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떠나는 아시아 여행 – 생태계 위기, 종교는 어떤 응답을 할 수 있을까

황경훈 아시아 평화 연대 센터장

아다마라는 이름의 인도네시아에서 온 학생이 겨울이라도 만난 듯 두꺼운 옷을 껴입은 채 말했습니다. “추워도 너무 추워요.” ‘11월도 되지 않았는데, 그럼 이 친구와 같은 동남아나 남아시아에서 온 이들은 한 겨울에는 어떻게 지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추위보다는 10도를 넘나드는 일교차 때문에, 마치 ‘담금질’하는 듯한 날씨에 어느 정도 단련된 한국인들에 비해 몹시 추위를 타는 듯했습니다.

아다마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 온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여서 마치 한겨울을 연상케 합니다. 아직 스팀을 틀어주지 않아서 따듯하게 할 방법이 없다고 아쉬워 하다가, ‘11월도 안됐는데, 무슨 스팀…… 환경도 좀 생각해야지.’ 이렇게 생각이 이어지니, 이런 크고 작은 인간의 편의와 생태계 위기는 어쩌면 처음부터 화해 불가능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신학자들은 인간이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라는 비판에 동의하면서, ‘청지기’로서 자연을 보살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창세기에서 읽을 수 있는 ‘생태적 시각’이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청지기니 뭐니 하면서 개입하는 것보다 낫다’는 소리도 들려오고 제법 귀가 솔깃하기도 합니다. 과연 어떤 말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불교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미얀마의 민담을 들으면서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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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한 닭 이야기

한 옛날, 하늘에 해가 두 개나 이글거리며 떠 있어 날씨가 몹시 더웠다. 모든 생물들은 참을 수가 없어서 불평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회의를 열기에 이르렀다. 참석자 중 하나가 해 두 개 중에서 하나를 없애야 한다고 제안하자마자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찬성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그 일을 책임질 것이며 어떻게 그 일을 해 낼 것인가였다. 이 막중한 과업은 조준의 명수로 소문난 개미에게로 돌아갔다. 이 불쌍한 작은 개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뜨거운 햇빛 속으로 나갔고, 마침내 두 해 가운데 하나를 쏴 맞추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기대와는 다르게 하나가 아니라 해 두 개가 모두 사라져 버렸고 온 우주가 완전히 캄캄해지자 모두들 시름에 잠겨 행복은 고사하고 슬픔만 가득했다.

모든 생물은 햇빛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들은 개미에게 태양을 쏴 달라고 한 것이 실수였다고 인정하고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다. 어떻게 해를 다시 데려 올 것인가에 대해 몇날 며칠 동안 회의가 이어졌다. 마침내 이들은 인간에게 부탁하기로 결정하고 그가 해에게 가서 용서를 빌고 이들에게 돌아와 줄 것을 호소하고 애원하라고 했다. 부푼 희망으로 기다렸지만, 그 사람은 해를 데려오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인간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까마귀를 보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 뒤로 다른 많은 생물을 보냈지만 보내는 족족 다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해들이 잠에 빠지자 이때를 이용해 모든 수탉들에게 해들을 깨우도록 한꺼번에 울라고 했다. 모든 수탉이 홰를 치며 울게 한 뒤 눈치를 살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 수탉들에게 명령했고 모든 수탉은 두 번째로 목청껏 울었다. 잠잠하던 사위가 조금씩 따듯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러자 이들은 수탉들에게 다시 한번 울라고 했다, 수탉들이 한번 더 울자 놀랍게도 태양이 떠 오른 것이다. 모든 생물들은 수탉들의 성공을 축하했다. 더욱이 두 개의 해가 아니라 오직 한 해만이 돌아온 사실을 알자 이들의 기쁨은 배가 되었다. 개미에게 쏘인 다른 해는 장님이 되어 나오지 못했고 나중에 달이 되었다고 한다.

수탉이 새벽에 세 번 홰를 치고 울어야 비로소 해가 뜨게 된 까닭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고 전한다.

