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우리 시대의 소작인

김의열

우리 시대의 소작인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10월 5일, 마태 21,33-43.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갈등과 폭력과 억압과 독점의 밑바탕에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도사리고 있다. 어떤 어리석음인가?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곧 나인 것을….”이라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깨달음 속에 우리 인간이 헤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담겨있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는 분리의식 속에서 사람들은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싸우고 빼앗고 내 영역에 울타리를 치고 넘보지 못하게 한다.

소수에 의한 부와 권력과 정보의 독점은 이러한 어리석음이 사회적으로 확장되어 나타나는 구조적인 악이다. 마태복음 21장 33절부터 시작되는 포도원 소작인들의 비유를 부와 권력과 지식을 독점하고 이를 나누려는 이들을 가차 없이 탄압하고 죽이는 지배계층을 향한 예수님의 질타로 생각한다. 소작인은 단지 주인으로부터 경작을 위임받은 사람들이다. 주인이 만들어놓은 포도원을 잘 가꾸고 좋은 소출을 내고 수확의 일정 부분을 취하고 나머지는 주인에게 바쳐야 한다. 하느님의 창조물 가운데 본래 인간의 소유는 없다. 하느님으로부터 경작을 위임받은 이 세상과 자연을 잘 가꾸고 나눔과 평화와 사랑이라는 좋은 소출을 거두어 다시금 하느님께 되돌려드려야 한다. 그런데 어리석은 소작인들은 자신들이 위임받은 세상의 부와 권력과 정보를 독차지하려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 이를 나누려는 이들을 때리고 죽인다. 마침내 하느님의 아들조차 죽이고 포도원을 송두리째 차지하려 한다. 예수님의 시대에는 대제관이나 바리사이들이 악한 소작인들이었고 이들은 결국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마저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 우리 시대의 악한 소작인들은 과연 누구일까? 부당한 권력과 다국적 자본이 대표적인 악한 소작인들일 것이다.

독점은 빼앗긴 사람들과 빼앗는 자들 모두를 비인간화시키는 구조 악이다. 독점은 우리 모두를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소용돌이로 몰고 간다. 각자가 분리의식에 갇혀 고립된 어두움 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짓밟고 올라서고 빼앗으며 결국은 소수의 승자가 모든 걸 차지해버리고 다수의 패자는 쓸쓸히 도태되고 만다. 물질의 욕망이 정신의 가치를 압도하고 살아남는 게 지상과제가 된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거기에 있지 않다. 하느님은 악한 소작인들을 가차 없이 없애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칠 다른 선한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이다.

선한 농부들은 어떤 이들인가? 인간과 모든 생명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나눔과 협동과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다. 타인과 온 생명을 향해 자신을 열고 함께 나누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입 맞추고 노래하는 존재들이다. 사실은 우리가 모두 선한 농부가 돼야 한다. 우리 각자가 나와 너, 모든 인류, 더 나아가 온 우주 만물이 결국은 하나라는 깨달음에 이르러야 한다. 독점을 무너뜨리고 물질과 권력과 정보를 골고루 나누어 갖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물질을 획득하는 건 정신과 영혼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서일 뿐 남보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경쟁하고 빼앗는 일은 없다. 나눔으로 풍요로워지고, 소박함이 기쁨이 되며, 들꽃과 벌레들과도 친구가 되는 세상을 이루는 길이다. 그것이 곧 하느님에게 위임받은 포도원을 잘 가꾸고 좋은 소출을 거두어 수확물을 하느님께 되돌려드리는 일이다.

세월호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권력과 부와 정보를 독점한 이들은 특별법 제정을 통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과 많은 국민의 외침에 아무런 응답이 없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충분히 공감한다. 세월호는 여러 가지 시금석 역할을 한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악한 소작인들에 의해 독점 당하고 지배당하는 사회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포도원을 잘 가꾸어 제때에 소출을 바칠 선한 소작인들이 중심이 되는 사회로 진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세월호 참사를 대하고 해결해 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 판가름이 날 것이다. 다행히 세월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끌어안고, 죽어간 아이들을 내 아이들로 받아들이며, 유가족들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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