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짝_우리는 함께 사이좋게 살아간다

우리는 함께 사이좋게 살아간다_ 협동조합 사이좋은 마을

참석자: 신옥진, 조상민

‘협동조합’의 사전적인 정의는 이렇다. ‘조직이 자발적이고, 운영이 민주적이며, 사업 활동이 자조적이고, 경영이 자율적이라는 점에서 정부기업과 구별되며, 또 경제활동의 목적이 조합의 이윤 추구에 있지 않고 조합원에게 봉사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주식회사와도 구별된다.’ 협동조합 ‘사이좋은 마을’ 역시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서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서로 존중하고 돕는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이들. 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인 신옥진 씨와 조상민 씨를 만나보았다.

신옥진 씨와 조상민 씨의 첫 만남은 예수살이공동체 (편집자 주: 갈릴래아 예수의 인간성을 본받아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의 정신으로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신앙인들의 공동체) 에서 시작됐다. 상민 씨가 예수살이공동체 사무국 일을 맡아서 하던 무렵, 산안마을 공동체 (편집자 주: 산안마을은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며 행복해지는 삶을 제시했던 일본의 농부 야마기시 미요조의 영향으로 1953년, “야마기시회(山岸會)”가 일본 교토 근교에서 발족했고, 한국에는 지난 84년 경기 화성시에, 공동체 마을이 만들어졌다. ‘나, 모두와 함께 번영한다’를 회지로 내걸고, 자연계의 리(理)에 따르는, 인간과 인간사회의 본연의 모습을 탐구 실천하며, 인간 사회 본래의 모습 즉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고 있다.) 에서 개최한 7박 8일간의 특강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같이 일했던 은주 씨에게 그 특강을 권했는데 옥진 씨는 그 후배와 특강을 함께 받은 동기였다. 매달 5천 원 이상씩 계를 부어 빈민지역 아이들의 학자금을 지원하는 모임인 5,000원 계에 옥진 씨가 관심을 가진 것을 계기로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교회라는 단어 안에는 ‘공동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요새 교회의 모습에서는 공동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보다는 오히려 무늬만 남아있는 경우들도 많이 보게 된다. 미국드라마 「프렌즈」에서 보던 공동생활, 즉 코하우징(Co-Housing)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져 가고 있지만 사실 나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수살이에서 공동체 생활을 경험한 적 있는 이들에게 그곳에서의 시간은 ‘신선하고 강렬한’ 체험이었다. 상민 씨는 98년도에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고,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그 삶을 좋아하게 됐다. 한집에 살게 되면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안 보고 살 수가 없기에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복음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도전을 주었던 것이다. 옥진 씨는 예수살이공동체를 알게 되고 나서, 신앙이 기본이 되지만 소비주의 사회에서 ‘소유로부터의 자유’, 내면적인 기도만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투신, 그리고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 시대에 예수님이 사셨다면 어떻게 했을까?” 는 질문을 하며 실천하려는 모습들도 크게 다가왔고, 그런 마음들은 차츰차츰 ‘나도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변해갔다.

옥진 씨와 상민 씨가 조합원으로 있는 협동조합 ‘사이좋은 마을’은 “서로 존중하고 돕는​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욕구를 충족하는 공간을 만들어서, 일상을 공유하며 ‘함께 사이좋게’ 살아가는, 사이좋은 마을(도시공동체)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이들이 함께 일구어 가고 있는 ‘사이좋은 카페’ 역시도 협동의 방식으로 만들어나가는 대안공간이다. 예수살이공동체의 전 대표단들이나 활동을 열심히 했던 이들이 ‘사이좋은 마을’의 취지에 공감해서 같은 길을 모색하게 됐다. 거의 일 년 동안 준비 모임을 진행했는데, 매주 진행하는 회의는 물론 적당한 카페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고, 커피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도 다녔다. 처음 카페를 개업했을 때 옥진 씨와 상민 씨는 길게는 열세시간까지 함께 일했는데 아무래도 둘만 같이 있으니 의견이 다를 때도 있었고, 일 자체가 힘드니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어려움에 빠질 때마다 다시금 방향을 잡아주는 등대 같은 말이 있었다.

“저희가 작년에 협동조합을 만들 때 어떤 것을 우리의 사명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비전공유 워크숍을 했거든요. 대여섯 시간 정도 준비하신 분들이랑 같이 의논했었어요. 여러 의견을 받았을 때 네 개 정도 조를 나눠서 했는데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말이 ‘함께’와 ‘사이좋은’ 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함께 사이좋게 살아간다’를 신조로 잡았어요. ‘우리 간에 서로 어려움이 있거나 문제가 있을 때 이 말을 생각해서 이게 정말 사이좋은 방향으로 가는 건가, 어떻게 하는 게 사이좋은 방법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자’ 라고 했죠. 실제로도 저희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었을 때 사이좋은 건 어떤 걸까를 고민하며 했던 것 같아요. 제일 빨리하거나 훌륭하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이좋은 방법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_신옥진 씨