출처: 미얀마 민담 (프란시스 히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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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인지는 모르지만 동틀녘이면 이 땅에도 어김없이 닭이 목청껏 홰를 쳐서 해를 깨우니 미얀마 이야기가 친근하고 재미있기도 하네요. 이 이야기를 약간 ‘종교 버전’으로 바꿔서 앞서 말한 ‘종교와 생태’의 관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도록 하지요. 먼저, 생태계 위기에 직면해 그것에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인간들이 온갖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해서 우주의 운행에 큰 이변이 생기고, 그렇게 되어 해가 두 개가 됐다고 칩시다. 그래서 그런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급격한 기후변화로 이야기에서처럼 온 우주 생명체 대표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게 되지요.

여기까지는 비슷하게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우주 생명체 가운데 영장류인 원숭이가 온갖 말로 가장 똑똑한 인간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해 인간을 보내기로 하고 먼저 과학자를 보냈습니다. 과학자들은 온갖 수치로 해의 운행 주기, 온도, 다른 행성과의 거리 등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는데 아무런 득이 없이 실패를 하고 맙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정치가, 금융인, 군인 순으로 다시 파견했지만, 서로 이권 다툼만 하다가 상황만 더 악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종교인들에게 희망을 걸고 해결책을 찾아오라고 대표를 보내게 됩니다.

중근동의 사막 문명에서 태어난 유일신교라고 할 수 있는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대표자를 뽑아 보내기로 하는 한편, 동양에서 태어난 유교, 불교, 도교의 지도자들도 뽑아 서로 논의해 이 난제를 풀도록 전 우주 생명체의 이름으로 명령했습니다. 유일신교 종교인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여호아, 야훼, 알라에게 하나의 해를 거두어 달라고 절실하게 기도했지만, 정성이 부족해서인지 신들이 침묵하자 급기야 회의를 열고 해결책을 모색했습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인간은 우주를 보살피는 신의 청지기’라는데 합의하고 전문가인 과학자, 정치가, 군인 등의 힘을 빌어 자연의 운행에 ‘개입’하기로 했습니다. ‘청지기’직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기 1장 28절)는 구절에서 ‘지배’와 ‘다스림’을 글자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하느님이 창조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일을 인간에게 맡기셨다고 해석하는 점에서 세 종교가 대동소이하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전체회의에서 나온 결론은 핵으로 해를 폭발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유불선 종교지도자들은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자멸로 가는 길이라면서, ‘시간이 가면 자연은 원상태를 스스로 복원할 것’이라며 그냥 기다리면 된다는 ‘개입반대, 불간섭원칙’을 주장했습니다. 옥신각신한 끝에 성질 급한 유일신교측은 무력사용을 감행하게 되고 어마어마한 핵을 쏘아 올려 보냈지만 태양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거꾸로 방사능에 피폭된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이 병들거나 죽게 되었습니다. 그것 보라며 유불선지도자들은 자연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자신들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몇 달,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두 개의 해가 이글거리며 떠 있어서 남극과 북극의 모든 빙하가 녹아 버리게 됐지요. 결국 지구는 높아진 바닷물에 잠기고 지구상 모든 생명체들은 수몰되어 죽는 비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해피엔딩이 아니라 비극으로 패러디를 마쳐서 기분이 우울합니다. 여기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청지기로서 인간이 자연에 개입한다면 과연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와, 그것에 반대해 절대로 자연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과연 옳은가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간혹 뉴스에서 보도되듯이, 멧돼지의 기승으로 농사를 망치고 있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관의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멧돼지를 사냥해 개체수를 줄인다면, 분명 자연에 개입하는 일이 될 텐데 여러분들은 동의하시는지요? 같은 맥락에서라면 4대강을 뜯어 고치는 것도 맞지 않냐고 주장하는 이도 있을 듯 한데 이것은 또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어느 스님처럼 도룡뇽을 살게 하듯이 멧돼지들도 살게 내버려둬야 한다고, 멧돼지 사냥은 자연의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라며 반대한다면 이는 또한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여기서 어느 종교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물음은 만일 종교가 이런 문제에 답하지 못한다면, 인류의 존립자체를 위협하는 생태계 위기에 응답하지 못한다면, 종교는 이 시대에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나아가 그것에 응답하기 위해서 종교는 어떤 태도와 방법을 취해야 할까요?

사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라 닭인데, 너무도 인간중심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버려서, 닭들이 인간의 언어를 인지할 능력이 있다고 가정하면 ‘아,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종인가보다!’ 이렇게 한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듭니다. 우주의 온 생명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간직하면서, 마치 지구의 종말을 가리키듯 마지막으로 달랑 한 장 남은 2013년 달력의 마지막 달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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