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믿음은 사명을 낳고, 사명은 희망을 낳는다

지요하

믿음은 사명을 낳고, 사명은 희망을 낳는다

연중 제 29주일, 10월 19일, 마태 28, 16-20

노년기로 접어든 시절에도 몸을 비교적 많이 움직이는 편이다. 환갑을 먹던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일이다. 우리 고장 태안 앞바다 원유유출사고로 말미암아 ‘기름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매일같이 바다에 가야 했다. 당시 태안성당 총회장으로서, 전국 각지 성당들에서 달려오는 천주교 신자 자원봉사자들을 작업 현상으로 안내하여 작업 요령을 설명하고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매일의 일과였다. 베트남 전쟁 고엽제 후유증 환자임에도 내 몸을 돌보지 않은 탓에 과로가 겹쳐 그만 병을 얻고 말았다. 아홉 시간에 걸쳐 흉부외과와 정형외과 수술도 받고, 40일 동안 병상 생활을 해야 했다. 퇴원 후에는 4대강 파괴사업 중단을 위한 문규현 신부님, 전종훈 신부님과 수경 스님의 ‘오체투지 순례기도’에 여러 번 참여했다. 그 후로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매일같이 봉헌된 ‘용산 미사’에 수없이 참례했고, 2010년 11월부터는 4대강 파괴사업 중단을 위한 여의도 거리 미사에, 2012년 7월부터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대한문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거의 매주 월요일 서울을 왕래했다.

2014년 4월 이후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위로하며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물론 이 일은 현재진행형이며 미래 상황을 가늠할 수조차 없다. 또 제18대 대선 불법부정선거에 대한 관심과 규탄 움직임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크다. 더불어 태안에서 사는 내가 서울로, 또 어디로 수시로 몸을 움직이는 일은 계속될 것 같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틈틈이 원고 작업에 몰두한다. 여러 매체에 고정적으로 쓰는 쪼가리 글들 외로 청탁 받은 소설도 쓰면서 현재 태안성당 ‘50년사’ 집필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싶다. 물론 전력투구하지는 못한다. 몰두와 집중이 간헐적일 수밖에 없다. 나로서는 몸을 움직이는 일도 중요한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시국미사 등에 참여하고 세월호 유족들과 연대하는 일 모두 내 작은 머리 하나 보태는 일이지만, 나는 내 머리 하나 보태는 일을 의미 있는 일로 생각한다. 참여와 연대와 공유 등을 생명처럼 귀중한 일로 여긴다.

본당 50년사 집필을 하면서 하느님께 감사하곤 한다. 나는 우리 고장 토박이로 1956년 우리 고장 읍내에 천주교 공소가 설치될 당시 유일한 읍내 신자 가정의 아들이었다. 우리 본당은 8년의 공소 역사를 안고 1964년 본당으로 설정되었는데, 나는 본당의 역사 속에서 성장하고 살아왔다. 본당의 초창기 일들도 비교적 소상히 기억할 수 있고, 또 여러 가지 기록들도 가지고 있다.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기억’의 소중함을 체감하곤 한다. 내게 기억과 기록의 가치를 알게 해주시고, 미약하게나마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주시고, 태안성당의 공소 시절부터 줄곧 붙박이로 살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신앙생활의 요체는 하느님을 명확히 기억하는 일이다. 예수님은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명확히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예수님의 생애와 구원사업이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그 기록들은 지고한 인간 기억의 유형물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에 대한 기억들을 간직한 문서들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는 장면’을 기록했다. 예수님에 의해, 또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부여받은 제자들로 인해 나는 일찍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더불어 나 역시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에 따라 나는 오늘도 몸을 움직이고, 움직이면서 글을 쓴다. 내가 진실과 정의, 정의의 열매인 평화를 위해 거리미사 등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며 갖가지 글을 쓰고, 또 태안성당 50년사 집필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은 오로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 때문이다. 아울러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신 예수님의 언약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0월호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