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 쇼핑, 그 달콤함의 이면

임효진

쇼핑, 그 달콤함의 이면

– 누누 칼러, 『쇼퍼 홀릭 누누 칼러, 오늘부터 쇼핑 금지』

나는 어릴 때부터 옷을 좋아했다. 뛰어나게 잘 입진 못했지만 말이다.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 가서도 옷들을 훔쳐보며 쭈뼛거리는 게 다였지만 꾸준히 좋아했다. 옷을 잘 입기 위해서 여성채널을 주로 보고, 잡지 같은 것들을 뒤적거렸고 인터넷 즐겨찾기에는 늘 쇼핑몰 목록이 가득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옷을 고르는 눈이 생겼고, 취향이 생겼다. 예전에는 어떤 옷이 예쁘냐는 말에도 대답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던 내가 어떤 옷을 봐도 저건 예쁘네, 이건 별로네, 하고 말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 것이다. 옷 소비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바로 대학생 때였다. 말릴 부모님은 고향에 떨어져 있고 난생 처음 용돈을 받으며 혼자 살게 된 것이다. 헛헛함을 쇼핑으로 채워나갔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룸메이트의 추천 때문이기도 하지만, 돈을 아껴야 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내게 통장 잔액의 적(敵)은 옷이었다. 기숙사나 자취방에 텔레비전은 없고, 인터넷에 들어가게 되면 당연한 절차처럼 쇼핑몰을 클릭하게 되는 것이다. 몸매가 여리고 날씬한 여자들이 형형색색의 옷들을 걸치고 뽐내었다. 구입은 무척 손쉬웠다. 마음에 드는 옷이 있다. 장바구니에 넣는다. 결제한다. 끝. 십 분도 되지 않아 구매가 이루어진다. 그러면 하루나 이틀 뒤에 택배 기사가 문을 두드린다. 택뱁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택배를 받아들고 당장 뜯어 입어본다. 그리고 옷걸이에 걸어둔다. 한두 번은 기쁘게 입고 나가지만 이내 그 옷도 익숙해진다. 다른 모든 옷들과 같이 지겨워진다.

『쇼퍼 홀릭 누누 칼러, 오늘부터 쇼핑 금지』는 누누 칼러라는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심하게 쇼핑에 중독된 주인공이 일 년간의 쇼핑 금지를 선언하고 그 약속을 지켜나가며 깨닫게 되고 느끼는 것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처음에는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받았다. ‘음, 안 그래도 옷 사고 싶어 손이 간질간질한데 읽어 보자’ 싶었던 것이다. 표지도 앙증맞은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고, 제목 또한 가벼워보였다. 쇼핑을 좋아하는 예쁘고 스타일리시한 여자가 쇼핑 금지를 선언하며 겪는 좌충우돌 에피소드? 이 정도의 내용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책은 옷이 어떻게 우리 손으로 오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해준다. 그 배경에는 대기업들과 끔찍한 자본주의가 있다. 사람들은 옷들이 어떻게 해서 매장에 걸리고 우리 손에 들어오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값싼 옷들. 그 뒤에는 그보다 더 값싼 입금을 받고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우리나라에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고, 한번 사면 다시 같은 옷을 살 수 없고, 저렴한 가격을 자랑한다.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옷들은 환경을 파괴하고 좋은 옷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기업은 저렴한 가격을 측정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가는 임금을 낮게 측정한다. 임금이 낮은 개발도상국 국가에 공장을 세우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다. 지구상의 옷 75퍼센트가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의류 산업의 임금은 과도하게 낮아서 일주일에 70시간을 넘게 일해도 가족을 먹여 살릴 임금조차 받지 못한다고 한다. 더구나 환경파괴는 어떠한가? 엄청나게 많은 옷들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에피소드는 자살 목화였다. 유전공학 대기업 몬산토가 아무것도 모르는 인도 농부들을 속여 유전자조작 씨앗을 홍보, 판매한 것이다. 목화씨벌레에 저항력을 가졌다는 말로, 기존 친환경 씨앗보다 네 배는 더 비싼 값에 말이다. 농부들은 넓은 땅을 사기 위해 빚을 지기 시작했고 그 땅에 씨앗을 사들여 뿌린다. 그러나 목화씨벌레도 그 씨앗에 적응을 해버린다. 산더미같이 빚을 지고도 농부들의 수확은 형편없었다. 이에 대해 몬산토는 또 다른 유전자조작 씨앗을 개발하고 농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또 살충제를 구매한다. 그 살충제 또한 대기업에서 말이다. 책에 더 자세히 나와 있지만, 여기서는 짧게 설명하기로 한다. 농부들에게 탈출구는 없었고, 농부들은 스스로 살충제를 먹고 자살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단지 한 사람의 사례가 아니다. 자살한 농부들은 인도에서만 25만 명에 육박한다고 책은 말해준다. 공식 집계된 수치 말이다. 25만 명이라니.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지금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이 책상 옆에도 내 옷 행거가 있다. 이 행거의 옷들은 대부분 목화로 만들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목화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1.1 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내가 사고 걸치는 옷은 어디에서 왔을까? 나는 내 행거에 걸린 옷들을 뒤적거렸다. 백화점에서 산 브랜드 옷은 꼬리표가 달려 생산지가 나와 있었지만, 보세로 구입한 옷들은 그 꼬리표마저 없었다.

책은 그 밖의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우리가 입는 옷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어 우리 앞으로 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사회적, 환경적인 문제가 발생했는지 알려준다. 그렇다고 머리 아픈, 잔소리를 하는 듯한 책도 아니다. 옆집 언니가 얘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솔직하고 친근한 말투가 매력적이다. 작가 누누는 여기서 끝내지 않고 어떤 식으로 대안적인 소비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간다. 공정하게 만들어진 옷을 찾아다니고, 의류 교환 파티를 열고, 스스로 옷을 만들어나간다. 소비욕에 눈이 멀어 잃고 살았던 여유도 되찾는다.

끝까지 책을 읽고 나자 거짓말처럼 쇼핑 욕구가 사라졌다. 내 행거와 수납장에는 원피스와 블라우스, 자켓, 점퍼들이 이미 가득 차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물론 백 퍼센트 욕심이 없다면 진실치 못하겠지만 이제 옷을 단순히 ‘옷’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이 소비시장에 노출되어 있다. 새 옷을 구입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매체들은 소비를 부추긴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잡지, 신문 기타 등등. 옷은 이제 개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고 화려한 면만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어두운 면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옷을 사기 전에 이것이 정말 가치가 있을지, 어디에서 왔는지,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 꼼꼼히 따져보는 소비 습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래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해서든 적은 돈으로 많은 이율을 창출하려 들고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옷이나 음식, 기타 물질들이 어떻게 우리 앞으로 왔는지 잊은 채 소비가 주는 잠깐 동안의 쾌락에 빠져든다. 쇼핑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그야말로 추천할 책이다. 물론 쇼핑 중독자가 아니더라도 읽고 나면 옷이라는 물질이 달리 보일 것이다.

임효진 스물 넷 청년입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이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때로 두렵긴 하지만, 자꾸만 들여다보려 노력합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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