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이 노래 같이 들어요! – 틴탑의 Don’t I 와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유정원·강민영 

엄마, 우리 이 노래 같이 들어요!

– 틴탑의 Don’t I 와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민영이의 노래_ 틴탑 Don’t I

우리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매일 하는 얘기가 있어. “너네 이렇게 공부 안 하면 고등학교 가서 망해. 공부 좀 해라. 시험이 코앞이다. 인천 학력수준이 전국에서 꼴등인데 우리 학교는 인천에서 꼴등이야.” 상위권 애들한테는 “너희 여기서 잘한다고 잘하는 거 아니다. 예습 꼭 해라.” 이러시고. 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솔직히 나쁜데, 별로 틀린 얘기 같지는 않아. 그래서 내가 학원 보내달라고 하는 거야. 엄마도 알다시피 내 꿈은 선생님인데, 사범대 가려면 공부해야 하잖아. 요즘 이런 압박과 걱정으로 점철된 하루를 보냈는데, 재미있는 노래를 발견했어. 틴탑의 Don’t I. 일단 가사부터.

이제는 좀 제발 나 좀 내버려둬, 난 좀 다를 뿐

세상에 대부분인 많고 많은 분들과는 다른 꿈을 꾸는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닌데, 뻔하디뻔한 틀에다 맞추기가 싫은데

혼자서 또 튄다고 딥다 맞지

돌고 도는 세상을 따라서 같이 돈 것뿐인데, 나를 미친X 라고들 부르네

오 제발 나를 가둬두려고 하지 마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 내겐 그런 네가 더 이상할 뿐이야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에서 소신 있게 혼자 뚜벅뚜벅

나중에 난 큰 별이 될 거야, 천편일률적인 교육시스템을 강요하면 mistake

no more 새장 속의 새, 이제 나한테 접혀있는 날개 펴고 fly away

어때, 재미있지 않아? 10대의 패기가 느껴지지?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어. 특히 ‘세상에 대부분인 많고 많은 분들과는 다른 꿈’ 이 부분에서. 내 꿈이 선생님이라고 했지? 그런데 아직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지만, 사실 이 꿈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어. 아직 선생님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시기에 선생님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더러 한 선생님이 “가고 싶은 과가 있냐?”는 거야.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라고 말을 했더니, 다른 선생님이 “취업하기 싫으냐?”고 엄청나게 한심하다는 듯이 말씀하셨어. 내 성질 그대로 눈을 부라리면서 “뭔 상관이냐?”고 따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순간 말문이 턱 막히더라고.

그때부터 내 꿈은 선생님 겸 작가로 정했어. 물론 ‘돈을 벌려면 선생이라도 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꿈을 정한 건 아니고, 전부터 어렴풋이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다만 확실하지 않았을 뿐이지. 어쨌든 그다음부터 누가 나한테 “가고 싶은 과가 있냐?”고 물어보면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들어가고 싶다”고 대답해. 그 후로는 나한테 “취업하기 싫냐?”고 되묻는 사람은 없어.

이 노래를 들으니까 딱 이 생각이 났어. 아아, 나는 ‘천편일률적인 교육시스템’에 적응되어 ‘세상에 대부분인 많고 많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나는 ‘이상한’ 사람인가? 이렇게 자기반성을 하다가 또 이번에는 화가 나는 거 있지. ‘아니 쫌 뻔하면 어때? 뻔한 꿈은 꿈 아냐?’ 나는 ‘미친X’라는 소리 듣기도 싫고, ‘딥다 맞기’는 진짜 싫거든.

그냥 평범하고 안전하고 무난하게 살면 안 돼? 엄마도 내가 이상해? 아직도 그 선생님 눈빛과 말투가 잊히지 않는 걸 어떡해? 어릴 때부터 선생님들께 칭찬받고 자라서 그런지 너무 속상해. 나중에 커서 취업 못 하고 쩔쩔매고 있을 생각 하면 암담하고 벌써 창피해. 그렇다고 내가 취업하겠다고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하겠다느니 뭐 이런 건 아니잖아. 난 가르치는 거 좋아해! 국어도 좋아하고, 애들도 좋아하고.

