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농민의 빈곤과 전인적 인간 발전 – 알고 믿고, 믿고 알고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

아시아 농민의 빈곤과 전인적 인간 발전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신학연구소는 아시아 청년활동가 워크숍과 신학포럼을 열었다. 아시아평화연대센터가 부설로 문을 연 바로 다음해인 2005년에 첫 국제 실천신학 포럼을 열었으니 올해로 10년째가 된다. 아직도 한국천주교 운동 안에서조차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당시로서는 재정과 인력배분에서 ‘무리’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모험이라고 받아졌을 법하다. 크고 작은 국제 행사들을 해나가면서, 우리신학연구소의 창립정신에 부합하도록 현장 지향의 활동가와 신학자를 초청해 ‘아시아 신학’의 발전을 위한 교류요 실험의 장으로 나름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9년부터 새로운 신학자 발굴과 신학 발전이라는 의미에 더해 아시아 청년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평신도 양성’을 겸하면서 점점 더 청년 양성 쪽에 무게를 두게 되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름도 ‘아시아청년아카데미’(AYA)와 ‘아시아신학포럼’(ATF)으로 공식화하고 며칠간의 현장체험을 포함해 꼬박 한 주를 아카데미에 배정하고 이어 2-3일 동안의 신학 포럼으로 청년활동가 워크숍에서 다룬 내용을 신학적으로 논의하고 풀어내어 아카데미를 지원하는 형식의 통합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확인하는 것은 국내 평신도 양성만큼이나 아시아 청년활동가 양성도 절실하고 시급하다는 사실이었다. 국내는 사회교리나 신학, 영성에 관해서 활동가들 개인이나 단체가 관심을 기울이면 영적 갈망이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힌두, 이슬람, 불교가 다수인 아시아에서 극히 소수인 그리스도교 기반 활동가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원의식에 대한 신념을 깊게 하고 확신을 갖도록 힘을 부여받을 곳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이 통합 프로그램은 그러한 상황에서 청년 참가자들에게서 하나의 요청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데서 필연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올해는 인도가톨릭농민회와 국제가톨릭농민운동연맹(FIMARC)과 공동으로 지난 7월 인도 케랄라 주에서 아시아청년아카데미와 실천신학포럼을 개최했다. ‘새천년개발목표’(MDGs), 인간발전, 생태계 지속성의 문제를 아시아 농민의 빈곤을 중심 주제로 삼아 12 나라에서 온 청년들의 활발한 참여 속에 열렸다.

인도주교회의 의장인 바실리오스 클리미스 가톨리코 추기경은 축사를 통해 인간 발전과 농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아시아 농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현 시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면서 아시아 청년들의 깊은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산업화에 밀려 농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의식은 바뀌어야 하며 인류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농업은 변화하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실리오스 추기경은 이 행사가 아시아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농업의 위기 상황에 대해 성찰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실천적인 토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바실리오스 추기경은 인도 가톨릭 인구 2000만명의 수장으로 시로-말란카라(Syro-Malankara Catholic) 전례 교회에 속해 있다. 인도주교회의 의장이 바쁜 일정에서도 이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행사 주제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조목조목 얘기한 것은 축사 그 이상의 의미가 있으며, 주최한 연구소 처지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바실리오스 추기경에 따르면, 인도 가톨릭 교회는 성 베드로에 기원을 두고 있는 라틴 전례 교회와 토마스 사도에 기원을 두는 시로-말라바르(Syro-Malabar Catholic) 및 시로 말란카라 전례 교회로 구성되어 있다. 인도 가톨릭 인구의 25퍼센트가 케랄라주에 산다.

인도 남부에 있는 케랄라주의 벤지거 영성센터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네팔,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스리랑카, 태국, 필리핀, 프랑스, 한국 등 12나라에서 50여명의 대학생, NGO활동가, 교사, 인권 변호사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참가해 아시아 농민 빈곤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3일 동안 농촌지역에 세 곳으로 나눠 현장체험을 하고, 인도 농민들의 현실을 경험했다.

