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우리가 응답해야 할 시대의 징표 – 평화의 샘 윤순녀 대표

%ec%9c%a4%ec%88%9c%eb%85%80%eb%8c%80%ed%91%9c지난 2월 말, 천주교 사제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미투 고발이 나왔다. 이 사건과 관련해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논평한 교회 안의 여성단체는 ‘천주교성폭력상담소’였다.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은 이 단체를 이끄는 윤순녀 대표는 한국 천주교 여성운동의 1세대 선배이기도 하다.

윤순녀 대표는 국제가톨릭형제회(AFI, 이하 아피) 회원으로서 1980년대까지 가톨릭노동청년회(JOC, 이하 지오쎄) 활동가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990년대 초에는 한국천주교회 안에서 여성신학 세미나를 조직해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이하 천여공)’를 설립했으며, ‘한국여신학자협의회(이하 여신협)’ 공동대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활동 등 교회 안팎을 넘나드는 여성운동에 앞장섰다.

윤 대표는 1998년 천주교성폭력상담소를 개소하고, 이듬해는 쉼터인 평화의 샘을 열었으며, 2015년에는 평화위기청소년교육센터, 심리상담센터를 포함하는 ‘사단법인 평화의 샘’을 꾸려가고 있다.

1990년대 천주교 여성운동을 시작하며

Q.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하시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여성운동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1970년대와 1980년대까지 지오쎄 활동가로서 노동사목 현장에서 정말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1987년 민주화 항쟁을 전후로 1986년 6월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비롯해 김부남 사건(9세 때 성폭행한 가해자를 공소시효 때문에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자 살해한 사건), 김보은·김진관 사건(어린 시절부터 12년 동안 상습적으로 강간한 계부를 살해한 사건) 같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서,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문제에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즈음 저도 우연히 여성신학을 접했습니다.

1988년 4월이었는데, 메리놀회에서 손님이 왔다고 저를 불렀습니다. 그 손님에게 메리놀 회원들이 한국의 평신도와 어떻게 연대하며 활동하는지 소개하라고 하면서, 한국의 민주화 현장을 안내해 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마크 엘리스(Marc H. Ellis)라는 아주 유명한 유대인 해방신학자였습니다. 그분에게 저와 함께 노동사목 활동하던 메리놀회 사제들의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또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것이 4·19라고 설명하며 4·19학생혁명기념탑에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저를 기억해서 1년 뒤 미국 메리놀신학교에서 진행하는 여성신학 심포지엄에 초대했어요. 저를 포함해 4명의 여성이 메리놀회의 지원으로 그 심포지엄에 참석했습니다.

80여 명이 모여 한 달 반 동안 진행하는 그 심포지엄에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에서 여성신학을 공부하는 분도 많이 왔습니다. 메리 데일리(Mary Daly)나 정현경 같은 여성신학자도 거기서 만났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많이 아는 것도 아닌데,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 대화하는 요한복음 4장을 배우던 날, 그날따라 영어도 잘 들리고 그 부분이 머리에 쏙쏙 들어와 박히더라고요. 예수님께서 최고 의회 의원 니코데모와 대화하는 요한복음 3장과 물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4장을 비교해서 설명하는데,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화법이 너무나 달랐어요. 그 부분을 공부하는데 내 안에서 무언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000년 동안 우리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시는데, 우리는 그동안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함께 간 3명의 여성에게 우리가 한국에 돌아가면 교회 안에서 여성운동을 조직하자고 말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명동 전진상교육관에서 ‘가톨릭여성신앙강좌’를 열기도 하고, 필리핀에서 여성신학을 가르치는 메리놀회의 헬렌 그레함(Helen Graham) 수녀를 초청해 특강을 하면서 여성들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인 여성들과 1993년도에 천여공을 만들고, 『왜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성서와함께, 1995)라는 교재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여신협에도 나갔습니다.

한창 교회 안에서 여성의식이 신장해가던 무렵인 1995년, 북경에서 열리는 제4차 유엔 세계여성대회를 다녀왔습니다. 천주교에서도 수녀를 포함해서 여럿 참석했는데, 그 대회에 가기 전에 함께 가는 사람들끼리 과거 세계여성대회에서는 어떤 주제가 논의되었는지 공부했습니다. 또 대회에 다녀와서는 그 내용을 교회 안에 알리기 위해 보고회를 열었습니다. 북경여성대회 슬로건이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였는데, 보고회에서 우리는 “여성의 눈으로 교회를 보자”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교회 구성원의 60% 이상이 여성인데, 교회 조직 안에 여성과 관련한 창구가 없으면 되겠냐고 주교회의에 여성 관련 위원회 설치를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2000년에 비록 ‘소’자가 붙어 아쉽지만,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산하에 ‘여성소위원회’가 설치되어서, 저도 초창기 위원으로 3년간 활동했습니다. 또 북경여성대회 이후 가톨릭여성단체연대를 통해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조직하고자 했습니다. 그때 참여한 단체가 열 곳이 넘었고, 정부에서도 여성부가 생기는 등 교회 안팎으로 여성 문제가 한창 주목을 받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만남으로 알게 된 성폭력 문제