어떤 관계에서 갈등 상황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는 것에서 시작될 때가 많다. 그 작은 부분들을 어떻게 배려하고 타협하느냐에 따라 진정한 단짝으로서 거듭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보니 병을 동그란 걸로 할지, 아니면 길쭉한 걸로 할지, 아니면 설탕을 4,000원짜리를 살 건지 4,500원어치를 살 건지 같은 소소한 문제로 의견이 갈릴 때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많이 얘기하고 부딪히는 과정 자체가 사이좋음”이며, 함께 가는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인터뷰 중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공동체 생활 속에서 서로가 다르기에 겪는 그 불편함과 갈등이 오히려 나 자신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는 상민 씨의 말이었다.

“예수살이공동체나 협동조합은 함께 살아가려는 시도이자 움직임이에요. 목적이 같아서 한 배를 탔지만, 사람이 성향서부터 워낙 달라서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런 어려움이 커졌죠. 그러니까 오히려 공동체 생활 운동에서 다듬어지는 개인들의 욕심, 편견이 훨씬 잘 드러나 보이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고서야 모르거든요. 여러 가지 상황에 놓인 나 자신을 보고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를 알게 되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불편해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건 큰 기회기도 해요. 예전에 어떤 공동체 인터뷰를 봤는데 거기서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공동체라는 것은 정치적 성향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좌에게도 우에게도 정치적 신념뿐 만 아니라 그 공동체에 있는 구성원, 그리고 그 밖에 있는 구성원들에게까지도 항상 도전을 던져준대요.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하려는 자신을 자극하니까요. 귀찮아도 정리해야 하고, 설거지해야 하고…….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자극을 주는 게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인 것 같아요.”_조상민 씨

내가 누군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 함께해야 알 수 있다는 이 아이러니(?)는 우리의 삶에서 왜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공동체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때때로는 보지 않아도 될 서로의 밑바닥까지 보게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말 그대로 천국과 지옥을 지나면, 드디어 서로의 모습을 인정하게 되는 시간이 온다. 이런 관계를 정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들이 얻게 된 것은 차츰차츰 쌓여가는 짙은 신뢰의 농도였다. 상민 씨는 그런 흔들리지 않는 관계를 통해 카페를 열 때도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가진 게 그리 넉넉하지 않은 2, 30대 청년들이 카페를 열고, 도시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 주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선뜻 후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돈보다는 그 사람을 믿고 적은 금액의 후원금이라도 내어주는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상민 씨는 협동조합 활동이 예수살이

공동체 활동에 이은 ‘2.0’ 버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전에 공동체에서 배웠던 여러 가지 좋은 정신과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고민을 하였다면, 이제는 그것을 ‘같이 해보고 싶다’란 생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함께 하는 삶에서 큰 기쁨을 얻은 이들은 청년 신자들이 교회 내에 부재한 현실을 극복 할 수 있는 대안으로 공동체 생활을 꼽았다. 협동조합 ‘사이좋은 마을’ 이 지금 하고자 하는 공동 주거 같은 문제도 일상과 종교적 신념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교집합을 찾고 있는 노력인 것처럼 말이다. 함께 생활하고 일하며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과정이 있다면 이런 것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소비주의 사회와 경쟁 사회 속에서 누군가와 무엇을 함께한다는 것이 그저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하면 내 의견과 주장을 제대로 펼치는 것에는 가로막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옥진 씨는 무언가를 함께 해서 즐겁고 기쁜 체험들이 쌓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협동조합에서 조합원들끼리 모여서 차를 마시고 놀며, 밥을 나누어 먹는 이런 소소한 것들이 공동체 생활의 진정한 맛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함께 가고 싶은 관계란 무엇일까? 인터뷰 도중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옥진 씨와 상민 씨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 함께 활동하게 되었지만 지낼수록 다른 점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건강한 관계를 결정짓는 것은 서로 다르고 불편함을 느낄 때 어떻게 하는 것인가에 따라 달려있다. 깊이 있는 관계 속에서는 정말 ‘끝까지’ 가게 된다고 이들은 말했다. 다른 데까지, 가보지 않은 곳까지 말이다. 그 안에서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구나, 이런 걸 원하는구나’라는 것을 듣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생각해주고 노력해주는 부분이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런 과정에서 신뢰를 하게 되는 싹이 텄고, 다음에 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야기할 수 있고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상민 씨와 옥진 씨가 들려준 단짝의 정의가 있다. ‘쉽지 않은 먼 길,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갈 때 어려워도 서로 믿으면서 가는 관계.’ 이런 관계를 함께 살며 엮어가는 이들의 앞날은 여전히 사이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함께 모여 살며 음식을 나누어 먹고, 퇴근 후에는 서로 카페에 옹기종기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삶을 꿈꾸는 그들. 그들이 일구어 갈 ‘해피 하우스’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0월호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