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떠나는 아시아 여행 –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어려움

황경훈(아시아평화연대센터장)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어려움

우리 보통 사람들의 일상은 잔잔히 흐르는 시냇가처럼 평온할 때도 있지만,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격앙되어 폭발 직전까지 가거나 결국은 상대방과 싸움으로 이어질 때도 있음을 어렵지 않게 보거나 겪곤 합니다. 누구와 다투거나 말싸움을 할 때 종종 잘하는 말 중에 “처지 바꿔서 생각해봐”라던가, “만약 네가 내 입장이라면….”하는 표현이 있지요. 소통이 잘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사실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서 상대방의 처지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간단하지도 또 쉽지도 않지요. 어떻게 보자면 동양의 여러 종교전통과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서양 종교들에서도 바로 이런 역지사지를 얼마나 깊이 있게 실천했는가 하는 점으로도 ‘성인’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을 듯합니다.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완전한 일치의 표현으로 자신을 희생한 이들을 성인이라고 공경하는 이유도 그것의 어려움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종교는 늘 종교인들에게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가르쳐왔고, 그렇기에 종교가 수 천 년의 역사를 지녔음에도 아직도 사람살이에서 올바르고 더 깊은 세계를 동경하는 이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해갈과 그것을 넘는 감동을 주고 있는 듯합니다. 옛날도 사정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오늘 우리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시아 서쪽의 옛 페르시아에서 전해 온다니, 그리로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종자의 깨달음

 

(이 이야기는 아시아 서남쪽에 자리 잡은 페르시아(현재 이란)의 이슬람교 신비주의파인 수피교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언젠가 열성파 신도라는 명성이 자자하던 개종자가 있었다. 적들에 대한 그의 맹렬한 공격은 분노로 들끓고, 그가 내뱉는 말은 청산유수 같으면서도 냉혹하기 이를 데 없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가 어느 날 현자를 찾아가 이야기했다. “저는 다년간 악마를 위해 종일토록 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을 위해 종일토록 일하고 있습니다. 그간 저는 믿음이 잘못되거나 오류를 가르치는 자라면 누구와도 싸우는 일에 투신해왔습니다. 거짓과 싸우는 일은 온종일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자 현자가 물었다. “그대는 적들을 공격하기 이전에 그들의 입장에 서본 적이 있었던가?”

“물론 그랬습니다.” 개종자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저는 공격이 더 큰 파괴력을 지닐 수 있게 하려고 그들을 세밀하게 연구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연구를 하는 겁니다.”

그 순간 부드럽기만 하던 현자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개종자의 이름을 마구 부르고 그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이런 상태는 개종자가 ‘선생님 제발 고정하시라’고 사정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현자는 갑작스럽게 평온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되돌아와 말을 이었다. “적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히 않지. 그대는 그대가 적들을 공격할 때 이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도 알아야 한다네. 그대는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적들을 온전히 이해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진리의 종이 될 수 있을 걸세.”

그날 이후로 이 개종자는 아주 겸허하고 사려 깊은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출처: 『진짜 이야기를 찾아서』 (성바오로출판사, 1992)

이야기는 주인공인 ‘개종자’가 어느 종교에서 개종하였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현재의 이란에 해당하는 고대 페르시아 왕국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이슬람의 신비주의 교파라는 전제가 붙어 있으니 아마도 전에는 다른 종교를 믿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또 종교가 없이 살다가 이슬람에 입교한 경우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어느 경우이든, 이야기는 개종한 이유를 밝히는 대신에 개종자가 오랫동안 ‘악마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일하다가 지금은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소개하고 있지요. 그러면서 잘못되고 오류인 믿음을 가르치거나 거짓이라고 판단되는 것과는 비타협적으로 온종일을 바쳐서 투쟁해왔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 개종자를 좀 더 찬찬히 살펴보기로 하지요. 개종자는 자신이 ‘악마’와 ‘주님’ 사이를 오갔다고 표현한 데서 보이듯이, 완전히 극단에서 극단으로, 지옥과 천국만큼이나 거리가 있을 것 같은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은 악마를 위해 일할 때도 그랬고, 주님을 위해 일하는 지금도 ‘적들’에게는 비타협적으로 혼신을 다해 투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잘못과 오류와 거짓을 바로잡기 위해 그토록 적들에게 사정없는 냉혹한 싸움을 일삼아 해야 한다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과연 개종자가 말하는 이 ‘적’은 누구일까요. ‘악마’와 ‘주님’에게는 서로가 적일 테지만, 말이 좋아 악마와 주님이지 제삼자의 눈에는 이름만 다른 두 극단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들을 가끔 듣고는 하는데, 이 개종자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네요.

