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에 대한 교회의 응답

박은미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대표)

%eb%af%b8%ed%88%ac2한국천주교회는 2018년을 ‘평신도 희년(禧年)’으로 지내고 있다. 2018년에 설립 50주년을 맞는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평신도 희년’ 선포를 요청했고, 이에 화답하여 주교회의가 “모든 신자들이 평신도 사도직을 활발히 실천하고 확산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희년을 승인하였다. 그런데 희년을 맞아 ‘평신도로서 역할을 실천하고 확산하는 일’이 무엇을 말하는지, 개별 신자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안내받았다고 느끼는 신자는 별로 없을 것 같다. 하느님에게 전대사(全大赦, 남아 있는 죄를 전부 면제받음)를 받을 수 있는 해라는 사실이라도 알면, 그나마 많이 아는 편이다. 2018년은 평신도에게 어떤 의미에서 희년일 수 있을까?

2016년 말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민중은 촛불집회를 통해 국정농단 세력을 심판하고, 2017년에 새로운 정권을 수립했다. 최근 한국사회 전역에서 여성(사회적 약자)에 대한 반인권 행위를 거부하고 고발하는 운동(#Me Too, #With You)이 전개되는 것은 촛불 민주주의가 일궈낸 변화, 즉 민초들이 더는 정치적, 경제적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억압당하지 않겠다는 저항 운동에 다름 아니다.

알다시피 미투운동은 미국의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가 성폭력 희생자들을 위한 비영리 기관을 만들면서(2006년) 시작되었다. 한 청소년 캠프에서 버크가 성폭력을 당한 아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버크 자신도 비슷한 일을 당했지만, “그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밝히면서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버크에 따르면, 미투운동은 성별과 무관하며, 성폭력 피해자들을 드러내고 보호해야 하고, 여성 피해자가 많으므로 여성들이 주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남성을 적으로 두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에 권력 관계에서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해서 발생하고, 피해자의 진로(현재와 미래의 직업적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행위에 대한 고발이라는 점이 추가된다.

한국에 전파된 미투운동은 영화와 연극계, 대학과 검찰 내부의 성폭력 행위에 대한 고발에 이어, ‘성직자의 성폭력 사건’도 불거졌다. 여러 교단 가운데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먼저 표면화되었다. 우선 긴 시간 깊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다가 이제라도 용기를 낸 피해 여성에게 가톨릭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지지와 연대의 말씀을 전한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사목자, 평신도 할 것 없이 여성 신자가 여전히 사제의 사목활동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성적 욕망 해소의 대상으로 여겨졌다는 점, 일부 가톨릭 사제가 드러낸 낮은 젠더 감수성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터질 것이 터졌다”, “너무 오랫동안 은폐해왔다”며 이제라도 공적으로 다루어져 다행이라는 목소리도 낸다.

 

여성소위원회의 요청과 교회의 움직임

%ec%9c%84%eb%93%9c%ec%9c%a0한국천주교회의 최고 회의체계인 주교회의에는 여성소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다(평신도사도직위원회 산하, 2000년 설립 인준). 교회 안팎의 여성 문제를 연구·보고하고, 여성 신자들의 능동적인 교회 활동을 증진하도록 돕는 기구로, 주교들이 여성 정책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제안을 자문한다. 이 기구의 존재조차 모르는 신자도 여전히 많지만, 말 그대로 교회 안 여성의 입장과 활동에 초점을 둔 조직이다.

가톨릭 사제의 성폭력 사건이 공영방송에 폭로된(2월 23일) 며칠 뒤, 여성소위원회는 정기회의를 열고 이 사건을 논의했다(2월 27일, 당시 위원장 조규만 주교). 그동안 교회 안에서 이런저런 추문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보다는 교회의 위신만을 고려하면서 사건을 은폐했던 측면이 있었는데, 이번 사건을 가톨릭교회가 한층 겸손해지라는 하나의 ‘표지(Sign)’로 받아들이자는 의견도 나왔다. 논의의 결실로, 각 교구와 교회의 주요기관과 단체에 몇 가지 사항을 요청하는 보도 자료를 내기로 했다. 요구 사항은 아래와 같다.

 

■ 사제를 포함한 교회 내 모든 구성원이 정기적으로 젠더 감수성 교육, 인권⋅생명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 체계(특히 사제 양성 및 재교육 프로그램) 정비를 촉구한다.

■ 성범죄를 비롯한 모든 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신속하고 합당한 도움을 받고, 범죄의 재발과 폭로 주체의 2차 피해를 방지할 전담 기구 설치를 촉구한다.

