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믿고, 믿고 알고 –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참다운 인간개발과 청년 사도의 역할 – 2014년 아시아 청년 아카데미 (AYA)/ 아시아 실천신학 포럼(ATF)에 다녀온 후

오유정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참다운 인간개발과 청년 사도의 역할

– 2014년 아시아 청년 아카데미 (AYA)/ 아시아 실천신학 포럼(ATF)에 다녀온 후

꼭지 소개

알고 믿고, 믿고 알고: 새 꼭지인 ‘알고 믿고, 믿고 알고’ 는 ‘체험하는 신앙’으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쉽고 좀 더 가깝게 풀기 위한 우리신학연구소의 시선으로 개최하는 세미나와 월례 발표회, 행사 후기 등을 나누는 곳입니다. 배움의 여정을 통해 단단한 껍질을 뚫고 새로운 세계로 나올 수 있는 작은 발걸음에 함께 동행해주세요.

‘고작 스무 살인데 혼자 인도에 갈 수 있겠어?’ ‘네가 행사에 잘 참여할 수 있겠어?’ 출발하기 전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응원보다는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뜨거운 인도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2014년 7월 17일부터 26일까지 인도 케랄라주 벤지거 영성센터에서 열린 이번 아시아 청년 아카데미와 아시아 실천신학 포럼에 한국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 소속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이번 행사에서는 15개국에서 모인 NGO 활동가와 대학생들이 아시아 농민 빈곤 문제를 중심으로 전인적 인간 개발과 생태적 지속성에 대해 논의해보는 자리였다.

인간 개발과 생태적 지속성이라는 이번 행사의 키워드는 방대하여서 접근하기 힘든 주제였다. 하지만 최근 가장 뜨겁게 논의가 되고 있는 사회 이슈이며, 특히 가톨릭이 추구하는 가치와 가장 부합하는 키워드라 생각한다. 한국 교회는 더는 자본주의적 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인간 개발을 추구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인 세월호 참사는 잘못된 인간 개발의 모습과 철저히 경제적 논리만 중시하고 생명의 가치는 경시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가톨릭 청년 사도로써 한국 사회의 병폐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회의감에 빠진 나에게 15개국에서 모인 가톨릭 청년 사도들과 논의할 기회가 생긴 것은 행운이었다.

맨 처음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로 두렵기도 했다. 왜 이 기회가 나한테 왔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내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할 바엔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중 인도로 출국하기 전 주일 복음을 통해 주님의 응답을 들었다. 네 가지 씨에 관한 비유였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마르코, 4:8)

좋은 땅에 떨어진 씨에 대한 비유. 나는 하느님이 뿌리신 씨앗을 품은 좋은 땅이 될 사람이었다. 좋은 땅이 되라고 이번 행사에 참가할 기회를 주셨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가서 많이 경험하고 느끼며 좋은 땅이 되어 돌아오리라. 그리고 이 가르침을 많은 이들과 나누리라.

청년 아카데미 공식 일정이 시작되었다. 아시아 각국에서 다양한 활동 중인 대학생, NGO 활동가, 농민, 신학자들이 참석했다. 아시아 청년 아카데미에 앞서 인도 농촌 상황을 실제로 경험하기 위해 벤지거 영성 센터에서 3시간 떨어진 티루바난타푸람 지역으로 현장체험을 갔다. 현지 성당 청년부의 집에서 홈스테이로 2박을 머물며 그들의 생활양식을 경험하고, 주요 수입원인 작물재배를 경험해 보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도시생활에서 느끼기 어려운 정이었다. 나의 호스트 가족은 노부부였는데 방학기간이라 손녀와 손자가 머물고 있었다. 호스트 가족은 한국인을 처음 만났다고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한국에서 먹어볼 수 없는 음식들로 현지식사를 경험했다. 인도 식사 예절의 특이한 점은 식사를 하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제일 먼저 손님이 먼저 밥을 먹고 자리를 피해야 집안의 남자와 아이들이 밥을 먹고, 마지막으로 집안의 여자들이 식사 한다. 한 상에 옹기종기 앉아 밥을 먹는 우리나라 식사 모습과 달라서 특별하기도 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집은 인도 농촌의 전통 주택이라 많이 불편했지만, 고생스러운 경험이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벌레가 기어 다니고, 화장실도 고장 나고, 전기도 잘 끊어지는 곳에서 알 수 없는 평화를 느꼈다. 디지털 세대에 태어난 내가 완전히 전자기기에서 벗어나 시골의 별이 빛나는 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언젠간 내가 사는 사회는 주님보시기에 흡족한 공간은 아니라는 묵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인도의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과 숲으로 둘러싸인 시골집은 평화와 영성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이러한 공간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들에게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개발시킬 수 있는 걸까. 이질감이 느껴졌다. 수입은 얼마 되지 않지만 멀리서 온 손님들에게 모든 것을 베푸는 정이야말로 풍요롭고 순박했다.

현장 체험을 토대로, 본격적으로 지속 할 수 있는 개발과 인간개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끊임없이 현장 체험에서 경험했던 농촌의 모습을 논의와 연관 지어 생각해보았다. 순박하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그들에게 필요한 인간개발은 무엇일까? 자본주의적인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본다면,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 정신이 추구하는 진정한 인간개발의 측면으로 접근한다면, 인간 개발은 경제적 논리를 넘어 정신적 가치의 발전, 제도의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논의가 거듭될수록 ‘발전’이라는 개념이 배운 것과는 다르게 인식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내가 배운 ‘발전’의 의미는 경제적으로 더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것,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생활 방식을 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 세월호 사건을 보면 우리 사회는 그들보다 발전된 사회일까? 경제적인 논리에 따르면 분명히 발전한 사회이다. 그러나 물질적인 가치를 뛰어넘는 인간 개발의 측면으로 접근했을 때 우리 사회는 아직도 더 많이 ‘발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각국에서 모인 참가자들과 자유 시간을 이용해 이 시대를 사는 청년 사도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젊은 가톨릭 활동가로서 내가 이곳에서 배운 새로운 접근의 인간 개발을 어떤 식으로 실천할 수 있을지 대화가 오갔다. 한 참가자가 우리는 나이가 어리기에 제약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힘도 없으며, 파급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 참여하며 느낀 것은 젊으므로 오히려 가능하다는 것이다. 잃을 것이 없기에 더 크게 목소리를 내고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거기 참여해서 뭐 배웠어?’ 하는 사람들에게 답을 한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 그것이 진정한 인간개발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톨릭 청년으로서 지켜야 하는 가치라고. 실천하는 청년사도가 되기 위해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배운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세월호 사건 100일이 넘어서야 내 목소리를 낸다.

오유정 서울가톨릭연합회 소속 대학생.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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