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우리신학연구소 창립 20돌 – 걸어온 길, 가야할 길 – 이은석

이은석

우리신학연구소의 앞으로의 20년을 기대하며

20년이 더 된 이야기입니다. 천주교라는 신앙인들의 모임에서 나름 다른 세상을 꿈꾸며 대학 시절을 보내고 청년활동에 몰입했던 젊은이들이 함께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기로 합니다. 80년대, 암울했던 시절을 겪었던 업보이랄까요, 아니면 ‘다른 세상’에 대한 희망이었을까요, 어떤 것이든 이전에는 시도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의를 시작합니다. 그게 바로 평신도들이 교회에 대해 직접 연구하고 변화의 길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일상을 살아가는 ‘생계’의 문제도 그 안에서 함께 해결할 길을 찾아보자는 의지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 젊은이들이 이젠 중년이 되었고 그렇게 우리신학연구소는 스무 살을 맞이했습니다.

아마도 그 간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뛰어난 업적보다는 생존의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었던 것 같습니다. 생업으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살림을 살아내야 했고, 늘 부족한 곳간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고민해 왔습니다. ‘척박하다’는 말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적용되는 상황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자리를 잘 지켜내고 있는 연구원들이 너무나 고맙고 존경스럽습니다. 아마도 세상이나 교회에 엄청난 변화가 있지 않은 한 그 어려움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어쩌면 그런 어려움 속에서 생존하며 자기 이야기를 해 나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신학연구소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우리는 나아가면서 길을 만든다.

우리신학연구소의 신조랄까요? 늘 암묵적으로 마음에 새겼던 말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우리는 나아가면서 길을 만든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미 알려진 길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풀 사이 새로운 길을 만들며 목적지에 도달하겠다는 의지와 스스로에 보내는 격려였을 겁니다. 지난 20년의 세월은 늘 새로운 길을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의 20년도 또 다른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 개척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새 길을 내는데 필요한 것은 새로운 도전일 겁니다. 이제 중년이 된 연구원들 그리고 성년의 역사를 지니게 된 연구소가 다른 도전을 하기는 이전 보다 더 큰 결단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신학연구소는 이미 알려진 길을 안내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데서 더 빛날 것이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 감히 제언을 드리자면 연구원들 그리고 연구위원들 각자의 전공과 관심사보다는 신자 대중의 필요와 요구를 연구의 중심에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즈음 한국교회는 많은 부분에서 급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한 이후 서로 다른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변화에 대한 갈망도 커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교회가 될 것이냐 아니면 그 길을 회피할 것이냐는 문제입니다. 비단 프란치스코 교종의 선언이 아니라 하더라고 우리신학연구소가 지향했던 교회의 모습은 ‘가난한 교회,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였습니다. ‘가난한 교회’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무수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그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과거의 연구 성과를 설명하는 것과 함께 새로운 실천이 함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가난한 교회의 모습, 가난하지만 복음에 충실한 공동체의 모습을 만드는 실천의 장에서만 제대로 된 질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올바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신학연구소의 지난 20년은 제도교회에서 완성된 구조의 변화를 모색해 보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도회, 본당, 단체와 시설들을 평가해보고 변화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일을 꽤 많이 수행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신학적 시선과 담론을 소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의 20년은 다른 모델을 직접 만들어 보는 시간이 되면 어떨까합니다. 아마도 그 길을 선한 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민족의 복음화 신학의 대중화

선한 그리스도인 특히 일상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의 가치를 자신의 말로 이해하고 발언하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신학을 풀어내고자 했던 연구소의 의지가 아직도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입니다. 지난 세월동안 어려운 상황에서 부단히 노력해 왔지만, 앞으로의 20년도 연구소의 중심에 둬야 할 가치일 것입니다. 참여자가 적더라도 다양한 대중강연을 만들거나 쉽게 읽어 내릴 수 있는 책자를 만드는 일, 꼭 필요한 일일 겁니다. 물론 어려운 살림 탓에 생각만큼 많은 결과물을 내지는 못할지라도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과 만나고 설득하는 자리를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선한 그리스도인들도 자기 말을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좀 더 구체적인 제안을 드리자면 ‘가난한 교회’의 모델을 만들어 가면서 이런 일이 더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꽉 짜인 본당이나 수도회, 단체, 기관의 틀을 비집고 들어가기보다는 다른 마당을 만들고 그 마당에서 우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온라인 공간이어도 좋고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자리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정기적인 자리에서 연구위원, 연구원들의 공부 결과를 강론, 설교, 강의, 이야기 나눔 등등의 형식으로 나누거나 팸플릿, 소책자 등등의 자료로 제공할 수 있다면 구체적인 한 걸음을 걷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들이 교회다

스승 예수는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곁에 항상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마태 18. 20). 자칫 오해를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우리신학연구소의 앞으로의 20년은 다른 모습의 교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난한 교회,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는 모든 계층의 하느님 백성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 만연해 있는 성직주의는 모든 계층의 그리스도인이 능동적 신앙인으로 성장하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목자와 양 떼로 구분하고 목자의 인도에 따라 수동적으로 끌려가야만 올바른 길이라는 착각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지난 20년의 기간 동안 부단히 장벽을 넘고자 노력해 왔지만 철옹성입니다. 이제는 견고하게 쌓아 올린 장벽을 허물려는 노력보다는 성 밖 외지에서라도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보는 시도가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교종의 말씀처럼 거리로 나가 다른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들의 자리에서 그에 걸맞은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보고 복음을 살아내는 것 말입니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담론을 성찰하고 정리하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신학이고 생생한 신앙언어가 될 것입니다.

스승 예수께서 남기신 복음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신학연구소와 그 길에 동참하는 ‘우리’가 모인 이 자리가 바로 주님의 교회입니다. 앞으로도 어려운 길이겠지만 또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아마도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를 위해서 함께 손잡고 한발 더 걸어봅시다. 우리가 교회이니까요.

이은석 몇 년 전부터 문화기획을 업으로 삼고 있다. 행사나 공연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고, 2013년 겨울부터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의 실무를 맡아 일하고 있다. 아마 지금의 모습은 ‘길거리 본당’의 사무장 쯤 아닐까?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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