내가 괜히 찔려서 이러는 거야? 근데 엄마, 대체 뻔한 꿈은 뭐고 안 뻔한 꿈은 뭐야? 뻔한 꿈이라도 꿈은 꿈인 거잖아. 난 진짜 모르겠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나는 ‘새장 속의 새’인건가? 새장 속에서 날개를 접고만 있는 건가? 그런데 만약에 내가 닭이면 어떡하지? 그래서 날개를 피고도 날지 못하면 어떡하지? 무섭고 두려워서, 나는 빨리 어른이 되길 바라면서도 그냥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어. 나는 진짜 ‘잘’ 살고 싶은데, 뭐가 ‘잘’ 사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나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엄마의 노래_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엄청난 화두를 나에게 던진 너에게 나는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네가 살아온 날들의 세배를 살아오면서, 나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지금 어떻게 사는 거지?’ 참 많이도 스스로 물어보았지만, 그때마다 속 시원한 해답을 찾았다고 기뻐했던 기억은 없었어. 이런 서툰 엄마가 너에게 해줄 말은 그리 넉넉하지 못함을, 양해해주기 바라.

어려서 일찍 한글을 익히고 그림책을 장난감 삼아 방안 가득 펼쳐놓고 읽던 너를 보면서, ‘우리 딸이 책을 좋아하는구나.’하고 기뻐했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300쪽 정도 되는 창작소설을 두세 시간이면 너끈하게 읽어내는 너를 바라보면서, ‘정말 빨리도 보네. 내용을 다 이해하고 책장을 넘기는 건가?’ 싶어 “어떤 내용인지 읊어봐.” 주문하기도 했었지. 네가 하도 책을 재미있게 읽으니까, 동생 녀석도 어느 틈엔가 물들어서 나란히 앉거나 엎드려서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는 모습은 고흐의 그림보다 내 눈에 더 황홀했지.

너의 꿈과 장래희망은 작가가 되는 것이고,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어. 그만큼 책이 전해주는 흥미진진한 세계에 흠뻑 매료되어 있다는 증거이고, 그렇게 멋진 작가들과 나란히 너도 자신만의 글을 써서 새롭고도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겠다는 뜻이기에, 아빠와 나는 마음속 깊이 흐뭇해하고 있단다.

그런데 네 글을 보거나 평소에 너와 대화할 때면, 너는 너 자신과 꿈을 틀에 박힌 뻔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걸까? 사실 틴탑의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에서 소신 있게 혼자 뚜벅뚜벅’이라는 노랫말 그대로, 네 꿈은 소신 있게 한결같잖아. 물론 학교라는 ‘천편일률적인 교육시스템’ 속에서 10대를 보내고는 있지만, 아빠와 나는 다른 삶을 살고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려 노력해왔는데, 그 약발이 별로인가?

네가 중학교에 들어가 좋은 작가가 되려면 생계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냉혹한 현실을 알게 되었고, 안정된 월급이 보장되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해. 그도 그럴 게, 네가 지금까지 접해본 직업군 중에서 ‘교사’가 가장 많았으니까. 너는 곧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교도 다니게 되겠지. 그러면서 너의 꿈과 장래희망은 조금씩 조금씩, 아니 어쩌면 아주 다른 것으로 변할지도 몰라. 그것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 그렇게 이것저것 둘러보고 헤맨 후에야 정말 자신의 소중한 길을 찾아 걸어갈 수 있을 테니까.

너에게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소개해주고 싶구나. 첫 앨범을 발표하고 공연을 준비하다가 교통사고로 요절한 정말 아까운 싱어송 라이터(singer song writer)야. 그가 이 노래를 만들 때는 아마 20대 청년이었겠지.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갯속에 싸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이끌려가듯 떠나는 이는 제 갈 길을 찾았나

손을 흔들며 떠나보내고 외로움만이 나를 감쌀 때

그대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네가 어리바리한 엄마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는 것처럼, 유재하도 ‘그대’에게 자신의 길을 묻고 있어. 유재하도 자신의 꿈과 미래가 무척이나 답답하고 안 보였던가 봐. ‘가리워진 길’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으니.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때론 어깨를 기대고 싶은 누군가를 두리번거리면서, 때론 혼자서 비틀비틀 아득하고 가물거리는 길 앞에서 흐린 눈빛으로 내 갈 길을 되물으면서.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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