■ 성범죄 가해자가 책임 있는 사죄와 자정 노력을 실천하도록 지도하기를 촉구한다.

■ 투명하고 진정성 있는 대처로 가톨릭 신앙에 대한 신뢰를 견인해주기를 촉구한다.

여성소위원회의 요구 사항은 올해 주교회의(의장 김희중 대주교) 춘계 정기총회(3월 5~9일)의 안건에 추가되었다. 교회의 중요 사안이 논의되는 총회에서 ‘사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은 특히 긴급한 사안이었을 것이다. 총회 결과를 발표하면서, 주교회의는 ‘교회 내 성폭력 방지 특별위원회’(가칭)를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한 대책을 내놓았다. 특별위원회는 주교회의 의장을 위원장으로, 주교,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여성 포함) 전문가 등 10명 내외로 구성하며, 다음 영역에서 연구 활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사제의 성범죄(성폭력)에 대처하기 위한 공동 연구.

■ 교회 내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 간의 성폭력과 성차별의 원인을 규명하고, 교회 쇄신을 위한 제도 개선의 연구 및 제안.

■ 성범죄 사제에 대한 법적 처리 및 사제 양성과 신학생 교육 방안 연구.

■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 보호와 지원 방안 연구.

교구별로 교회의 성폭력 피해를 접수할 수 있는 단일 창구를 설치하겠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각 교구청에 피해 접수처를 정해 신자들이 성폭력 피해를 신고할 수 있게 안내하며, 접수된 사안을 해당 교구장 주교가 직접 처리한다는 방안이다.

신학생들과 모든 사제에 대한 젠더 감수성 교육 방안도 제시되었다. 성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교회법적·사회법적 처벌에 관한 교회 지침과 규정들을 사제들에게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신학교 교육과정, 그리고 모든 사제를 대상으로 성범죄에 관련된 교육을 철저하게 시행한다, 교구장 주교들은 사제성화의 날, 사제 연수와 피정 등의 기회를 이용하여 사제들의 쇄신을 호소하며, 양심 성찰과 고해성사의 정기적 실시, 사제 직무와 생활에 대한 교회의 제반 규정들을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엄중한 사안인 만큼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라고 생각된다.

 

사목적 권위에 대한 남용이자 신뢰에 대한 배신

‘가톨릭 사제의 성범죄’ 하면 곧바로 미국 보스턴대교구의 사례가 소환된다. 1991년, 미국 보스턴대교구 소속, 존 게오건(John Geoghan) 신부가 10세 아동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되어 1998년부터 정직 처분을 받았다. 2002년 게오건이 징역 9, 10년을 구형받는 과정에서, 이번 사건 이외에도 30년 동안 130여 명의 아동을 성추행했다는 충격적 사실이 폭로되었다. 이 사건으로 보스턴대교구는 피해자 측에(86명)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보상금과 소송비를 지급해야 해서, 교회 자산과 교구 학교를 매각해야 하는 등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고 전해졌다. 게오건은 교정 센터에서 다른 수용자에게 폭행당해 사망했다(2003년).

게오건 사건으로 미국 가톨릭교회는 물질적 피해는 물론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다. 신자들은 추기경의 사임을 요구했고, 사제들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며 공공장소에서 사제 복장의 착용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세계 곳곳에서 사제들의 성범죄(서구의 경우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한) 사실이 드러나며 신뢰는 추락했다. 외국의 경우 사목자의 성범죄는 아동 대상이거나 포르노물의 소지 및 배포 행위가 많은 데 반해, 한국의 경우 아동 대상 성범죄는 적지만, 성인 대상 그리고 포르노 관련 문제가 점차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제의 성범죄에 대해 “교회의 양심 가책이 너무 늦어졌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개탄하며, 아동보호위원회를 창설, 적극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2013년). 또 “아동 성학대를 저지른 사람들이 교황에게 사면을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결코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말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제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확인했다.

