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어장 신화에 사로잡힌 군종,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강인철, 『종교와 군대』(2017)

 

10년 전,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이 추진되자 평화운동가들과 제주교구를 비롯한 한국 천주교회는 이를 적극 반대했다. 제주해군기지가 지역사회 공동체와 자연환경을 파괴할뿐더러, 동북아 긴장을 고조시키고 군비경쟁을 부추기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국책사업은 여지없이 강행되었고, 결국 2016년 2월 제주 해군기지가 완공됐다. 그리고 교회가 그토록 반대하던 해군기지 안에 군종교구 제주해군성당이 지어졌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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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종교의 관계를 분석하는 데 탁월한 종교사회학자 강인철 교수(한신대학교 종교문화학과)가 최근 한국 군종을 심층 분석한 연구서 『종교와 군대: 군종, 황금어장의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현실문화, 2017)를 내놓았다. 그는 이 책에서 ‘평화의 천주교’와 ‘군대의 천주교’가 대립하는 듯한 ‘교리와 현실의 심한 괴리’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여러 실마리를 짚었다. 한국 군종의 역사와 정당성을 다각도로 성찰하는 이 책을 통해, 한국 천주교 군종의 자리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무도 묻지 않던 군종, 역사와 정당성을 탐구하다

Q.이번에 국내 최초로 군종제도를 비판적으로 연구한 책을 내셨는데, 왜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군종제도의 존재를 당연시하거나 옹호하는 입장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나아가 비판적인 입장에서 군종제도를 분석하는 연구가 거의 없었던 현실이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된 가장 중요한 동기였어요. 정말이지 한국의 군종제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비판적 성찰이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1951년에 창립되어 70년 가까운 세월이 쌓이면서 군종제도 존재 자체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현역장교로 구성된 군종단의 존재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군종은 결코 당연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은 제도입니다. 따라서 군종제도가 과연 모든 사회에 꼭 필요한 제도인지, 나아가 왜 군종은 현역장교 신분인지 등의 문제를 제기해볼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호인수 신부님께서 《한겨레》에 「군종제도를 다시 생각한다」(2013.3.23)는 칼럼을 쓰신 적이 있는데, 거기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사제가 재소자를 능률적으로 사목하기 위해서는 교도관이 되는 것이 필수인가? 경찰관 사목자는 경찰공무원이 아니어도 무방한데 왜 군인 사목자는 꼭 현역군인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군종이 한국교회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미친 영향도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군종이 반공주의, 군사주의, 정치적 보수주의 등에 미친 영향, 그리고 군종이 교회 일각의 친정부 성향이나 정교유착 경향을 매개하거나 촉진하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닌지 등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군대 내부의 잦은 인권 침해 사건들에 군종 요원들이 제대로 대응했는지, 군종 관계자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황금어장의 신화’는 과연 타당한 것인지, ‘신앙전력화’라는 군종감실의 공식 슬로건은 과연 정당한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군종이야말로 종교간 대화와 협력을 가장 모범적으로 구현하는 곳 중 하나인데, 왜 한국의 군종은 대화·협력은커녕 종교 간 총성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공간이 되었는지도 이번 기회에 규명해보고 싶었습니다. 군종이 유달리 도드라지게 ‘종교적 특권’으로 여겨지는 것도 한국 군종의 주요한 특징인데, 그렇게 된 역사적 연원은 무엇인지도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한국 군종의 탄생과 발전에는 미군 군종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 이번 책에서는 한국-미국 군종에 대한 비교연구도 시도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1960년대까지는 두 군종의 ‘동질화’ 과정이 지배적인 추세였지만, 1970년대 이후에는 양자의 ‘이질화’ 과정이 두드러졌음을 발견했습니다.

 

Q.한국전쟁 당시 소수종교였던 천주교는 초기부터 군종에 참여했는데,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아마도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는 해방 이전부터 군종제도에 익숙했을 겁니다. 이들을 파송한 프랑스, 독일, 미국, 아일랜드의 가톨릭교회들은 수세기의 역사를 지닌, 이미 완숙한 상태의 군종제도를 운용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가장 먼저 미군 군종이 되었던 이들도 바로 국내에 있던 외국인 선교사였습니다.

