에) 지루한 줄을 모르게 되는 것 같다. 왕복 두 시간을 걸으면 묵주기도 50단을 너끈히 바치게 된다. 고로 나의 걷기운동은 일석이조가 된다. 건강에도 좋고 기도도 많이 바치는 일이니 말이다. 여기에 뭔가를 생각하고 사색하는 것을 합하면 일석삼조가 된다.

이렇게 밥 먹고 잠자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를 제외하고는 늘 묵주를 쥐고 생활하니, 하루에 보통 7∼80단씩 묵주기도를 하게 된다. 레지오 쁘레시디움 주회 때는 묵주기도 실적을 보고하는데, 나는 매주 500단 이상씩 보고를 한다.

묵주기도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나 자신이 스스로 가브리엘 대천사가 되는 일이다.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되어 가브리엘 대천사의 일을 내가 오늘 대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되어 나자렛 시골 처녀 마리아께 가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것은 구세사의 시작을 여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묵주기도를 통해 오늘도 그 일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묵주기도를 통해 가브리엘 대천사의 일을 수없이 반복하기는 하지만, 나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모습은 알 수 없다. 성경에는 가브리엘이라는 이름과 하느님의 뜻을 마리아께 전하는 역할만 기록되어 있을 뿐 그의 모습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그가 날개를 달고 왔는지, 온몸에서 하늘의 별과 같은 빛이 났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하늘에서 내려와 홀연히 나타났는지, 길손의 모습으로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가 천사인지를 마리아가 어찌 알았을지도 궁금하다. 그가 천사라는 증표가 없으니 순진한 시골 처녀 마리아는 당황하며 혼란을 겪었을 법도 한다.

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가브리엘 대천사는 어떤 모습으로 자신이 천사인 것을 드러내지 않고 ‘말’로써 자신이 하느님의 사자인 것을 드러낸다. 마리아께 은총(성령)이 가득하다는 말을 하고,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말을 하고, 세상의 모든 여인 중에서 가장 복된 여인이라는 말도 한다. 그리고 처녀인 마리아의 몸에서 아기가 잉태하리라는 말도 한다.

그 말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말이고, 상상할 수조차 없는 말이다. 그 ‘말’로써 가브리엘 대천사는 자신이 하느님의 사자인 것을 입증한다. 그 말의 진실성 여부는 곧 마리아의 몸에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말은 얼이고 생명이다. 모습보다 말이 더 중요하다. 가브리엘 대천사의 모습은 각자가 자유로이 상상할 수가 있지만, 그가 마리아께 한 말은 불변과 불멸의 절대성을 지닌다. 나는 매일같이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내 모습은 언제든 자유롭게 변모시킬 수 있다. 계절에 맞게 옷을 바꾸어 입을 수 있고, 샌들을 신거나 운동화를 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브리엘 대천사가 마리아께 전한 말은 절대 변할 수가 없다. 구세사의 시작을 열었던 가브리엘 대천사의 말, 마리아께 전했던 예수님 탄생 예고는 2천 년 동안 줄기차게 이어져 내려오며 오늘도 전 세계 가톨릭교회 신자들의 묵주기도를 통해 무수히 반복 재생된다.

나는 오늘도 삼종기도와 묵주기도를 바치며 가브리엘 대천사가 되고, 가브리엘 대천사의 역할을 대행하며, 하느님 안에서 가브리엘 대천사와 성모 마리아님께 함께 구세사를 새롭게 열어가는 일에 반복적으로 동참한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2월호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