농촌 현장체험에 이어진 워크숍에서는 아시아 농민의 빈곤과 생태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인도가톨릭농민회 니콜라스 치나판 회장은 인도 농민들이 처해있는 실상을 언급하며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서 전통적 농법’을 소개하고 초국적 기업의 대규모 플란테이션 농법에 맞서 소규모 ‘가족 중심’, ‘공동체 중심’ 농법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민이란 직접 자신이 농사를 짓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면서,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이들이 ‘농민’으로 분류되어 정부지원이 이들에게 돌아가고 있어 실제 농민의 빈곤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최근 인도 농민들의 자살문제가 크게 늘어 사회문제화 하고 있다면서 자살의 원인이 농민의 토지 소유문제에 있으므로 토지 개혁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아시아주교회연합 인간발전사무국(FABC-OHD) 전 사무총장인 데스몬드(Desmond de Sousa) 신부는 ‘진정한 인간 발전에 관한 가톨릭 사회교리‘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진정한 인간발전은 경제 중심적인 논의를 넘어 협동과 친 생태적 삶으로의 변화, 약자에 대한 배려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도의 다수를 차지하는 토착민과 하층민에 대한 이해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라면서, 이들에 대한 배려 없이 개발을 추구하면 부의 불평등은 심화될 것이며 그에 따른 사회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가톨릭 사회교리는 가톨릭 신자들이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지침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특정 계층이나 집단만의 발전은 사회교리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진정한 인간발전은 개인과 전체 인류(each man and the whole men)가 함께 발전해야 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궁극적으로 가톨릭 사회교리를 통해 인간발전을 실현하려면 약자를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천신학포럼에서는 ‘인간발전의 영적 차원과 생태적 지속가능성’, ‘세계 식량 주권에 비춰 본 농업의 미래’, ‘아시아 농촌 지역의 여성 인권 문제’와 ‘새천년 개발계획’을 넘어: 힌두교, 불교, 그리스도교의 영성‘ 등의 강연과 인도차이나 반도의 메콩강변 대형댐 건설 문제, 스리랑카 타밀족 난민 인권 문제 등에 관한 특별 보고가 이어졌다.

이 행사에는 인도가톨릭농민회 니콜라스 치나판 회장, 태국 환경단체 ‘흐르는 강 시암 협회’ 티라퐁 포문 대표, 동아시아사목연구소 부소장 조조 펑 신부, 인도 감리교 남부교회 다니엘 프리쿠마르 목사, 인도네시아 여성농민운동가 안나 위두리, 프랑스 가톨릭주교회의 국제선교부 책임이사 안톤 손닥 신부, 힌두 아쉬람 센터 싯다르타 소장, 남아시아분쟁연구 네트워크 샨티쿠마르 히티아라치치 연구원, 토착민 출신으로 토착민 영성 전문가인 침례교 신학자 양카오 바슘 등 아시아권 NGO활동가들과 신학자들이 발제자로 참가했다.

앞서 말한대로 아시아평화연대센터는 2005년부터 해마다 아시아 신학과 관련한 국제포럼을 열어왔으며, 아시아 신학포럼과 연계한 청년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을 연례행사로 주제에 따라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열어왔다. 2009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종교간대화와 평화를 주제로 행사를 개최한 이래, 2010년 말레이시아에서 이주노동자와 난민을 주제로, 2011-2012년에는 서울과 수원에서 세계화, 생태위기, 핵문제를 중심 주제로, 또 지난해에는 태국에서는 개발과 생태 지속성을 토착민의 삶의 위기를 중심으로 다뤘다. 이번 인도에서 개최한 행사에는 인도대사관(영사관)에서 타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에서 신청한 6명의 비자를 거부하여 이들이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현지 경찰이 이번 행사의 공동주최 단체 대표 집으로 찾아가 심문하고 행사 중에도 행사장에 와 센터 소장 신부와 주최자들을 심문하는 등 소수 그리스도교에 대한 압력을 피부로 절감할 수 있었다. 결국 신학포럼은 외부 신자들이나 다른 종교인을 초청하지 못하고 내부 행사로만 끝낼 수밖에 없는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어야 했다. 이는 거꾸로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기반 활동가들이 얼마나 험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따라서 그에 대한 지원과 양성이 왜 필요한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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