반면에 해방 당시 대다수 한국인 가톨릭 신자는 군종에 대한 사전 이해가 거의 없었다고 봅니다. 조선시대에도 정기적으로, 또는 출병이나 군사훈련 때에 맞춰 군신(軍神) 내지 군대·전쟁의 신을 대상으로 전승을 기원하는 마제(禡祭)나 독제(纛祭) 같은 국가의례가 있었지만, 상설적인 군종 요원이나 직책은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은 군인묘지에 신도나 불교 사원을 만들고 관리자를 두긴 했어도, 군종에 해당하는 직책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한국인 신자는 미군정 시기에 처음으로 미군 군종장교들을 대면했습니다.개신교 측에서는 이미 1947년경에 군종목사제도 도입이 논의되고, 전쟁 직전인 1949년에도 장로교 총회에 군종목사제도 도입 청원서가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군대에서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부터 손정도 목사의 아들 손원일 제%ec%a2%85%ea%b5%90%ec%99%80-%ea%b5%b0%eb%8c%80독이 이끌었던 해군에서는 정훈병과 활동의 일환으로 군종활동이 시작되었지만, 한국전쟁 전까지 천주교 참여는 봉쇄되었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군종제도에 대한 한국 천주교의 인식은 개신교보다 좀 늦었던 셈입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교회 지도층은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신자들의 참전을 독려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몇몇 한국인 신부는 일종의 ‘가톨릭군(軍)’인 ‘가톨릭 청년결사대’를 조직하려고 시도했고, 30여 명의 신학생들이 미군에 배속된 ‘카투사’ 요원으로 입대하기도 했습니다. 포로수용소나 군병원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지도층은 군종제도야말로 교회가 전쟁에 참여하고 기여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군종의 역할과 합헌성 문제

Q.군종의 역사 중 특히 1960년대 베트남전쟁을 거치면서 군사정권과 종교의 카르텔이 공고해졌다고 비판하시면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는 ‘무성찰성’을 지적하셨습니다. 천주교 군종이 특히 어떤 지점을 성찰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성찰의 지점으로 군종의 ‘역할 재정립’과 군종의 ‘합헌성’(合憲性) 문제라는 두 가지를 특별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선, 군종의 역할 재정립 문제인데요. 2차 세계대전 이후 또는 늦어도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서구사회에서 군종의 주된 역할을 장병의 전투의지 고양이나 전쟁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사기 증진자(morale builder)’에서 ‘도덕적 옹호자(moral advocator)’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집니다. 특히 미국 군종에서 이런 노력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1970년대 이후 미국 군종장교들은 군종의 기능을 ‘전투력’과 직접적으로 연관시키는 발상 자체를 거부합니다. 현재 한국 군종의 모토인 ‘신앙전력화’와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지요. 미국 군종은 군인들에게 전투의지를 고취하는 전통적인 사기 증진자에서, 군대의 인간화·자유화·참여·소통 같은 ‘군인공동체의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군종은 이제 적극적으로 ‘군인들의 인권 옹호자’ 역할까지 떠맡으려 나서고 있습니다.

저는 ‘도덕 및 인권 옹호자’ 역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평화 교육자’라는 역할을 추가하고 싶어요. 국내에도 번역된 1999년의 ‘제1차 이탈리아 군종교구 시노드’ 문헌(󰡔정의와 평화의 봉사자: 제1차 이탈리아 군종교구 시노드󰡕, 2009)에서 그런 새로운 역할에 대한 요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참석했던 이 시노드에서, 이탈리아 군종교구는 정의로운 전쟁(정당한 전쟁) 교리가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될 가능성을 봉쇄했습니다. 이 문헌은 정당한 전쟁에 대한 전통적인 가르침이 전쟁을 ‘축복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무기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가르침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군종 및 군종교구의 역할을 “군인들로 하여금 정의의 진정한 봉사자요, 평화의 건설자가 되게끔 교육하는 것”으로 요약했습니다.

