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떠나는 아시아 여행 – 아름다운 사람, 제너라위

황경훈 아시아 평화 연대 센터장

아름다운 사람, 제너라위

오래 전에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TV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종영까지 무려 8년을 방송했다니, ‘전원 일기’ 정도는 아니더라도 드라마 속 어린이가 청년으로 성장할 만한 시간입니다. 말을 하고 보니 지금도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는지 모르겠는데,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짧은 연극인지 단편소설인지 그 제목이 생각납니다. 집주인이 외국인지 어딘지에 간 사이에 그 집을 동시에 계약한 두 가족이 어쩔 수 없이 한 집에 살면서 생기는 해프닝을 그린 이야기인데, 그 뒤로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표현은 한 지붕 아래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두 가족이나 집단의 어색하고 불편한 동거를 가리키는 말로 ‘애용’되어 왔지요. 오늘 들려드리려는 이야기가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상황설정에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또 그렇게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운을 이리 띠우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종교는 달라도 한 하늘 아래

제너라위는 문둥병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말레이시아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그에게는 세 아들을 둔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결혼을 하지 않은 제너라위는 친구의 아들을 제 자식처럼 생각했다. 아이들은 점점 이들의 ‘삼촌’을 더욱 좋아하게 됐고 그는 재미있는 이야기와 선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느 날, 제너라위의 친구는 부인과 세 아이를 남겨 두고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졌다. 제너라위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박봉의 월급이지만 친구의 가족들을 부양하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제너라위는 아이들이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하고 친구의 미망인과 같이 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미망인과 결혼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고 그러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철저한 이슬람교인이었고 아이들과 어머니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도라는 종교상의 차이였다.

가톨릭인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인도 자신이 믿고 있다고 고백하는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고 믿는다. 양아버지를 따라 미망인과 아이들이 개종할 것인가 아니면 그가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인가? 또 이들에게는 실생활에서도 문제가 있었는데, 이를테면 제너라위는 교리상 돼지고기를 먹지 않지만, 미망인과 아이들은 자주 먹어왔다. 어떻게 이들이 한 지붕에서 같이 살아 갈 수 있다는 말인가?

제너라위는 끝까지 가보자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미망인과 결혼하고 그 집으로 이사해 들어간 뒤 제너라위는 따로 주방을 만들고는 자신보다 몇 살 위인, 이제는 그의 부인인 친구의 미망인에게 자기를 위해 이슬람 음식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이 새 가족이 함께 살아가게 됐다.

아이들이 자라나 결혼을 했고 각각의 가정을 꾸리기 시작했다. 비록 이들은 제너라위를 계속 ‘삼촌’으로 불렀지만 그의 친절과 희생은 잊지 않았고, 손주들은 할아버지라는 뜻으로 쓰이는 낱말인 ‘콩콩’으로 그를 불렀다. 몇 년이 지난 뒤, 부인이 죽자, 60대 초반이었던 제너라위는 이번에는 이슬람 여인과 결혼해 아이 넷을 두게 되었다. 제너라위는 은퇴했고 종교에 더 깊이 귀의했다. 그는 하루에 다섯 번 기도했고 아이들에게 코란을 읽도록 가르쳤다. 더 이상 로마 가톨릭 교회가 낯설지 않았으므로 제너라위는 또한 성경도 공부했고 종종 이슬람의 가르침과 비교하곤 했다. 그는 손수 쓴 이슬람어 붓글씨로 문을 장식했고 메카 순례를 위해 돈을 저축했지만, 가톨릭을 믿는 손자들에게는 생일선물로 성경을 주곤 했다. 열린 마음과 너그러움으로 제너라위는 아이들과 서로의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즐겨 나누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믿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지식이 ‘콩콩’이 알고 있는 것에 미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부끄러워했다.

오늘날 이 세상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차이에 대해 강조하지만 제너라위 같은 사람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사람을 회교도나 그리스도인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같은 하느님을 믿는 인간으로 보았다. 우리는 종종 종교간 대화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실 종교간 대화는 우리 집안 얘기이기도 하며 그 주인공은 바로 제너라위다. “나는 우리 할아버지 제너라위가 아주 자랑스럽다.”

알빈 프레데릭, 예수회, 말레이시아, 마닐라에서 수학.

(출처: Once Upon a Time in Asia: Stories of Harmony and Peace, ed. by James Kroeger (Claretian Publication, 2006).