Q.천주교 여성운동 차원에서 천주교성폭력상담소도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제가 성폭력 문제에 직접 관여하게 된 건 1992년 정대협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어요. 그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성폭력에 대해 잘 몰랐을 겁니다. 당시에는 ‘정신대’라고 했는데, 제가 태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공부하다가 거기서 그 말을 처음 들었어요. 이게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한국에 오자마자 정대협을 찾아갔습니다.

정대협 활동을 하면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증언하러 세계 곳곳을 다녔는데, 제가 할머니들을 모시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들이 사소한 일에도 자꾸 싸우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아주 갈등이 많아서 모시고 다니기가 힘들었어요. 알고 보니 피해망상 트라우마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들 가방 속에는 늘 약이 한가득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가서 당한 고통을 평생 말도 못 하고 살았으니, 그 한과 병이 얼마나 깊겠어요. 한 사람에게 새겨진 성폭력의 상처가 이렇게 깊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수녀님들께 천주교에서도 누군가 이분들의 손을 잡아야 하지 않겠냐고 상의했습니다. 그런데 수녀님들은 가정폭력밖에 모른다고, 성폭력 문제를 다루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제가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저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천주교에서 이런 상담소를 하고 싶은데, 아는 것이 없으니 누가 실무를 담당할 수 있는 분이 와서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요청했습니다. 혹시 천주교 신자면 더 좋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했어요. 예비신자이던 분이 오셨는데, 그분과 둘이서 1998년부터 천주교성폭력상담소를 시작했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배워야 해서, 천주교성폭력상담소를 시작한 서울 삼각지성당에서 성교육 프로그램을 1년에 3, 4번 열어 교육했습니다. 성교육을 받을 사람들을 모으고, 성교육 강사를 초대해서 성과 성폭력이 무엇인지, 젠더가 무엇인지 교육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그런 인식이 없을 때였어요. 그렇게 하면서 1, 2급 전문상담사를 많이 양성했고, 그분들이 지금 우리 상담소에서 활동합니다. 일반상담을 하는 곳은 많지만, 이렇게 성 문제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렇게 활동하던 어느 날 어떤 신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옛날에는 만나면 계급문제, 노동문제 같은 것만 이야기하더니, 왜 이제는 맨날 여성이나 성 같은 이야기만 하느냐고요. 저에게는 그 시대에 그 일이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였습니다. 1987년 민주화가 이뤄지고 보니 여성의 문제가 저에게 크게 다가왔고, 내가 여성이고 나의 성 정체성을 생각하니 여성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여성으로 태어나서 성폭력을 당하는 상황이 가장 취약한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도둑맞으면 신고하지만, 성은 도둑맞아도 죽을 때까지 신고하지 못 하는 사람이 많아요. ‘위안부’ 할머니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내가 그것을 다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누구 하나라도 붙잡고 씨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천주교성폭력상담소를 시작했습니다.

 

교회 안에도 있는 성폭력

Q.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 교회의 성폭력 상담도 많이 들어오나요?

우리 상담소에 접수되는 사건 중 교회 관련 사건은 아주 극소수입니다. 청소년 쉼터가 있다 보니 주로 청소년과 관련한 사건입니다. 일단 사건을 접수하면 우리는 그것이 강간인지 성희롱인지 일단 사실부터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조처를 합니다. 상담이 필요한 사람은 상담하고, 형사처벌이 필요하면 법적 대응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상담하면서 힘이 생기기도 합니다. 자기를 보호할 수 있도록 상담을 통해 자존감을 높여주면, 그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습니다. 성폭력 사건으로 경찰서를 많이 가는데, 검찰에서 불기소되는 사건이 많아서 아주 답답합니다. 서지현 검사가 검찰 안의 성폭력을 고발함으로써 앞으로 검찰의 태도도 많이 바뀌리라 기대합니다.

