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책장 속의 기도 – 오리의 기도

이희연

오리의 기도 (일부)

– 드루트마르 크레머, 『메뚜기의 기도』

저는 온종일 각각거리면서

당신의 좋으심을 찬양합니다.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살아가도 됨을

감사드리면서 가끔씩

크게 외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부득이한 경우 외엔

땅 위에서는 외치지 않지만,

물 위에서는 생의 의욕에 넘쳐

물론 큰 소리로 외칩니다.

진정, 만사형통입니다.

이때야 저는 날개 달린

당신 조물들 중에

하나의 장식이 되지요.

주님,

제가 기쁨을 모르는 무지에 빠지지 말고,

불만으로 가득 찬 불평쟁이가 되는 일이 없이

당신의 창조적 애정을 찬양할 수 있는

위대한 찬미를 내 나름의 음성으로

부르게 해 주소서.

각! 각! 각!

퇴근길에 전깃줄 위에 앉아 있는 참새와

공원을 지나가는 길에 한 무리의 비둘기와

호숫가에서 노니는 오리를 무심히 지나쳐 온 우리는

닭집에 앉아 맥주 한 잔에 양념통닭을 먹으며

떠들썩한 조류독감을 걱정합니다.

오리의 꽥꽥 소리가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였다는 것은 까맣게 잊혀지고

텔레비전 너머에서 들려오는 비명으로만 느껴집니다.

본래 새들의 노래 소리는

있는 그대로 살아가도 괜찮다는 생명의 노래이고

사랑스럽게 창조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긍정의 노래라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쉬이 잊어버리는지요.

비명을 지르고 싶을 만큼

모든 것이 어렵게만 느껴질 때

우리가 되찾아야 할 본래의 노랫소리는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 이희연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 편집자. 사람의 ‘성장’이란 ‘구원’과 같은 말이라고 믿으며, 누군가의 성장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꿈꾸는 중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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