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이 노래 같이 들어요! – 커피소년의 「영어」와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

유정원‧강민영

엄마, 우리 이 노래 같이 들어요!

  • 커피소년의 「영어」와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

민영이의 노래_ 커피소년 「영어」

엄마, 엊그제 중간고사가 끝났어. 그래봤자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써야 해서 한 달 후에 또 시험이지만, 시험이 끝나니 자유와 여유로움이 느껴져. 시험은 죽을 쒔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어, 이미 지난 일인데. 물론 조금 아쉽긴 해. 문제가 어려울 거라 해서 가장 걱정했던 영어 점수는 꽤 잘 나왔어. 영어를 좀 열심히 하긴 했지. 내가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영어를 잘 해야 하는 학교이기도 하고, 영어 선생님이 날 좀 귀여워하시기도 하고.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스피치 대회에서 2등을 한 거? 2등 한 애가 90점도 못 맞으면 쪽팔리잖아.

아니 근데, 영어 좀 못하면 어때? 나는 시험문제 어렵게 나온다는 말을 듣고 ‘우리나라 말도 아니고 외국어를 왜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지?’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 그러면서도 공부는 해야 했어. 못 보면 쪽팔리니까. 대학 못갈 것 같아서. 인생이 꼬일 것 같아서.

이때 내 머리를 스치는 노래가 하나 있었지. 커피소년의 ‘영어’라는 곡이야. 커피소년은 인디가수고 싱어 송 라이터(singer song writer)인데, 달달한 노래를 많이 만들었어. 내가 그전까지 들었던 커피소년의 노래도 모두 달달한 노래였고. 그런데 이 노래를 처음 듣자마자 웃을 수밖에 없었어. 가사를 보면 내가 웃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거야.

배워도 배워도 안 된다. 파란 눈 그들이 무섭다.

배워도 배워도 새롭다. 인사만 20년 했다.

남들은 다 잘하는데 어떻게 한 거니? 유학 갔다 온 거니?

영어가 제일 쉬웠니? 난 침묵으로 한글의 우수성을 전한다.

그래도 포기 안 한다. 언젠가 네이티브가 되리.

지금은 초등영어 1장이어도

언젠가, 내면의 깊은 잠재의식과 인간의 무한함과

국제정세와 현 정권의 실태를 영어로 스피치 하리.

언젠가, 동북아의 미래와 통일과의 밀접한 관계를 영어로 스피치 하리.

배워도 배워도 안 는다. 혀가 꼬일 리가 없다.

to부정사가 웬 말이냐? 조동사는 먹는 거냐?

어때, 재미있지? 앨범 소개에 이 노래를 만든 이유가 나와 있어. 미국여행을 갔을 때, 영어회화가 잘 안 되었나봐. 그래서 영어의 필요성을 깨닫고 스스로를 독려하다가, 한국인의 영어에 대한 한과 아픔을 위로하고 응원하고 싶어서 만든 거래. 남들은 몰라도 나는 응원을 받은 것 같아. 특히 ‘언젠가 내면의 깊은 잠재의식과, 인간의 무한함과, 국제정세와, 현 정권의 실태를 영어로 스피치 하리. 언젠가 동북아의 미래와 통일과의 밀접한 관계를 영어로 스피치 하리’ 부분이 압권이야.

내가 스피치 대회 대본 쓰느라, 자려고 누운 엄마 목청을 돋우게 만들었잖아. 영어 진짜 어려워 죽겠는데, 마감 바로 전날 밤에 툴툴거리면서 억지로 겨우겨우 쓰고 새벽 1시에 잠들었건만, 걱정이 되었는지 6시에 눈이 떠졌어. 난 진짜 대회 나가기 싫었는데, 선생님이 나가라고 재촉하시는 거야. 그럼 어째, 싫어도 나가야지. 정말 울며 겨자 먹기로 나간거야. 나 그때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 주제를 못 정해서 쩔쩔매다 가까스로 정했지만, 바로 글이 나오지 않아서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는지. 결국 글 제목이 “Why I Should Study English?” 이었잖아!

진짜 왜 영어를 공부해야만 할까? 영어는 왜 중요한 과목일까? 영어 못하면 진짜 대학을 못가나? 대학을 못가면 진짜 인생이 꼬이나? 영어 못하는 게 쪽팔릴만한 일인가? 한글 맞춤법 틀려서 지적하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면서, 영어 스펠링 틀린 거 지적하면 쪽팔려하는 게 맞는 건가? 진짜로 웃긴 건 뭔지 알아? 내가 이러면서도 영어를 잘하고 싶어 한다는 거. 영어를 못하면 대학을 못 간다는 말, 대학을 못가면 인생이 꼬인다는 말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엄마의 노래_ 정태춘「시인의 마을」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 영어회화를 잘하는 사람에 대한 내심 부러운 마음! 모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해야 할 것 같은 우리의 교육 현실! 내가 초중고 교육을 받을 때보다 훨씬 더 일찍 외국어와 외국인들에 노출된 너희 세대의 시대적 정황! 이 모든 것이 너를 상당히 억누르고 있는 것 같구나.

