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떠나는 아시아 여행 – 한은 풀고 고통은 나누고

황경훈(아시아평화연대센터장)

한은 풀고 고통은 나누고

이번 호가 나올 즈음에는 이미 ‘상황종료’ 이겠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아직 ‘세월호의 아이들’ 은 바다에 잠겨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들 모두가, 개인은 개인대로 집단은 집단대로 이들의 무고한 죽음에 언어로 표현할 길 없는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마음으로 삭이고 있습니다. 한 국가의 ‘총체적 무능과 부실과 부패’를 상징하는 이 참상은 누구의 사과나 섣부른 위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가치와 도덕의 문제를 아주 기초부터 하나하나 다시 생각하고 다시 시작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현 행정부와 그 수반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새 틀을 짜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합니다. 두 눈으로 배가 가라앉는 것을 보면서도 구하지 못하는 부모들의 한과 그 고통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지요. 적절하거나 흔쾌한 것만은 아니지만 이런 처지에서는 동양의 덕인 ‘침묵’이 예의를 지키는 한 길로도 여겨집니다. 이번 이야기는 이분들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그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시작해보려 합니다.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하느님은 어디 계시고, 무엇을 우리들에게서 바라시고 계시는지, 종교를 믿고 있는 이들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역설이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그리하여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러한 시련에서 조금씩 ‘인간의 길’에 대한 성찰을 깊게 해온 것이라면, 우리도 피하지 말고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조심스럽게 길을 나서야 하겠습니다.

요술 겨자씨

(이 이야기는 유대 땅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담으로 정확히 어느 나라인지 언제부터 전해져오는 것인지는 알려진 바 없다)

옛날에 한 과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나밖에 없는 그의 아들이 사고를 당해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비통한 나머지 누가 위로해도 소용없고 그저 미친 듯이 울부짖을 뿐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친구하나가 그녀를 성자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성자에게 과부는 흐느끼며 애원했습니다.

“제발 성자님의 능력으로 제 아들이 살아 돌아오게 해주세요. 성자님이라면 기도나 마술의 힘으로 전능하신 분을 움직여서 제 비통한 마음을 가라앉게 해주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러자 현자는 인자한 목소리로 과부에게 말했습니다. “지금껏 슬픔을 모르고 살아온 집안에서 겨자씨 한 알을 얻어 오세요. 그것만 있으면 당신의 고통을 말끔히 제거해 주리다.”

과부는 당장 이 요술 겨자씨를 구하러 나섰습니다. “그들이라면 불행을 겪을 일이 별로 없겠지.” 그녀는 웅장하게 생긴 아름다운 저택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지요. 문을 열고 나온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지금 한 번도 슬픔을 겪어 본 적이 없는 집을 찾고 있는 중이랍니다. 이곳이라면 맞겠지요?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 그러니 제발 좀 알려주세요.” “한 번도 슬픔을 겪지 않은 집이라고요? 문간에 나온 여자가 고함치듯 되물었다. “집을 잘못 찾으셨어요.” 그러더니 여자는 흐느끼며 자기네 가족이 겪은 온갖 불행들을 늘어놓았다. 결국 그녀는 과부를 집 안으로 불러들여 앉혀놓고, 겪었던 일들을 소상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과부가 상대방 여자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그 집안의 일도 해주고 하는 사이에 여러 날이 흘러갔습니다.

간신히 그곳에서 벗어난 과부는 이번에는 5리쯤 떨어져 있는 평범한 가정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저택에서 오두막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비탄과 슬픔의 이야기뿐이었지요. 그래도 그녀는 한결같이 성의 있는 자세로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여러 달 여행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함께 슬퍼하다보니, 어느덧 그녀는 요술 겨자씨를 찾는 일마저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에 그녀의 슬픔이 자신도 모르게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말고요.