교황의 선언에 부응해 전 세계의 수도회는 사목윤리 규정안을 다듬거나 새로 만들고, 사목자의 성적 탈선행위를 처리하는 법적 절차를 제시하는 등의 움직임에 나섰다. 각 수도회의 한국 관구 역시 사목윤리 규정안을 번역하여 마련하고, 사목자들과 법률과 심리상담을 자문할 평신도 전문가로 구성된 윤리위원회를 구성하여 문제가 발생할 때 신속하고도 적절하게 대응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젠더 감수성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수도회도 있다. 하지만 사목자의 성적 탈선행위에 대한 대처와 예방교육이 교구 사제에 대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사제와 신자의 관계를 가족관계로 자주 지칭한다. 신자들에게 사제는 영적인 아버지로서만이 아니라 친부를 대신해도 좋을 만큼 존경하는 대상이다. 그런 사제에게 당하는 성범죄는 친족 사이에 벌어지는 성범죄의 특징과 유사한 양상을 드러낸다. 근친성학대 관계가 언제나 비밀리에 일어나듯이, 신앙공동체 내에서 벌어지는 성범죄 역시 사제가 신자에게 베푸는 ‘은밀하고도 유일무이한 시혜’의 외양을 띤다. 믿고 따르던 사제에게서 은밀하게 수치스러운 일을 당한 피해자는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으로 몹시 불편한 상황에 놓이면서도, 비밀을 폭로하려는 생각보다 엄청난 두려움에 빠진다. 비밀을 폭로했다가 보복당할지 모른다는 개인적인 두려움도 있겠지만, 비밀의 폭로가 신앙공동체에 어떤 파장을 줄까까지 두려워한다. 가족이 산산조각날까봐 근친성학대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괴로워하는 아동의 경우와 유사한 심리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제의 성범죄는 ‘사목적 권위의 남용이자 사목적 신뢰에 대한 배신’이라고 명시한 한 수도회의 사목윤리 지침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었다고 생각한다.

 

현상이 아닌 구조의 변화를 만드는 방향으로

한국천주교회의 미투운동이 불거진 뒤, 한 교회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과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당한 성추행(폭력) 피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아는 사람에 의해서든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든 여성들이 언어적·신체적으로 당한 성추행 피해는 부지기수였다. 남성들 역시 예컨대 중·고등학교 시절 (남녀) 교사들에게 젖꼭지를 꼬집히거나 속옷만 입은 채 체벌 당하기도 하고, 군대 상관에게 국부를 가격당하는 등 갖가지 피해를 겪었음을 토로했다. 젠더 감수성은 고사하고 인권 의식조차 턱없이 낮았던 30, 40년 전에는, 그런 일이 성추행(폭력)이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특히 남성들은 남자답지 못하게 보이는 건 아닐까 싶어 그 경험을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고도 했다. 지금이라면 모조리 신고 대상인 행동이었지만, 위계 구조의 하부에 놓인 존재들은 강자의 폭력에 당하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타라나 버크의 말대로, 미투운동이 성별과 무관하며, 여성 피해자가 많아 여성들이 주도하는 건 당연하지만 남성을 적으로 상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개개인의 경험 나누기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면 가톨릭교회가 미투운동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여성이자 신자 관점에서 몇 가지 건의해본다.

 

피해자의 인권 보호에 초점을 맞추자

주교회의가 구성하기로 한 ‘교회 내 성폭력 방지 특별위원회’(가칭)의 활동은 주로 이미 발생했거나 앞으로 발생할 사목자의 성범죄에 대한 대처와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 보호와 지원 방안 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뢰에 기반을 두어야 할 유대관계를 훼손한 것은 가해자인 사목자인데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오히려 신앙공동체에 망신을 준 사람으로 인식되며 고립될 수 있다. 전형적인 2차 피해다. 성범죄 사실은 비밀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을 때야 치유가 시작된다. 이번에 드러난 수원교구 사건에 대해서도 2011년에 일어난 일인데 “왜 이제야 문제를 제기하느냐”고 묻기보다, “지금까지 피해 사실을 가슴에 묻은 채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 말을 건네고 다독이는 일에 나서야 한다. 성학대 피해자들이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증후군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피해자 입장에 서는 일은 어떤 대처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자세는, 첫째, 피해자의 말을 믿는다, 둘째, 피해 사실이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셋째,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드러낼지 모를 다양한 2차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서 비밀을 털어놓은 데 대해 신변보장을 받고, 온전한 치유에 참여할 수 있음을 믿게 하는 게 진정한 피해자의 인권 보호와 지원이다.

 

솔직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자

‘사건’ 보도 후, 이용훈 수원교구장의 사과 표명에(2월 25일) 이어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가 사과문(2월 28일)을 발표했다. 몇몇 사제들은 가해 사제를 대신하여 신자들에게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신앙공동체의 책임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이다. 이 소식이 전해져서인지, 어떤 성당에서는 미사 후 신자들이 사제에게 “왜 교회는 사과 표명을 하지 않는지” 항의했다고 한다. 수품 2년 차의 한 젊은 사제는 본인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사과하라’는 요청을 받고 너무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이럴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신자들 역시 부끄럽고 참담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신자들이 어떤 항의나 불평을 토로하더라도 공감하며 들어주면 좋겠다. 들어주고 또 들어주시라. 그게 신자들을 동등한 공동체 구성원으로 대우하는 행동이 아니겠는가.

