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 내면의 불꽃을 찾아서 – 로널드 롤하이저, 『하느님의 불꽃, 인간의 불꽃』

이인선

내면의 불꽃을 찾아서

– 로널드 롤하이저, 『하느님의 불꽃, 인간의 불꽃』

로널드 롤하이저는 내게는 비교적 생소한 저자이다. 내가 만난 그의 첫 작품은 『성과 생의 영성』이었다. 연피정의 지도 신부님의 추천도서여서 우선적인 독서 목록이 되었던 그 책은 오블라띠 수도원 소속의 저자가 30여 년간의 신학교와 영성상담들의 사목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재적인 주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내용들이 저자특유의 전개방식으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곧이어 저자의 다른 번역서들에 대한 탐색에 들어갔고 발견된 책이 『하느님의 불꽃, 인간의 불꽃』이다. 앞의 책보다 연대순으로 조금 앞선 이 책 역시 기대감을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영성의 시원한 샘물을 마시도록 독자들을 초대하며, 샘물 자체가 되어준다.

“희망과 절망의 갈림길에서 유일한 희망은 불에서 구원받기 위하여 이 불 섶을 택하느냐, 저 불 섶을 택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면 누가 고뇌를 고안해 냈는가? 사랑이다. 사랑이란 견딜 수 없는 화염의 셔츠를 짠 두 손 뒤에 있는 낯선 이름. 그 셔츠를 인간의 힘으론 벗길 수 없다. 우리는 이 불이나 저 불이나 그 어느 쪽에 태워지면서 살 뿐이요, 숨 쉴 뿐이다. – T.S 엘리엇, 「4개의 4중주」”

“우리 삶은 자신의 불안전함에서 생기는 광기의 불길에 휩싸여 있다. 우리는 삶의 긴장, 아픔, 에로스, 섹스와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 그 존재 자체로 중요한 힘이다”,라고 말하며,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터부시 해 온 에로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한다. “우리는 오로지 이 불꽃 또는 다른 불꽃 중 한가지를 태우도록 지향되어 있다. 하지만 이 두 종류의 불꽃들은 하느님의 불꽃인가 아니면 우리가 선택한 불꽃인가 하는 점에서 서로 아주 다르다. 우리 자신의 불꽃 즉, 이 불안의 해결책은 보다 높은 불꽃, 보다 높은 에로스, 보다 높은 불안인 하느님의 것으로 승화되고 타오르도록 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불은 불로, 에로스는 에로스로 아픔은 아픔으로 실망은 기다림으로, 불안은 그것을 수태함으로써 해결하는 것이다”

로널드에게 있어서 불꽃의 핵심은 ‘에로스’이다. 어떻게 우리 안의 에로스를 방향 지우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보며,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정직하고 정당하게 잘 다루는 것에 대한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 가장 적게 말하고 가장 많은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가톨릭 성직자, 수도자들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두려움 없이 가장 근본적인 인간 문제에 직면하고, 에로스의 긍정적인 면을 더욱 키워나가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에로스를 억압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몇몇 부류의 사람들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므로 그의 책은 모든 이를 향해 열려져 있는 영성의 주제들에 집중한다. 또하나 인상적인 주제는 ‘부드러움’에 관한 것이다.

“부드러운 마음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나약한 정신을 지니게 될 것이다. 오늘날에는 어디에서나 전문성, 효율성, 강함 경쟁력 그리고 힘에 의존하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일터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집과 교회에서도 부드러움이 들어설 자리가 거의 없다. 부드러움은 비효율, 감상, 굼뜸으로 여겨지고 있을 뿐이며 강경함과 성취욕이 존경의 대상이다.”

“십자가의 성요한은 고독의 기능을 ‘부드러움의 조화안에서 부드러움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를 부드럽게 만드는 때는 바로 깊은 기도의 순간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부드러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냉혹하고 잔인하게 만들고 말것이다. 우리는 매일 부드러운 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부드러움’이라는 단순한 현상처럼 보이는 단어 안에 깃든 영성적 깊이가 참으로 신선하다. ‘영성’ 혹은 ‘성덕’ 이란 단어들을 들을 때면 무게감 및 거리감을 느끼기가 쉽지만 ‘부드러움’이란 단어는 단어의 뜻대로 부드럽게 다가오기 때문인 듯도 하다. “어! 그랬군!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겠구나.” 내지는 ‘부드러움이 단순히 연약함이나 두려움을 포장한 친절이 아니었네’ 하고 무릎을 딱 치고 싶기도 하다. 이렇듯 로널드의 책들은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결코 사소하지 않은 진리를 발굴해 내는 힘이 있다. ‘다음 주제는 뭐지? 어떻게 해야 하지? 질문들은 또 무슨 뜻이지? 뭘 고민하고 뭘 내려놓아야 하지?’ 등……. 그의 책속에 빨려 들어가서 저자와 함께 얼굴을 맞대고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어느덧 만나게 된다. 그가 다룬 여타의 광범위한 주제 중에서 결론 삼아 아래의 ’건전한 영성생활을 위한 세 가지 기초‘를 소개한다.

“건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뜻은 ‘기도하고 윤리적으로 선한 생활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타협할 수 없는 부동의 진리다. 건전한 영성생활은 세 가지 기초에 닻을 내리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기도, 사회정의, 형제적 사랑이다. 이 형제적 사랑 역시 중요하며 앞의 두 요소처럼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이 형제적 사랑 즉 우정의 친교가 인생에 가져다주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없이는 우리는 항구한 감사와 기쁨을 잃게 된다.”

그의 언어들은 애매모호하지 않고 명료하며 현학적이지 않고 단순하다. 독자들로 하여금 일상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도록 자연스럽게 이끌어준다. 로널드의 책은 나에게도 28년간의 수도생활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고, 그 안에 깃든 ‘내면의 불꽃’을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이인선 한국외방선교수녀회. 세월호 참사 이후 좀 더 사회정의에 깨어 살기를 결심하게 되었다. 무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고, 희생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허락하신 하루하루를 단순하고 기쁘게 살고 싶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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