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떠나는 아시아 여행 – 민간 신앙과 과학의 맹신

황경훈(아시아평화연대센터장)

민간 신앙과 과학의 맹신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과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덮어 놓고 믿어버리는 경향을 보이게 된 듯합니다. 별로 주위를 기울이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았던 것도 ‘과학적’이라는 말을 붙여놓으면 이상하리만치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심하게는 맹신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종교와 관련해서는 그러한 면이 더 두드러집니다. 이를테면 민간신앙이나 전승은 미개하고 미신적인 것으로 배척해야 할 대상임에 비해서, ‘객관적’인 근거가 있다고 믿는 과학은 인간에게 새롭고도 확실한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부동의 신뢰를 받고 있는 현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요. 갑자기 웬 과학 타령인가 궁금해하실 텐데, 사실 멀리 있는 남의 얘기 같지만, 아시아 여느 나라에서나 어렵지 않게 민간의 지혜와 전통이 이 ‘과학’이라는 위세에 눌리거나 밀려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의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의 변방으로 동쪽 끝에 자리하고 있던 동티모르(티모리스테)로 여행을 떠나면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기로 하지요.

점쟁이 여인과 과학

 

동티모르의 한 오지 마을에 사람의 과거, 현재는 물론 미래가 어떨 것인가 내다본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마탄도옥이라고 불리는 한 나이 많은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가 사는 오두막은 작고 낡았지만, 치유 받고자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환영했다. 마탄도옥은 점을 보러 오는 사람에게 늘 세 가지를 물었다.

우선 마탄도옥은 병자들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묻는데, 이는 자신에 대한 생각이 건강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이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마탄도옥은 이웃과 관계가 깨졌을 때 병이 든다고 설명하는데, 그 깨어짐이 심정적 불안을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다른 생명체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묻는데, 이는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건강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 사람이 건강하거나 병이 드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삶을 살아가느냐에 있다고 철저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은 뒤 마탄도옥은 대개 환자에게 어떤 관계가 깨졌다거나 거짓은 없었는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보라고 권고한다. 한 환자가 자기 병이 미움에서 생겼음을 알아차리면, 그것이 자신이나 이웃을 향한 것이든 또 어떤 것이든 간에 마주 대면하게 하고, 그런 다음 환자에게 자신과 또는 다른 사람이나 자연과 대화하라고 용기를 북돋는다. 치유는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가능하다.

어느 날 몇몇 사제가 마탄도옥을 찾아와서 그녀에게 그 같은 ‘미신적’ 치료를 그만두라고 말했다. 이들에 이어 경험이 많은 심리학자가 와서 마탄도옥이 치료하는 방법과 과정을 분석하고는, 그의 치료법은 심리적 상처를 입은 사람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미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의 것이라고 단정했다.

사제들과 심리학자는 마탄도옥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리고 결국에는 쫓아 버리고 말았다. 그런 뒤 사제들은 ‘대화와 화해’에 대해서, 또 자신과 이웃, 모든 창조물과 하느님과의 평화에 대해서 설교했다. 한편, 심리학자는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내적 느낌과 소통에 대한 현대식 고등교육으로 무장한 메시지를 전파했다.

 

출처: 『Once Upon a Time in Asia』, (Orbis Books, 2006)

소개는 ‘점쟁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이야기는 마탄도옥이라는 여인이 ‘치유자’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네요. 물리적인 치료보다도 치료받고자 찾아온 이들을 ‘병자’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모든 관계의 복원을 돕기 위해 조언하는 정신적 스승이나 영성가, 또는 마을 사람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나름의 해소책을 제시하기도 하는 마을 촌장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서는 이런 역할을 하는 마탄도옥에게 기성 제도 종교의 성직자와 현대 과학으로 철저히 교육받은 심리학자가 찾아와 대화와 화해를 설교하고 하느님의 평화를 선포하면서, 매우 역설적이게도 마탄도옥을 쫓아내 버립니다. 이야기는 마탄도옥이 ‘관계의 복원’을 위해 자신을 솔직히 들여다보는 성찰의 과정에서 원인을 찾아내고 스스로 치유하도록 돕는 것 이외에 다른 치유행위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것만 가지고 어느 종교인지는 모르지만, 일군의 사제들과 심리학자가 그녀를 쫓아내버리는데, 이유는 그녀가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면서 그 정도로는 양이차지 않았는지, 마탄도옥은 미개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무엇을 하는지조차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쐐기를 박습니다. 그러면 과학의 크게 발전했다는 오늘날 사람들의 삶이 더 각박해지고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병자들이 더 많아지는 것을 과학이 왜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덧붙여 말해본다면, ‘인간에게 삶은 무엇이고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인 물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시만 생각해보아도 여러 행성으로 우주선이 오가고 조만간 복제인간이 등장한다는 ‘과학’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그전보다 행복하고 질적으로 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 생각해봅니다.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답이 나올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 현실 앞에 ‘과학’은 너무 무력하지 않은가 묻게 되는 것이지요. 나와, 이웃과 자연 및 온 우주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온전한 치유를 이룰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거짓됨을 직시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마탄도옥의 치유법은 미신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 심리학과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또 내적 자아를 만나기 위해 여러 명상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의 모든 종교 수행자들의 수행방법도 마탄도옥의 치유법과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도 보입니다. 그렇게 보자면 ‘민간종교’ 또는 ‘민간신앙’이 미신이 아니라 한 민족이나 지역의 지혜에 바탕을 둔 것으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인류의 자산으로 받아들이고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닐지요. 오히려 뚜렷한 근거도 없는데 ‘과학’이라는 말에 마취 당한 듯 무작정 신뢰를 보내는 태도가 더 미신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미신은 ‘무엇’을 믿느냐보다는 ‘어떻게’ 믿느냐, 어떠한 태도로 믿느냐 하는 데에 달린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이는 제 주위에서 가끔 이런 얘기를 듣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눠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한가지, 여기서 사제나 심리학자는 일단 접어두고, 마탄도옥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점, 치유자요 미래를 내다보는 이로서 매우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점을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여러 민간신앙과 전통에서 여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그것보다 기존의 대종교라 할 수 있는 불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등은 여성에 대한 지위가 매우 인색함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교에서는 중세 때 마탄도옥처럼 치유자요 의학자인 여성들을 대거 ‘마녀’로 몰아서 잔인하게 죽였던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2000년 대희년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에 대해 사과했지만, 아직도 교회 내에서 여성의 지위는 사회보다도 더 낮다고 보입니다. 이슬람은 창시자 무함마드 당시 일부다처제가 그대로 이슬람 경전인 「꾸란」에 반영되어 여성 4명까지 결혼할 수 있다는 구절이 있지만, 이는 당시 전쟁으로 많은 남성이 죽어 과부와 고아가 넘쳐나 사회적으로 이들에 대한 보호와 안전망이 필요했던 역사적 배경이 있음을 고려치 않고 ‘일부다처제’ 자체만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문제는 일부다처제가 필요했던 당시 상황과 지금은 현격히 다르며, 따라서 이에 대한 해석도 달라져야 하고, 필요하다면 상황에 맞는 결혼제도를 여성의 인권과 사회적 지위라는 면에서 고려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탄도옥이 말한 ‘관계의 회복’은 이러한 변화된 상황에 대한 합당한 이해와 해석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말씀으로 글을 맺고자 합니다. 흰 눈이 펄펄 내리는 12월에 뵙겠습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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