두 번째로 성찰해볼 것은 ‘군종의 합헌성’ 문제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주 제기되는 쟁점인데, 한국에서는 거의 논의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합헌성 문제는 “한국의 군종은 종교의 자유, 정교분리, 종교적 차별의 금지라는 세 가지 헌법적 원칙들을 제대로 준수하거나 구현하는가?” 하는 질문과 직결됩니다. 많은 이들이 군종제도의 헌법적 근거를 ‘종교의 자유’ 조항에서 찾습니다. 군인이나 수형자처럼 “스스로 선택한 장소에서 신앙을 실천할 자유를 국가에 의해 박탈당한 이들”에게 정부는 종교자유 원칙에 따라 정부가 고용한 성직자를 파견할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겁니다. 국민개병제에 기초한 현행 징병제가 유지되는 한, 군인들의 종교자유 보장을 위해 군종제도가 필요할 겁니다. 그러나 한국의 군종은 종교자유·정교분리·종교차별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저는 그런 면에서 합헌성이 의심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합니다.

 

Q.한국 군종이 ‘종교자유’ 및 ‘종교차별’과 관련된 합헌성 논란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번 책에서 두 가지 방향의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한국 군종이 합헌성 논란을 불식하고 군인들의 종교자유권을 더욱 잘 보호하려면, 소수 종교·교단의 군종제도 참여를 폭넓게 또한 최대한 신속하게 확대하면서 ‘이중적인 접근권’의 허용, 즉 소수 종교 소속 장병의 부대 인근 종교시설 접근권과 소수 종교 성직자의 군부대 접근권을 허용해야 합니다. 물론 이때 부대장의 재량권이 과도하게 용인되어선 안 됩니다.

아울러 국가권력에 대한 군종의 구조적·일상적 종속, 그로 인한 ‘정교분리’ 위반이라는 논란을 해결하려면, 군종 요원을 궁극적으로 현역 군인이 아닌 민간인으로 대체하는 ‘탈(脫)군대화/민간화 모델’, 군종 요원에 대한 국가권력의 통제력을 크게 약화시키면서 교단의 통제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교회 기초(church-based) 모델’이라는 새로운 군종 모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경우 평화주의자가 군종교구장으로 임명될 수 있을 정도로, 교단이 군종을 통제하는 ‘내용’도 획기적으로 전환되어야 하겠지요.

 

Q.군종사제가 꼭 군인이어야 하냐고 물으면, 군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반박합니다. 한국처럼 특수 상황에서 ‘탈군대화/민간화’ 모델이 가능할까요?

‘탈군대화/민간화 모델’의 좋은 예로 전후(戰後) 독일의 군종제도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군종들은 1차 대전 때처럼 “값싸고 들뜬 애국주의”에 지배되지도 않았고, 그들 자신이 골수 나치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군종이 장병의 사기와 정신력 고양에 유용한 도구임을 스스로 입증하려 애썼고, 소수의 예외가 있었지만 말·행동·침묵으로 나치 군대의 악행들을 용서하고 축복함으로써 가해자 편에 섰고, 죄의 관면을 남용했습니다. 서독에서는 1955년에 군대가 재건된 지 2년 후인 1957년에 군종제도도 재건되는데, 과거의 과오를 뼈저리게 반성함으로써 군종의 모습이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먼저 군종 책임자(Militärbishof)로 민간인 신분인 일반 교구의 주교가 선임되었고, 그는 오직 파트타임으로만 군종을 운영했습니다. 군종 사제는 군대식 규율·법규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군복 착용도 요구받지 않고, 평생의 항구적 직업이 아니라 6년이나 7년 동안만 일시적으로 임명을 받을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독일의 군종은 다른 나라 군종보다 군대로부터 한층 자율적이고 독립적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군종이 군대의 통제 아래 있던 제3제국의 경험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교회의 우려가 반영된 제도였습니다. 이런 대대적인 전환 덕분에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군종은 군대조직 속의 ‘장교’이자 ‘인사이더’가 아닌 ‘항구적 아웃사이더’,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는 ‘치어리더’가 아닌 ‘비판적인 양심의 목소리’로 기능할 수 있었습니다.

‘탈군대화/민간화 모델’이 당장 실행되기 어렵다면, 이탈리아 군종제도도 참조할 만합니다. 이탈리아도 군종이 현역장교 신분으로 충원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나 미국과 유사하지만, 처음 중위로 임관해 중령까지는 ‘자동으로’ 승진하고, 오직 대령 이상의 고위직에 대해서만 선발원칙을 적용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현역장교 신분이지만 진급 경쟁 때문에 군종이 군대에 과도하게 통합되는 사태를 방지하려는 장치입니다.