원로사제 호인수 신부는 차제에 ‘사목자 평가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비단 미투운동 관련 문제만이 아니라, ‘권력’에 취한 성직자들의 행위를 개인적 비리로만 볼 수 없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오죽하면 이런 제안까지 나올까 싶다.

비리나 범죄를 저지른 사목자에 대한 평가와도 연관된 문제로, 고발당한 사제들에게 내려진 정직 처분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다. 정직(停職)은 성직자 성무집행을 일시 정지시키는 것으로, 사제직을 박탈하는 ‘면직(免職)’에 견주면 너무 가벼운 처벌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성직자에게는 어떤 면에서 직무를 내려놓고 자유로워지는 ‘면직’이 아주 손쉬운 판단과 단죄이고,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 기간이 언제 끝날지도 모를 긴 성찰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정직’이 더 무거운 징계일 수 있다고도 한다. 문제는 교회가 성직자에게 내리는 ‘면직’과 ‘정직’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아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왔다는 점이다. 언론을 비롯한 가톨릭신자가 아닌 사람들을 위해서도 자세한 설명과 안내가 필요하다.

 

배제나 차별 없는 구조를 만들어가자

미투운동에 대한 대응의 하나로 알려진 펜스 룰(Pence Rule)은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Mike Pence)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을 밝힌 것이다. 울타리를 뜻하는 ‘Fence’와 발음도 비슷하고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하기 위해 여성과 만남에 울타리를 치겠다는 의미가 담긴 선언이다. 사제들로부터도 신자들과의 포옹 인사를 없애겠다, 여성 신자와 모임을 없앤다는 식의 펜스 룰을 농담처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펜스 룰은 남성들이 그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들먹이는 소극적 대응 방법에 그치지 않는다.

2013년 윤창중의 인턴 직원 성추행 사건은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직위를 이용한 ‘직장 내 위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었다. 그런데 윤창중이 ‘인턴 직원’을 굳이 ‘가이드’라고 칭하며 자기 행위의 비중을 축소하려 한 것이나, 그 사건 이후 정부가 내린 공직자의 해외 순방 시 여성 인턴 배제, 공식 일정 중의 금주령은 성폭력 문제의 구조적 측면을 덮은 대표적인 펜스 룰 조치다. 말하자면 펜스 룰은 남성들의 지질한 대처가 아니라, 특정 조직이나 활동에서 여성 자체를 배제하겠다는 위협이며, ‘남성에 의한 지배’ 또는 ‘남성에게 집중된 권력’을 공고화하는 성차별 논리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투운동은 좁게는 남성 중심적인, 넓게는 힘을 가진 세력에 의한 배제와 차별의 구조가 공동체에 얼마나 큰 폭력을 가하는지를 철저하게 규명하고 바로잡자는 운동이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교회 내 성폭력 방지 특별위원회’(가칭) 설립에 대한 발표가 나온 지 한 달이 훌쩍 지나는 현재까지, 특별위원회의 구성이 어떤 논의 단계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눈에 보이는 변화라면, ‘사제 성폭력 사건’의 발단이 된 수원교구에서 5월부터 전체 사제를 대상으로 ‘성폭력과 인권 감수성’에 관한 교육을 시작한다고 한다(수원교구 사제평생교육실 주관). 성폭력 방지를 위한 실천에 나섰다는 면에서 그나마 고무적인 소식이다.

이 와중에 교황청은 4월 7일 “아동 포르노물을 소지한 혐의로 카를로 알베르토 카펠라 몬시뇰을 체포해 교황청 내 헌병대 구치소에 가뒀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부끄러움은 악을 이겨내기 위한 초대장”이라 말씀하신다. 미투운동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일을 내포한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며 고통을 회피하지 말고, 구조적 변화를 마련하는 데 나서기 바란다. 2018년을 평신도의 손으로 만드는 ‘희년’이 되게 하자.

 


박은미.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학부,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일본 히도쯔바시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대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총무로서 교육과 연구활동에 참여하고, ‘품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며 심리상담을 한다. 배움을 통한 개인의 성장과 건강한 인간관계 형성에 관심이 많다. 본지 편집위원이다.

자료출처

image1:google

image2:google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