오죽하면 ‘영어’라는 대중가요가 나오고, 네가 쓴 아이돌 가수들 노래 제목이 다 영어였겠니? 현재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명도 영어가 훨씬 많잖아. 네가 가장 좋아하는 샤이니(SHINee)와 내가 좋아하는 투애니원(2EN1)은 물론이고 빅뱅(Big Bang), 엑소(EXO), 씨스타(Sistar) 등등. K-POP을 지향하는 현 가요계와 연예계 실정에 따른 조치이기도 하겠지만, 네가 분노하다시피 그네들은 한국 가수임에도 외국에서 더 많은 공연을 하며 돈을 벌어들이느라, 정작 모국인 한국에선 1년에 한 번 단독 콘서트를 하면 다행일 정도지.

민영아, 내가 너에게 늘 하는 말이 있지? “시험성적이 80점만 되면 된다.” 내가 80점을 기준으로 한 것은, 그 점수 정도면 배운 것을 대부분 이해하고 있을 거라는 내 경험에 따른 것이란다. 또 덧붙이는 말이 있지. “국어, 영어, 수학은 무척 중요하니 늘 80점은 맞도록 노력해라. 다른 과목은 망쳐도 단기간에 점수를 올릴 수 있지만, 이 세 과목은 네가 원하는 대학과 전공 선택을 위해 꾸준히 공부해야 해.” 지금은 중학생이니 80점 이상이 수월하지만, 고등학교에서 치르는 모든 시험에서 80점 맞기란 만만치 않거든. 물론 이것은 지금 학생들 기준이 아닌 내 기준이야.

그 중에 영어가 들어 있고, 사실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능숙하게 구사하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과 집중이 필요하겠지. 내 지인들 중 어떤 이는, 내가 영어책을 거의 10권쯤 번역하고 박사라고 해서 영어에 능통할 거라 착각을 해. 나는 영어로 말하고 듣고 쓰는 것이 거의 벙어리와 문맹 수준이라, 이들 앞에서 얼마나 민망하고 작아지는지… 게다가 번역할 때는 아주 쉬운 단어조차 사전을 보며 끙끙대고 있다는 걸 너는 익히 알고 있잖아.

그런데 말이야,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또 있어. 사실 영어 번역을 잘 하려면 우리말을 사랑하고 맛깔나게 쓸 줄 알아야 해. (국어 과목을 제일 좋아하는 너에겐 아주 반가운 소식이지?) 그럴 때에야 영어라는 언어의 바다에 매혹되어 헤엄칠 엄두를 낼 수 있거든. 얼마 전부터 출근 시간 지옥철 속에서 하루에 한편씩 영시(英詩)를 외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비로소 ‘영어 배우길 참 잘했구나!’ 생각하게 되었어. 좋은 우리말 시들의 여운과 감성을 잘 아는 나에게, 영시들이 전해주는 담백하고도 진실한 고백과 성찰들이 깊고 고요하게 내 안에 스며들어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있거든.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 처음 듣고 반한 노래가 있어. 선배와 낯선 지하주점에 앉아 있다 들은 이 노래 가사에 빠져, 순간 선배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 그때 선배에게 그 노래 제목과 가수에 대해 묻고 싶은 마음을 꿀꺽꿀꺽 삼키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창문을 열고 음 내다봐요. 저 높은 곳에 우뚝 걸린 깃발 펄럭이며

당신의 텅빈 가슴으로 불어오는 더운 열기에 세찬 바람.

살며시 눈 감고 들어봐요, 먼 대지 위를 달리는 사나운 말처럼

당신의 고요한 가슴으로 닥쳐오는 숨가쁜 벗들의 말발굽 소리.

누가 내게 손수건 한 장 던져 주리오. 내 작은 가슴에 얹어 주리오.

누가 내게 탈춤의 장단을 쳐주리오. 그 장단에 춤추게 하리오.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 끊이지 않는 번민(사색)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방랑자(수도승)처럼

하늘에 빗긴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테요.

정태춘의 주옥같은 노래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야. 그가 수수한 생활복과 맨발에 흰 고무신을 신고서 기타를 퉁기며 부른 ‘시인의 마을’이 출퇴근 길 짐짝처럼 떠밀리는 내 안에서 그윽하게 펼쳐지고 있어. 영시를 읊조리며 우리말로 음미하는 내 영혼의 입술을 따라서.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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