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떠나는 아시아 여행 – 종교간 대화는 삶 속에서 출발해야

황경훈(아시아 평화 연대 센터장)

종교간 대화는 삶 속에서 출발해야

아시아를 한마디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다양하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대종교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 이슬람,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신자수로 따지면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힌두교하며,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유교, 도교 등이 아시아에서 태어났으니 지구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대륙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종교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뒤섞여 있는 다양한 문화는 다양한 삶의 양식과 그것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고 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종과 민족도 그만큼 다양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보자면 그 풍요로움이 주는 ‘축복’처럼 여겨지다가도 이러한 다름이 ‘차이’가 아니라 ‘차별’로 여겨지는 순간 ‘저주’가 되기도 하는 일들을 아시아 곳곳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오늘 이야기가 바로 그런 주제인데, 세계에서 가장 섬이 많다는 나라, 인도네시아로 건너가서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교회를 부숴라, 여기는 중국 놈들 교회다

이 일은 1998년 1월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한 마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과 장소의 이름은 실명임을 밝힌다.

1월 26일 한밤 중 자바섬의 크라간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와히유디는 중국계 주민에 대한 폭동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친구들과 통화하고 있었다. 교리교사이기도 한 그는 친구들의 말대로 성당 구내에 있는 집에서 다른 장소로 가족들을 피신시킬까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성당 문이 부서지는 소리에 머리털이 곤두서는 공포감으로 숨조차 멎는 듯했다.

와히유디는 창밖으로 폭도 수십 명이 성당 구내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이들은 성당을 부수고 이어 성모상 등을 닥치는대로 파괴하면서 소리쳤다. “교회를 부숴라! 그리스도교인을 모두 죽여라! 여기는 중국 놈들 교회다! 알라후 악바르! 알라후 악바르! (신은 위대하다)”

그때 그의 아내는 마치 최악의 상황을 맞을 준비가 됐다는 듯이 와히유디에게 기도하자고 말했다. 매일 보채던 아이도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꼈음인지 잠잠했다. 폭도들이 집에 불을 지르면 집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달리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그의 가족을 버리지 않았다. ‘천운’이라는 말을 증명이나 하듯, 폭도들은 그의 집 거실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숴버리기는 했지만 집을 불태우지는 않았다. 이미 성당은 거의 파괴되어 폭도들이 얼마나 광분했는지 짐작하기 충분할 정도였다. “하느님이 그날 밤 우리 기도를 진짜로 들어 주셨다.”는 와히유디의 말에서 진한 감사와 절실함이 묻어 나왔다.

폭도들이 현장을 떠나고 한 시간쯤 지난 뒤 와히유디와 식구들은 성당 부지 뒤편에 있는 이슬람인 이웃의 집으로 도망쳤다. 다른 이슬람인 이웃들도 그를 위로하기 위해 방문했다. 이들 이슬람인 이웃들은 폭도들이 해안에 있는 어촌에서 왔다고 귀띔해주고, 이들이 다시 돌아오더라도 안전하게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그의 가족을 자신들 집에 머물도록 했다.

한편 자바인 개신교 교회에 속한 술리스티오노의 집은 천주교 성당 건너편에 있었는데, 폭도들이 성당을 공격하던 당시 그는 집 근처 덤불 뒤에 숨어 있었다. 폭도들을 가까이서 본 그는 그들이 마을 사람이 아니라 다른 마을에서 왔다고 확인해줬다. 그는 폭도들이 성당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돌을 던지는 것을 보았지만 큰 칼로 무장하고 있어서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에 따르면 그날 밤에는 폭도의 공격은 두 차례 일어났는데, 성당을 공격하기 전인 밤 10시 무렵에 중국인 상가를 약탈했다. 폭도들도 상가를 공격할 당시에는 이곳에 교회가 있는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고 나서, 치안요원들이 시내 중심가로 몰려가는 틈을 타서 이 마을에 들이닥친 것이다. 이웃 본당의 고스마스 페르난데스 신부는 그의 주교(수라바야교구)가 크라간을 방문해서 대부분 중국계인 이곳 신자들을 위로했지만 한동안 이곳 중국계 신자들은 공포 속에 살아야 했다고 한다.

(출처: <아시아공동체> 1998년 3월 9일자 화제 기사)

짧은 글이지만 실제 벌어진 일이라고 하니 그 상황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느낌입니다. 인도네시아라고 하면 한국인에게는 그리 낯설지는 않은 나라인데, 여기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자주 듣는 얘기는 아닌 듯합니다. 사실 인도네시아가 1만2천개나 되는, 세계에서 섬이 가장 많은 나라라던가, 인구 2억 5천여명 가운데 대다수가 이슬람인으로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라는 것도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대개 이슬람하면 ‘탈레반’이니 ‘하마스’니 하는 근본주의 단체들의 근거지로 저 중근동 어디쯤을 떠올리게 되는데, 인도네시아가 이슬람의 최대 국가라는 데에 의아해 할만도 하지요. 가까운 말레이시아나 파키스탄보다는 온건한 이슬람 문화라고는 하지만 위와 같은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하니 이슬람을 제외한 소수 종교들은 맘 편히 살기가 어려울 것만 같습니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면, 우선 폭도들이 가톨릭과 개신교 교회를 겨냥하고 파괴했다는 점과 또 다른 사실은 ‘중국인’들을 호명한 데서 보이듯이 이들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인을 모두 죽여라! 여기는 중국 놈들 교회다! 알라후 악바르! 알라후 악바르! (신은 위대하다)” 이 끔찍한 말에서 확인되는 것은 중국인과 그리스도교인을 죽이라는 것이니, 중국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이면 폭도들에게는 최대의 원수가 되는 셈입니다. 그 뒤에는 자신들이 믿는 알라가 위대하다는 말을 인도네시아어로 하지 않고 아라비아어로 외치고 있음이 눈에 띄지요. 이들의 경전인 코란이 각국 말로 ‘번역’되는 것은 허락하지만 암송이나 예배, 기도를 드릴 때는 항상 아라비아어로 해야 한다는 이들의 규율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 선교사라면 어떻게 복음을 전하시겠습니까? 매우 어려운 질문으로, 성 도마가 예수님 사후 얼마 뒤에 인도로 가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이래 아시아 교회에 늘 화두처럼,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구수로 선교의 기준을 가늠한다면 겨우 3% 정도만이 그리스도교인이고 여전히 ‘외국종교’로 여겨지고 있다고 하니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아시아 주교들은 이른바 ‘삼중대화’, 곧 가난한 이들, 다양한 종교 전통 및 문화와의 대화를 선교의 방법론이자 활동으로 채택하고 1970년대부터 이를 실현하기 위해 힘써왔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해보이지 않습니다. ‘종교’라는 옷을 입었지만 위와 같은 분쟁은 종족, 정치, 경제, 문화적인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성직자들이 중심이 되는 ‘종교’간 대화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까닭도 있는 듯합니다. 그러니 ‘종교’가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의 삶으로 내려가 그 안에서 함께 울고 웃지 않으면 그야말로 ‘선교’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라서 종교가 곧 삶과 하나가 되어 구분이 어려운 아시아에서는 일상의 삶을 살고 있는 평신도야말로 진정한 선교사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봄빛이 여전하기를 바라며 4월에 인사드리겠습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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