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떠나는 아시아 여행 – 진정한 회심은 깨달음으로부터

황경훈(아시아평화연대 센터장)

진정한 회심은 깨달음으로부터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할 때도 있지만 실수할 때도 있다는 말에 이 글의 독자도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현명하고 바른 판단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고 그냥 운이 없다고 지나치기보다는 뒤돌아 곰곰이 반성하고 그 안에서 배워가는 것도 삶이 성숙해가는 한 길이라고 보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종교’라는 말이 비록 몇 세기에 전에 일본 학자들이 이름 붙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반성하자는 뜻에서 다시 말해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깊고 크게 반성하자’는 뜻으로 사용한 것은 아마도 인류의 역사나 그보다도 더 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흔히 동양에서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는 욕이 귀에 낯설지 않은 데서 짐작이 가듯이, 반성할 줄 모르는 동물에 비교하는 것을 매우 큰 수치로 여겨왔지요. 어째 시작이 너무 딱딱해져버려서 조금 더 나가면 하품하시는 독자가 계실 것 같아, 빨리 이야기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피부색은 아시아인이면서도 골격이나 얼굴생김이 서양인 같고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민족이 사는 인도, 매우 다양한 종교가 삶과 함께 살아 숨 쉬는 거대한 대륙으로 여행을 떠나봅니다.

백 명의 왕자

 

먼 옛날 인도에 100명의 왕자를 둔 왕이 있었다. 왕은 자식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어서 100명 각자에게 선생을 붙여주고 교육하도록 하는 한편, 자식들이 성장하면 땅을 나누어 주어 자신의 곁을 떠나 살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99명의 왕자 모두가 장성하자 땅을 나누어 받고 궁궐을 떠나게 됐고 이제 막내 왕자만 남게 되었다.

막내왕자는 영리했고 그를 가르친 선생도 현명하여 배우고 가르치는데 게으름을 피우는 일이 없었다. 막내 왕자도 어른이 되어 곧 왕을 떠나야 할 날이 다가오자 그는 선생에게 “아버지께서 저더러 땅을 받아 떠나라고 하시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하고 자문을 구했다. 선생은 효자인 왕자가 아버지 곁에 있고 싶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막내 왕자가 떠나면 왕 곁에는 아무도 없게 되니 왕 곁에 있게 해 달라.”고 청을 드리라고 조언했다. 얼마 뒤 왕이 떠나라고 하자 막내 왕자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왕과 궁궐에서 함께 살게 해달라고 간청했고 왕도 크게 기뻐하여 이를 허락했다. 막내 왕자는 왕과 함께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먼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해 주고 살 집도 지어주었으며, 생활의 곤란을 겪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 주었다. 세금도 부자들에게서는 많이 거두고, 재판은 공정하도록 하였다. 막내 왕자는 궁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신분의 고하에 따라 제각기 급여에 많은 차이가 있었으나 이것마저도 폐지하여 차별이 없게 하였다. 또한 그 때까지 궁전 마당으로만 이용되던 정원을 모든 사람이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내놓았다. 이렇게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은 그를 무척 따르고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왕은 중한 병에 걸려서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왕은 신하들에게 “100명의 왕자들은 누구나 다 내 뒤를 이를 자격이 있으니, 너희들이 잘 의논하여 그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왕자로 내 뒤를 잇게 하라.”고 당부했다. 신하들은 의논을 하여 막내아들이 적격자라고 결정을 내리고 왕이 죽자 그를 왕위에 올려 앉혔다. 이 소식을 들은 나머지 왕자 99명은 모두 반대하고, 모여 의논 끝에 이런 편지를 보냈다. “막내인 네가 형들을 밀어 젖히고 왕이 되다니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맨 맏형이 왕이 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당장 왕위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우리 99명의 형제가 한데 뭉쳐서 너와 싸울 것이다.”