(출처: 『진짜 이야기를 찾아서』 (성바오로출판사, 1992)

유다 땅이라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라고도 할 수 있고, 넓게 보면 아시아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런 까닭에서 인지 이 이야기와 매우 비슷한 이야기가 불교에서도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지혜로운 가르침으로도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 전쟁으로 아들을 잃고 절망에 빠진 한 여인에게 앞 이야기의 성자가 한 것과 비슷한 처방을 내려서, 여인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고통을 이길 수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찾아가는 집집마다 자식이나 남편을 잃지 않은 곳이 없었고 동변상련이랬다고 슬픔을 나누다보니 고통이 치유되고 한이 풀리는, 그리스도교적으로 표현하면 일종의 ‘구원체험’을 하게 된 것이지요. 한이 풀리고 가슴 속에서 응어리로 굳어진 고통이 사라지는 해방감을 체험한 것이라는 데서 ‘구원’이라는 말을 써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도 일종의 해방 또는 해탈의 체험이고 그 역의 표현도 가능하다고 보입니다. 어쨌든 이야기 속의 여인은 아들을 살릴 신비의 겨자씨를 구하기 위해 ‘대저택에서 오두막’까지 하나하나 찾아가지만, 겨자씨는 구경도 못하고 집집마다 갖고 있는 고통의 기록, 그 가정사 속에 켜켜이 쌓인 상처를 마주하게 되고 함께 슬픔을 나누게 되지요. 이야기는 여인이 가장 먼저 찾아 간 곳이 대저택이었다면서 ‘불행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자연스러운 듯이 깔아 놓습니다.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경제적으로 부를 누리는 이들은 고통이 없을 것이라는 데에 당연히 독자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말이지요.

그러나 이야기는 결정적인 반전을 보여줍니다. 곧 여인은 그 대저택의 ‘온갖 불행’을 듣게 되는 것뿐 아니라 그 ‘집의 일’까지 하는 관계로 이어져 여러 날을 그곳에서 보내면서 그러한 일반적 선입견이 ‘편견’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 집뿐 아니라 찾아간 모든 집이 그런 고통스런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연이 없는 눈물 없고, 이유가 없는 무덤 없다”는 말을 실감한 것이지요. 여인은 그러는 사이 겨자씨를 찾는 일이고 뭐고 다 잊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아들은 이미 여인의 마음속에서, 대저택에서 오두막에 이르는 집집마다의 고통스런 사연 속 주인공들과 함께 이미 다시 살아난 것이니, 겨자씨는 이미 찾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어쩌면 아들을 부활시킬 영묘한 겨자씨는 아픔과 상처를 서로 나누고 보듬음으로써 고통 속에 죽어 있던 다른 집 자식의 영혼들도 함께 부활시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인에게 겨자씨가 실체인가 아닌가는 이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 셈이고, 여기에서 여인은 ‘내 자식, 네 자식’의 경계나 차이를 넘어 하나로 체험하게 되었으니 이미 종교의 세계로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한 가지, 이야기에서는 아들이 ‘불행한 사고’로 죽었다고만 할 뿐 어떤 사고였는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동병상련의 공감과 슬픔의 나눔을 통해 부활에 이르는 과정은 인간해방의 길이지만, 이 이야기나 부처님의 치유법처럼 개인이 상처를 치유하는 데서 끝난다면 앞으로 똑같은 불행을 당할 사람에게 그 불행을 막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데에 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아들의 불행한 사고가 개인의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복잡한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문제를 하나하나 파헤쳐 그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정확히 가려내고,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할 때에야 비로소 제2, 제3의 불행한 사고를 막을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의 치유에 머무는 종교의 가르침을 이웃과 공동체의 치유로 확대해 나아갈 때 진정한 종교적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세월호 사태’를 대하는 종교인의 태도도 마찬가지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이만 인사를 대신합니다. 한 여름의 태양이 벌써 이글거리는 듯이 느껴지는 7월에 뵙겠습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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