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 지존파,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그 후 20년 –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임효진

지존파,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그 후 20

–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영화는 이십여 년 전 굵직한 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지존파와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이 그것이다. 뉴스와 당시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세 사건을 재조명하고, 현재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실화 영화, 다큐멘터리이다.

어떠한 정보 없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 손목에 수갑을 찬 범죄자들의 얼굴과, ‘살인의 탄생’이라는 문구, ‘희대의 살인마가 되살아난다’는 문장 때문에 언뜻 지존파의 악랄함을 탐구한 영화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담고 있는 묵직함에 가슴이 무거워질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얕지 않다. 지존파의 사건이 일어났던 사회적인 맥락과 단지 그들이 살인을 저지른 배경을 깊이 들여다본다.

지존파의 살인에는 압구정 오렌지족과 부자들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기자들은 이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정신없이 모여든다. 셀 수 없는 카메라와 기자들의 마이크들이 지존파의 앞으로 퍼부어지고, 평균 나이가 이십 대 초반이었던 지존파의 멤버들은 흥분하여 자극적인 말들을 내뱉는다. 당시 90년대 사회는 이들을 ‘악마’, ‘상실된 도덕성’의 상징으로 몰아간다. 영화는 지존파 문제를 두고 벌어졌던 당시의 토론 영상을 보여준다. 효 의식과 도덕의식이 타락했다며 도덕교육의 강화만을 주장하며 열변을 토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우습기 짝이 없다. 사회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과속화와 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들은 보지 않았다. 그리고 지존파는 바로 이듬해에 사형당한다.

영화는 지존파가 사형당하기 전에 교도소에서 이들을 만났던 수녀, 교도관 등을 인터뷰하고 이들이 그렇게 악랄한 모습만을 가졌던 사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관람객들은 그들이 당시 언론에 비쳤던 악마의 모습만이 아닌, 의외의 순수한 면을 가지기도 했던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지존파 사건과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사건을 연결시킨다.

성수대교 붕괴 사건으로 32명이 사망하고, 삼풍백화점 사건으로 502명이 죽고 937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6명이 실종되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 있었던 당시 서초경찰서 강력반 반장의 말을 들어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산지옥이 따로 없다. 지존파가 살해한 다섯 명의 숫자와는 비교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숫자들의 사람들이 죽었다. 지존파의 죄가 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엄청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예기치 않게 살해당했지만, 지존파처럼 직접적으로 계획과 흉기를 통해 죽은 것은 아니다. 형법적인 살인이 아니다. 그래서 삼풍백화점의 운영주는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는다. 살해당한 사람은 있는데 단죄해야 할 살인자는 없다. 사회는 그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다. 두 사건 다 자본주의의 폐해에서 비롯되었지만 그에 따른 처벌은 너무도 차이가 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는다. 이 영화는 2013년도에 제작되었다. 그리고 2014년에 개봉하였다. 2014년 4월 16일, 진도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건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하나도 바뀐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십 년 동안 우리는 뭐가 달라졌는가? 세월호 사건 또한 지존파처럼, 사회나 시스템 정부에 대한 처벌은 감추기에 급급하다. 유병언과 구원파. 그들이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인 양 마녀사냥을 한다. 어떤 이는 세월호 관련 기사에 댓글로 구원파에 속한 재산을 압류하는 게 중요하며 대통령을 잡기 위한 행동은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왜 잘못이 없는가? 왜 이들의 잘못을 가리는 행동이 의미가 없는가? 이십 년 전의 이루지 못한 단죄는 또 똑같은 참사를 만들어냈다. 허술한 배를 운영했던 것은 기업이지만, 그 허술한 배를 운영할 수 있게 해준 시스템과 법, 어처구니없는 대응으로 살릴 수 있었던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해한 건 정부다. 사 개월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의 진상을 밝히려고 하는 노력을 정부는 모른 체하며 협조는커녕 책임을 전가하며 훼방만 놓고 있다.

영화는 광주항쟁과 IMF까지 들여다본다. 수많은 사람을 인재로 죽였던 전두환과 노태우도 여전히 살아 있다. IMF 때문에 무너졌던 가정들, IMF 때 자살한 사람들의 숫자는 통계를 내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정작 제대로 단죄해야 할 사람은 단죄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왜 죽음으로 내몰렸는가? 또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세월호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 영화는 그 이해를 돕는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세월호 사건과는 별개로 제작된 것이지만 요즘의 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나서 주의해야 할 생각이 있다고 본다. 지존파는 어떤 의미에서 매체에 마녀사냥을 당했지만, 그들이 다섯 명을 죽였다고 해서, 다른 큰 사건들 희생자의 숫자와 비교하여 그들의 죄가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가난하고 박탈감을 느낀다고 해서 모두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는 건 아니다. 우리는 사회가 이렇게 모든 상황을 만들었다고 합리화하고 개인 혹은 단체의 죄를 묻어서는 안 된다. 다만 살인자 없이 살해된 수많은 사람들과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자들을,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를, 시시비비를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이십 년 전에 초등학생도 되지 않은 어린애였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놀랐다. 90년대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어 놀랐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별반 다를 것 없다는 것에 놀랐다. 1990년대를 제대로 겪은 중장년층에게는 이 영화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와 같은 젊은 층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나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이 영화는 추천할 만하다.

다시는 끔찍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지만 엄습하는 불길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이십 년이 지나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그때는 또 어떤 느낌이 들까? 그때는 뭔가 달라져 있기를 바란다. ‘그때마저 변한 게 없어’ 라고 속삭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끔찍한 일일 거라는 생각이다.

임효진 비정규직으로 근근이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이십 대. 선택하며 살아가고 싶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9월호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