알빈 수사는 이 글에서 자신의 할아버지인 제너라위가 종교에 대해 보이고 있는 매우 관용적인 태도를 할아버지가 살아 온 삶을 통해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톨릭 신자인 알빈은 제너라위와 결혼한 그 미망인의 자식에게서 난 손자 중에 한명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야기 중에도 나오지만 아무리 ‘절친’이라고 하더라도 자식이 셋이나 있는 과부와 결혼을 하려고 결심한다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고, 더욱이 자신의 종교인 이슬람에 대한 신념이 투철했던 그가 스스로 ‘한 지붕 두 가족’ 신세처럼, 부엌을 따로 만들어 써야 하는 불편함을 무릅쓰면서도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몸으로 살아 낸 것을 미루어 볼 때, 알빈이 할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한 말은 결코 과장으로 들리지가 않습니다. 아마 알빈도 할아버지인 제너라위가 선물로 준 성경을 받고 그의 신앙심을 길러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할아버지와 함께 자랄 수 있었던 행운을 누린 알빈은 수사가 될 수 있었고, 할아버지가 사람을 종교로 나누어 보지 않고 “하나의 같은 하느님을 믿는 인간으로 보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고도 생각이 됩니다. 개신교가 심하기는 하지만 ‘복음화’를 ‘개종’이나 신자 숫자 늘이는 것과 동일시하다시피 하는 한국의 천주교와 개신교의 시각이나 태도와는 크게 달라 부럽기도 합니다. 사실 부러움보다는 제너라위 할아버지가 보여준 타종교에 대한 관용적 태도가 참으로 인정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여서, 먼저 마음이 훈훈해져 와 기분이 좋아집니다.

종종 종교학자들이 그러더군요. 한국은 종교인과 비종교인이 각각 50퍼센트이고 종교인 가운데 크게 봐서 그리스도교(가톨릭, 개신교)와 불교가 반반 정도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종교간 대화의 좋은 토양을 지녔음에도 종교 지도자들 사이, 종교학자들 사이의 종교간 대화나, 일반 신도 사이의 삶으로서의 종교간 대화가 여전히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이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에는 강원용 목사, 김수환 추기경,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이 그래도 부지런히 모여서 ‘종교간 대화’를 통해 무엇인가 해보려는 노력을 해왔는데, 요즘은 종교의 축일이나 기념일이 되면 전시성 행사나 하고 끝나는 형식적인 만남에 그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좀 삐딱하게 보면, 성탄절이나 석탄일에 현수막을 걸고 축하의 뜻을 전하는 것은 좋지만, 신도들에게 서로의 종교에 대해 배우기를 적극 권하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나 계획으로 그것을 뒷받침 하는 일이 없다면, 오히려 상대방 종교에 대한 존중이나 존경보다는 거꾸로 그것을 통해 자기 종교를 홍보하려는 속셈으로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이제는 불교와 가톨릭의 수도자들이 모여 축구나 유사한 ‘행사’를 하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흡족해 하는 데에서 좀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종단별로 신도들 쌈지 돈을 모아서 구호활동을 함께 한다고 신문에 사진 싣는 것으로 종교간 대화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 번 성찰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정말로 이제는 예수나 석가뿐 아니라 노자나 공자가, 최제우나 강증산이 더욱 더 불교와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의 입에서 자주 회자되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 이제는 ‘영성의 시대’라고 불리는 이때에 더 성숙해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을 하게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타종교와 과연 ‘대화’하고 있는가를 이런 식으로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도 타 종교에 자신을 더욱 더 개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내친 김에 이런 제안도 할 수 있을 법한데, 제너라위 할아버지가 보여준 종교적 관용의 미를 한국 땅으로 가져와 확대 적용한다면, 미사에서 때로 독서와 복음으로 노자의 <도덕경>이나 공자의 <논어> 한 구절, 또 불교의 <금강경>의 경구를 읽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떨까요?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독자님이 계시다고 생각되기에 좀 더 말을 덧붙이자면, 아주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예수님이 이 땅에서 태어나셨다면, 그래서 상서롭고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한 말씀’ 하라고 누가 요청한다면 예수님은 아마도 유불선의 경전에서 지혜로운 말씀을 고르고 당신의 고유한 해석으로 덧붙인 구수하면서도 깊고도 재미있는 메시지를 전해주지 않았을까요? 뭐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 복음이 ‘기쁜소식’이라면 이 경전들 안에도 기쁨으로 가득한 말씀이 넘치는데 이런 보화를 나눈다면 우리의 종교적 삶은 훨씬 더 풍요로워 지지 않을까요? 어쩌면 이런 태도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간 대화를 하려는 종교인들의 열린 자세가 아닐까요? 이런 저런 생각거리들을 함께 궁리해보자고 제안하면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달에는 시원한 바닷가에서 뵙기를 바라며 인사를 대신합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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