 

평화주의를 마주한 윤리적 딜레마

Q.사실 교회는 북한의 핵 문제나 상주 사드배치 등에 대해 기본적으로 평화주의에 토대를 둔 가르침을 강조하지만, 교회가 반대하던 제주 강정마을에 제주해군성당이 들어선 것처럼 군대의 정책을 따르는 군종 현실에서는 괴리감이 큽니다.

말씀하셨듯이 최근의 가톨릭 전쟁교리는 평화주의(pacifism)를 뚜렷하게 지향합니다. 그리스도교 전쟁교리는 긴 역사를 갖고 있는데, 1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주의의 점진적 강화’ 추세가 점점 뚜렷해졌고,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정의로운 전쟁론과 평화주의의 수렴’ 또는 ‘정의로운 전쟁론의 평화주의적 전환’의 경향이 강화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20세기 중반부터는 전쟁을 ‘성전(聖戰)’이나 ‘십자군전쟁’으로 정당화하는 신학적 주장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또 1980년대 말 이후에는 종전의 ‘정의로운 전쟁(just war)’ 패러다임을 대신하는,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확산되었습니다.

교회의 평화주의와 군종의 관계에 관해 원칙적으로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이 관계의 ‘소극적인’ 측면에 해당하고, 다른 하나는 관계의 더욱 ‘적극적인’ 측면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선, 국내외를 막론하고 군종의 역사를 개관해보면 군종들이 단순한 전승(戰勝) 기원을 넘어 전쟁을 찬양하고 정당화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군종은 스스로의 ‘전쟁 정당화 기능’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제 군종은 자기 군대가 참여한 모든 전쟁을 미화 또는 찬양하거나, ‘값싼 애국주의’를 내세워 군인들의 적개심과 전투의지를 고양시키는 치어리더 역할을 수행하거나, 전쟁의 윤리성에 대한 고려 없이 지휘관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군인을 양성하는 군종 활동이나 제도에 대해 철저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군종활동을 전투력과 직결시키는 낡은 전통과도 결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전력화’라는 한국 군종의 모토 역시 그 자체가 시대착오적인데다, 군종의 기능과 사명을 오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폐기되어야 마땅합니다.

다음으로, 군종 요원들은 군대를 교회의 ‘전쟁교리’를 실천하고 구현하는 장(場)이자 무대로 간주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전쟁교리란 “전쟁과 군대에 대한 평화주의적 재해석을 특징으로 하는 교리”를 가리킵니다. 군종장교와 그 조력자들은 바로 전쟁교리의 평화주의적 전환이라는 교리적 변화들을 군대나 전투 현장에서 최대한 충실하게 반영하려 분투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군대는 교회의 평화주의 교리를 전파하고 실천하는 장이 되어야 하고, 군종은 평화교육 기관이 되어야 하며, 군종 요원들은 평화의 교육자가 되어야 합니다. 군인들에게 ‘평화의 수호자’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갖도록 하고, 군인들이 ‘평화의 문화’를 수용하고 ‘평화의 감수성’을 함양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군종 요원 양성과정에서 평화교육이 대폭 강화되어야 하겠습니다.

 