교회와 관련한 사건도 다루었지만,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신자 사이에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은 별로 없고, 대부분 사제와 관련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식으로 의뢰를 받지는 않았는데, 다른 상담소에서 들어온 의뢰에 도움을 청하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루기 어렵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미혼모가 사제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 사제가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그 교구에서도 저에게 도움을 청해서, 제가 중간에서 사실확인부터 일이 잘 처리될 수 있게 도왔습니다. 또 어느 지역에서 여성끼리 모여 사는 신앙공동체가 만들어졌는데, 그곳을 지도하던 사제에게 문제가 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정식으로 저에게 의뢰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라, 해당 교구 주교님을 면담하러 찾아갔죠. 그런 이야기가 밖으로 들리는 데 주교님께서 개입하셔야겠다고 알려드렸더니, 알아보고 조처하겠다고 하셨어요. 얼마 뒤 주교님께서 전체 사제들 월례모임에 저를 불러서는 성폭력 교육을 하게 했습니다. 주교님부터 맨 앞에 앉아서 들으셨죠. 그렇게 하면서 그 사제의 문제를 교구 안에서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의 성폭력을 공식적으로 상담하고 신고하는 사건은 드뭅니다. 그건 천주교 신자들이 가진 ‘보수성’ 때문에, 성폭력을 당하고도 고발하거나 신고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 평등 정책이 잘 이뤄진다는 스웨덴은 성범죄 발생 비율이 아주 높은데, 그 나라가 특별히 문제가 더 심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성범죄에 민감하고 신고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지금 진보진영 쪽에서 미투 고발이 많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진보라서 더 민감하고, 더 용감하게 문제제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 나이가 70세가 넘었지만, 우리가 젊었을 때는 그런 일을 비일비재하게 당하고도 그게 성폭력이라는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 당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자기 얼굴에 침 뱉기라고 생각했어요. 남자들도 사춘기 때부터 여자를 ‘따먹는다’는 식으로 성폭력을 하나의 무용담처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문화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인식합니다. 우리 문화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많은 여성단체가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고 노력해온 덕분에 오늘날 미투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미투운동을 겪으면서, 그동안 교회 안에서 일어난 문제를 정리한 자료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그런 자료를 모으는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Q.이번에 천주교 안에서 나온 미투 고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저는 뉴스에서 그 피해자가 나와서 말하는 태도나 내용을 보고 정말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방송이나 정치권에서는 종교 관련 문제는 워낙 민감하니까 잘 안 건드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분의 용기 덕분에 천주교에서 미투가 아주 빨리 나왔습니다. 이미 <스포트라이트>라는 영화에서도 나왔듯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저 다른 나라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미투를 통해 이제 한국천주교회 우리의 현실로 왔기 때문에 이 부분에 더욱 관심을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다루던 것을 공론화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신부님이 한탄하시더라고요. 천주교 사제가 뭐가 있냐고, 오로지 독신 하나 붙잡고 여기까지 살아왔는데 그게 무너졌다고요. 이제 신자들도 옛날처럼 신부님들을 무조건 거룩하다고 보지는 않겠죠. 이번 미투운동으로 사제도 그렇고, 신자들도 각성의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사제도 저럴 수 있구나, 교회 안에서 성폭력이 일어날 수 있구나 알게 되었을 거예요. 지금도 이미 신자들이 교회를 많이 떠나는데, 어쩌면 이번 일을 겪으며 더 많이 떠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번 기회에 교회가 밀과 가라지를 골라내며 정화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신자들을 더 교육해야겠지요.

 

미투, 신앙인이 응답해야 할 시대의 징표

Q.앞으로 교회가 성폭력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면 좋을까요?

교회에서 ‘교회 내 성폭력 방지 특별위원회’(가칭)도 만들고 교구별로 성폭력신고 창구도 제도를 만들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기구가 만들어지면 나름대로 기능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교회 안에서 성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습니다. 잘 운영하면 사제 성폭력 예방교육도 하고, 인식도 바꾸면서 교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갈 겁니다. 이미 여러 교구에서 우리 상담소에 이와 관련한 지침서 만드는 것을 도와달라, 위원회에 참가해 달라는 식으로 계속해서 도움을 청하는 연락이 옵니다. 저는 우리 상담소 구성원에게 가능한 한 열심히 도우라고 권합니다. 그런데 그 위원회에는 우리 천주교인들만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이 문제를 잘 다룰 수 있는 외부 전문가도 꼭 포함되어야 합니다.

제도화된 장치가 가진 장점도 있지만, 한계도 분명히 있습니다. 보통 교회의 위원회는 한 달에 한 번 형식적으로 모이고, 어떤 사안을 책임있게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 밖에서도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교회의 성폭력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교회도 새로워져야 하고, 다양한 사람이 대등한 관계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진행되는 미투운동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악을 털어내고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하시려는 거죠. 이번 동계올림픽을 통해 대치 국면이던 남북관계를 평화의 흐름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보며, 이번 미투운동도 우리나라가 그런 여건과 역량이 되는 대단한 나라니까 하느님께서 이렇게 전환점을 마련해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앙인들은 이런 시대의 징표를 읽고 보루가 되어야지요. 사실 전국 여성긴급전화 1366 중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곳이 많습니다. 우리 상담소 김미순 소장이 천주교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이나 우리가 지닌 도덕성과 인권 감각으로 미투운동에 더 앞장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확 와닿았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도, 우리 천주교 신앙인이 성폭력이 사라지는 세상을 위한 보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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