당황한 왕은 다시 선생에게 가서 이를 알리고 조언을 구했다. 선생은 걱정하지 말라며, “물려받은 재산을 형들과 공평하게 나누어주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하라.”고 조언했다. 이 말을 전해 듣고도 막무가내로 싸우려는 동생들을 맏형이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한 번 만나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99명의 형들이 궁전에 도착하자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공손하면서도 정중한 그 기품에는 그야말로 왕다운 무게와 침착성이 갖추어져 있었다. 형들은 막내 동생이 훌륭한 왕이 된 것을 보고 감탄하면서 한편으로는 크게 놀랐다. 이들은 아버지가 왕 자리를 막내에게 물려준 것이 옳았다고 판단했다. “아버지 판단이 옳았어. 우리 같은 욕심쟁이들은 백 번 죽어도 막내를 따를 수 없어. 우리가 막내보다 조금 더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왕이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 그 후 99명의 형들은 막내 왕과 손잡고 나라를 잘 다스렸다.

– 최재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설이야기』

이야기의 주인공은 물론 막내 왕자겠습니다만, 그렇게 훌륭하게 성장하도록 교육한 왕과 결정적인 순간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현명한 스승도 빼놓을 수 없는 주연급 조연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가난한 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한 부자증세와 학벌과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임금을 책정한 정책은 오늘날 우리 한국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훈훈함을 넘어 부러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먼 옛날에~’라는 말이 붙기는 했지만, 아리안족이 토착부족을 정복하고 인도에 카스트 제도를 만든 것이 기원전이라면 임금 철폐 등의 정책에 대한 사실 관계에 슬그머니 의심이 갑니다. ‘이야기는 이야기’니까 이러한 해석과 구전도 있을 수 있다고 넘어가도록 하지요. 위에서 말한 조연과 같은 중요한 인물이 또 있다고 보이는데, 바로 99명의 형제들입니다. 만일 이들이 막내 왕자를 제거하고 권력을 잡았다면 이야기는 전해져오지 않을지도 모르니 더욱 중요하겠지요. 이 이야기는 99명의 형들이 궁궐에 도착해 왕이 된 막내를 보고 “크게 놀랐다.”라고 전합니다. ‘놀랐다’는 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 때도 쓰는 말이지만, 기존에 어떤 생각이나 기대가 있었는데 그와 반대되거나 그것을 훌쩍 넘을 때 체험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놀라는 일은 일상에서 종종 겪는 것으로 그냥 넘어갈 때도 많고, 잠깐 뭔가를 주지만 곧 잊어버릴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99명의 형들은 선왕인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을 한 번 더 돌아 본 뒤 “우리 같은 욕심쟁이들은 백 번 죽어도” 막내를 따를 수 없다는 깊은 반성에 이르게 됩니다. 나아가 “나이 좀 더 먹었다고 해서 왕이 될 수는 없는 것”이라며 권력에 대한 미련마저 털어버립니다. 막내 왕자가 선정을 베푸는 모습이 훈훈하고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것이라면, 99명의 형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막내 왕자가 펼친 정치는 이를테면 유교에서 강조하는 인의(仁義)를 바탕으로 한 덕치라는 점에서 도덕적 온기를 전하고 있다면, 막내의 모습에 놀라고 그 놀람에서 자신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각과 함께 후련하게 자신을 비운 99명의 형들의 모습에서는 깨달음과 그것을 통한 일종의 ‘회심’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종교적 차원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그리하여 깊은 도덕적 반성은 이미 그 안에 종교적 차원과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돈맛이나 권력욕이나 한번 맛들이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일상에서, 주위에서, 아니 어쩌면 우리 자신에게서 매일 보고 있는 사실임을 인정한다면, 99명의 형들의 회심과 결단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에 수긍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들은 왕의 배려와 덕망 있는 스승의 지도 아래 마음 닦는 일을 꾸준히 배워왔기에 한순간의 회심으로 권력과 미련 없이 이별을 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독자들은 언제 마음이 지극해지는지, 가장 절실해지는지, 그 절실할 때 마음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생각해보시길 바라면서 이만 물러갑니다. 계절의 여왕 5월에 찾아뵙겠습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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