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예수와 헤로데의 갈등 – 배안나

배안나

생활하는 복음 2

널 사랑하겠어

배안나

112일 주님세례축일 / 마태 3,13-17

40대를 기다리며,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사랑이 뭘까 한참 고민했던 시절들이 떠오릅니다. 분명 같은 성당에서 같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미사를 봉헌하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하느님의 사랑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내 속을 썩이는 괘씸한 저 녀석의 마음은 뭘까?’로 시작했다가 ‘이런 내 마음은 뭘까?’하는 그런 의문부터, 하느님이 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이유도 사랑이고 엄마아빠가 날 낳고 키우신 것까지 모두 사랑 때문이라면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이란 결국 사랑이구나! 그렇다면 너무나 사랑스러운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원하는 일은 무엇일까.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일이 똑같은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런 행복이 내게도 찾아올까?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여기는 내 자리가 맞을까? 아마 이 고민은 제가 하느님 앞에 설 때까지 계속 안고 가야 하는 것이겠지요.

풀리지 않는 사랑에 대한 질문을 가진 채 저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모범답안이 성경에 나옵니다. 지금 이대로, 아빠가 하자는 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예수님입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알았던 세례자 요한 역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두 분이 살아생전 자주 만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세례를 주셔야 할 분께 도리어 세례를 베풀어야 할 입장에 선 요한도 심적 갈등이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요? 만일 당시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 중 기자가 있어 취재를 했다면, ‘요한, 감히 예수에게 세례를’, ‘무례한 요한’, ‘종교계, 갈 데까지 갔다’ 뭐 이렇게 제목을 뽑지 않았을까 제멋대로 상상해봅니다. 그러나 태중에서도 예수를 알아보고 기뻐했던 요한이 예수님의 뜻에 따르는 이 장면은 자못 감동적입니다. 사람의 뜻과는 다른 지점에서 서로의 마음이 일치하는 그 순간, 그것이 신의 뜻임을 알고 따르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요? 지금도 저는 하느님 뜻이 뭔지 모른 채 헤매는 처지인지라, 감히 예수님의 마음도 요한의 마음도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하늘과 땅 위의 사람의 마음이 일치했을 때, 예수님이 계셔야 할 곳에 계실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내게 주어진다고 상상해봅니다. 그리고 그 역할이 모든 이를 위한 일이었을 때, 내 마음속에서 올라올 뜨거움 정도가 제 상상의 한계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지면서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고 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답게 보입니다. 아들에게 사랑한다 말씀하시는 하느님도 고백하는 순간 조금 벅차지 않으셨을까 상상해 봅니다. 예수님의 세례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 세례식이 이전보다 더 뜨겁게 다가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 집 꼬마들이 그랬듯 차가운 성수물이 이마에 닿았을 때 죽어라 울었겠지요. 그런데 성인이 된 후, 스스로 원해서 세례를 받는 분들이 깊은 감동을 받아 마치 아기들처럼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빽빽 울던 아기가 그런 감동을 느꼈을 리는 만무하지요. 다만 자식들의 삶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길 바라며 저를 봉헌하신 부모님의 마음을 부모가 된 지금에서야 헤아릴 뿐입니다.

한 성당 안에서조차 아버지의 뜻을 달리 알아듣는 시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성직자와 교황님께 빨간 딱지를 붙여버리는 시대에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내가 믿는 것이 아니면 교양과 상식조차 거짓말이 되어버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은 무수히 갈라지고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갓 주부이지만 제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하느님의 일을 하고, 제가 받은 사랑이 필요한 곳으로 찾아나서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힘들지만 행복한 고민이 아닐까요?

배안나

예수님 따라 사느라 행복하고도 괴로운 이. 남자 셋과 함께 살면서 행복하고도 외로운 이. 40대는 더 행복할거라 믿으며, 의정부에 살고 있습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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