극단이라는 것은 더는 나아갈 데가 없는 ‘맨 끝’이라는 의미에서 ‘절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개종자가 처음 악마를 위해 그토록 헌신적으로 투신할 수 있었던 것도 어떤 틈이나 조금의 변화도 허락하지 않는 이런 ‘절대’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주님을 위한 일’의 경우에도 이름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같다고 보입니다. 완전하고 절대적이라는 것 말고는 삶의 의미가 없는 그 맹목성 때문에 그전의 악마나 지금의 주님이나 마찬가지로 자신은 선하고 상대는 악해야 하는 것이지요. 종교적 극단주의나 근본주의자들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폭력도 마다치 않는 근거도 여기에 있는 듯합니다. ‘역지사지’는 고사하고 다시 자기중심으로 돌아와 이를 정당화하려 화려하고 멋진 말로 포장하는 것이겠지요. 말이 길어져 재미가 없어지려고 하니 이야기로 서둘러 돌아가 보겠습니다.

개종자가 얼마나 철저하고 비타협적인 주님의 진리를 지키는 투사인지를 과시하자 현자는 ‘적의 입장에 서 본 적이 있는지’에 관해 묻고는, 개종자의 대답이 어설퍼서인지 벼락같이 화를 냅니다. 아마도 현자는 이렇게 불같이 격하고 공격적인 감정을 개종자에게 퍼부음으로써 공격을 ‘당하는 이들’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깨닫게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온유한 표정으로 돌아와 말합니다. 완전한 진리의 종이 되려면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적들을 온전히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이지요. 여기서 현자는 ‘머리로 이해득실을 따져 적들의 장단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며 공격당할 때의 ‘기분’, 그 감정 상태까지도 잘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몸소 불같이 화내는 것으로 보여주어 개종자를 깨달음으로 이끌게 합니다. 마치 선불교의 선승이 머리로만 깨달음을 얻어 보려는 제자에게 몽둥이질이나 ‘할’이라고 고함쳐 정신을 버쩍 들게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이 개종자 같은 극단주의자에게는 언제 선에서 악으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다시 갈지 모르기에 그것을 더 철저히 성찰하는 힘, 곧 비판적 이성의 힘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의 예가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그리스도교를 억압하고 교인을 박해하고 죽였던 살인자였지만, 극적인 회심의 순간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옹호자요 제일가는 선교사로서, 그리스도교의 ‘실질적인 창설자’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에서는 바오로의 이런 극적 회심과 선교만을 지나치게 조명하고 그가 자신을 통제하고 수련하기 위해 얼마나 ‘이성적’으로 비판적인 접근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그 많은 서간을 써내었는지는 별로 세심하게 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도 극단적인 삶을 살았던 바오로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개종자에 비견될만하고, 그 깨달음 또한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성찰 과정이 없다면, 앞서 개종자의 개종은 악마에서 주님이 아니라 ‘악마1’에서 ‘악마2’로 수평 이동한 것일 수 있고, 더 문제는 개종자가 그것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겠지요. ‘역지사지’의 어려움이 이 정도라면, 우리 일상 삶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도를 닦는 도량이 아닌가 합니다.

푸른 물이 들것만 같은 바다가 그리운 8월에 뵙겠습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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