군대, 황금어장의 신화

Q.군대를 황금어장이라고 하지만, 군종신자하면 ‘초코파이 신자’라는 말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과연 가톨릭 선교에서 어떤 의미일까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군대에서 세례를 받지만, 제대 후에는 바로 무종교인으로 바뀌는 이들이 절반 이상이나 되는 이 간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전 세계 대부분 사회들에서 청년층은 낮은 종교성, 낮은 종교 참여·실천 비율을 특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런데 한국 남성이면 누구나 거쳐 가는 군대에서 혁혁한 선교-포교 실적으로 인해, 군인의 경우 전체 인구 중 종교인구 비율보다 월등히 높은 종교인구 비율을 보이면서, 한국을 ‘세계적인 예외사례’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 거품이 잔뜩 끼어 있습니다. 말씀하셨듯이, 군대에서는 종교 활동을 하지만 제대 후에는 곧바로 절반 이상이 무종교인으로 바뀌는 현실입니다. 종교를 가진 군인 중 상당수가 ‘무늬만 신자’, 이른바 ‘명목적 신자들(nominal believers)’인 셈이지요. 《뉴스앤넷》(2013.10.30) 기사에 의하면, 군대에서 입교하는 이들 중 40% 이상이 거의 같은 시기에 두 종교 또는 세 종교에 입교했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훈련소나 신병교육대에서 개신교·불교·천주교 세 종교 모두에 입교하는 이들을 “트리플 크라운, 그랜드슬램, 세종대왕”이라고 부른답니다. 40%에 달하는 중복 입교 현상은 군대가 개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현장임을 보여주지만, 또한 입교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거짓 입교를 통해 기성 종교와 종교인을 조롱하고 야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군종 관계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압니다. 그래서 훈련소나 사단 신교대에서 입교하는 대부분 사병이 자대에 배치된 후에도 신앙생활을 지속시키는 과제,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이후에도 신앙생활을 지속시키는 과제로 부심합니다. 신앙심의 지속적인 유지와 실천, 해법을 찾기가 결코 쉽지 않은 난제입니다. 군인들의 허약한 신앙은 교회법이나 교단 헌법의 취지와 정신에도 어긋나는 온갖 편법이 난무하는 가운데 속성 신자를 대량생산해내는 현재의 군종 내부에 이미 배태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경쟁의 악마적 속성’이라고 해야 할지, 한쪽에서 물량공세 드라이브를 걸면 소극적으로라도 따라하지 않을 수 없는 ‘경쟁의 악순환’은 계속됩니다. 그런 가운데 ‘속성 신자 대량생산체제’는 풀가동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지요.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군종을 제안하며

Q.그럼에도 이번 군종 연구에서 천주교가 평화를 지향하는 군종제도의 변화에 물꼬를 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셨고 구체적 제안도 하셨습니다. 어떻게 변화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까요?

앞에서도 강조했듯, 저는 우선 군종 요원 양성교육과 재교육 과정에서 평화교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교리와 현실의 심각한 괴리”, “평화를 추구하는 교회의 가르침과 군대의 정책을 따라야 하는 군종 현실과의 괴리감”이라는 문제도 자연스럽게 극복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군종 사제가 인권옹호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악의 경우 그러다가 지휘관과 충돌이 빚어진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두 번째 군복무를 하는 군종 사제들은 사병으로 다시 입대해서 의무군복무를 마쳐야 하는 부담도 없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사기 증진자’에서 ‘도덕적 옹호자’로 전환이라는 군종 역할의 역사적 전환을 우리 신부님들이 선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에서 했던 것과 같은 ‘군종교구 시노드’나 이와 유사한 공론장을 마련해서 군종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 작업을 시도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는 ‘더 많은 군종신부 확보 방안’이나 ‘더 많은 장기복무자 확보 방안’, ‘군종제도 내에서 천주교의 입지 확보·상승’ 등을 논의하자는 게 아니라, 군종의 역할 재정립이나 교회의 평화주의적 교리의 실천 방안 등이 핵심적인 의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Q.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꼭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를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당국은 군인주일 같은 특별한 날에만 신자들에게 군종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면서, “더 많은 헌금과 기부금”을 부탁할 뿐이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이제는 ‘군종제도가 반드시 과연 필요한가?’, ‘다른 방식의 군종은 가능한가?’, ‘군종 요원은 꼭 군인이어야 하나?’ 같은 문제로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아울러 저는 ‘더 많은 군종연구’를 바랍니다. 신학생 시절의 군종병 경험, 사제서품 이후 군종사목에 참여한 경험의 사례를 더 많이 수집해서 분석해야 하고, 군종사목을 경험한 이전과 이후의 차이도 좀 더 체계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나아가 다른 나라, 다른 종교 군종과 면밀한 비교도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군종 연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제 책을 계기로 더욱 많은 연구자들이 군종 연구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추가설명

2016년 말 교회통계를 보면, 작년 한 해 새 영세자(111,139명) 중 군대에서 세례받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20~24세 남성 세례자(21,406)의 비율은 19.3%로, 새 신자 5명 중 1명은 군대에서 세례를 받는다고 추산된다. 그런데 이 새로 입교한 수많은 군인 신자가 제대 후에는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2015년 교회통계에서 20대 남성 신자수는 427,337명인데, 통계청에서 파악한 20대 남성 천주교 신자수는 200,628명으로 교회통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실체도 없이 신자수를 부풀리는 데 군종이 크게 기여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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