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짝_영혼의 줄로 이어진 나의 소울메이트

이아람

영혼의 줄로 이어진 나의 소울메이트

  • 곽은경백창화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지닌 두 친구가 있다. 한 사람은 국제 NGO 팍스 로마나 세계 사무총장으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NGO 활동가이고, 다른 한 사람은 한국에 머무르며 결혼을 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고, 지금은 작가이자 작은 도서관 관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들은 서로를 ‘영혼의 줄’로 이어진 친구라고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함께 책을 펴내기에 이르렀다. 국제 사회에서는 로렌스 곽, 그리고 한국에서는 ‘곽은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국제 NGO 활동가 곽은경과 그녀의 책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를 공동집필한 작가 백창화 씨를 만나보았다.

이들의 인연은 직장 선후배로서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곽은경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가톨릭학생회의 일을 무척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됐는데, 같이 활동했던 학생 운동가들은 노동 현장이나 농민 운동을 위해 농촌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6남매의 장녀로서 생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졌던 곽은경 씨는 그런 용기 있는 행동까지는 할 수 없었다. 사회생활의 첫 시작을 한 여성 잡지의 기자로 시작했지만, 곧 수험생을 위한 책을 만드는 곳으로 이직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인턴기자로 일을 시작하게 된 백창화 씨를 만나게 됐다. 백창화 씨는 이때의 곽은경 씨를 회상하며 어렵고도 하늘 같이 높은 선배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들의 추억이 어려 있는 곳은 영등포의 한 만홧가게였다. 그 추억들은 고스란히 그들이 함께 펴낸 책에도 담겨있다.

“층층시하 선배들 아래서 세상 무서운 걸 알아갈 무렵, 드디어 인쇄소 출입을 하게 됐다. 당연하게도 내 직속 선배인 곽은경과 함께였다. 잡지는 정확한 날짜에 인쇄가 떨어져야 했고, 제본을 마치면 약속된 시간에 배본이 되어야 한다. (…) 필름 출력과 교정을 모두 마치고 몇 시에 인쇄를 넘기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인쇄를 걸어 순서를 빼앗기는 때도 많았다. 그래서 자리를 지키는 일이 중요했다. 그곳에서 하룻밤, 이틀 낮을 꼬박 지키고 앉아 필름이 한 장 한 장 나올 때마다 교정을 봐서 오케이를 넘기곤 했다. (…) 선배는 나를 데리고 근처 만홧가게로 갔다. 심야에 교정지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우리는 그곳에서 대기했다. 거기서 처음으로 곽은경과 정확히 호흡이 맞았다. 우리는 『북해의 별』을 함께 읽으며 밤새 사랑과 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독서토론 모임보다도 뜨거웠던 우리의 심야 토론은 1년 동안 이어졌다.”

– 곽은경·백창화 저,『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 73~74p

곽은경 씨는 백창화 씨와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그동안 솔직히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고 이야기했다. 잡지 마감에 쫓겨 정신없이 지내던 그녀에게 급작스레 다가온 어떤 한 제안 때문이다. 국제가톨릭학생운동(IMCS) 단체에서 아시아 대표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고민하고 있을 때, 백창화 씨는 그 제안을 수락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항상 해외로 다니는 곽은경 씨의 바쁜 일정 탓에 전화번호가 바뀐 적도 여러 번이었고, 1년에 한 번 소식을 주고받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우리 사이에는 영혼의 줄이 이어져 있는 듯 여겨졌다.” 고 말했다.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의 가장 독특한 점은 곽은경 씨와 백창화 씨와 공동필자로서 이 책을 함께 집필했다는 것이다. 나의 삶이 가장 친한 벗에 의해 그려진다는 것은 드물고도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곽은경 씨는 대번에 “사실 백창화 씨가 없이는 이 책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백창화 씨는 ‘숲 속 작은 도서관’을 시작한 다음부터 학부모와 어린이,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세계화 열풍으로 많은 어린아이들의 꿈도 UN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지켜보며 그것의 빛과 그림자가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눈을 떠서 그 세계를 바라보고, 네가 가야 할 세계의 지점이 어디인지’를 알려줄 사람은 바로 곽은경 씨였다. 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백창화 씨의 이런 적극적인 추진력은 친구가 살아온 삶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책을 쓰라는 권유를 하는 친구에게 곽은경 씨는 한글 타자가 어렵고 여유가 없다는 식으로 거절했다. 그러자 백창화 씨가 아예 파리로 날아왔고, “이야기를 해라. 내가 인터뷰식으로 글을 풀겠다.” 는 제안을 했다. NGO 활동가로서 살아온 곽은경 씨의 인생과 두 친구가 함께한 나날을 글로써 되짚어 보는 작업의 첫 시작이었다. 백창화 씨는 2년간 인터라켄과 제네바를 오가며 총 세 번을 걸쳐 방문했다. 기획부터 원고 교정교열까지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곽은경 씨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백창화 씨의 집요한 설득과 노력 없이는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책” 이라고 말했다.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에는 그동안 그녀들이 주고받은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손 글씨로 꼭꼭 눌러쓴 원본은 아니지만, 편지 속에는 곽은경 씨가 처음 프랑스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느꼈던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활동을 하며 보고 겪었던 각 나라의 참혹한 현실이 담겨있다. 이 생생하고도 솔직한 기록이 수록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그들이 나누었던 편지를 백창화 씨가 모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를 하게 되면 보통 대부분의 물건을 다 버리게 되잖아요? 그런데 창화 씨가 편지함을 딱 열었는데 제가 처음 파리에 건너갔을 때 썼던 편지부터 시작해서, 리마에서 썼던 편지까지 다 나오는 거예요. 그게 정말 놀라웠어요. ‘역시 작가는 이렇구나.’를 느꼈죠.” 백창화 씨 역시도 책을 집필 할 때 곽은경 씨가 오래전 이야기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경험했던 걸 상세하고 자세히 기억하고 있어서 가능했다고 한다. 서로가 가진 이 놀라운 장점들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몇 년에 한번 씩 어렵게 만나게 되는 만나는 친구지만 만나게 되면 항상 이야기가 잘 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었노라고 곽은경 씨는 말했다. 바쁜 일정 탓에 미처 보지 못했던 한국 드라마나 읽지 못했던 책도 백창화 씨의 이야기를 통해 들으면 굉장히 재밌었다. 그래서 책을 위해 인터뷰를 했던 그 시간조차도 ‘그동안 못 나눴던 수다를 떨 수 있는 기회다!’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공동 집필을 있게 한 힘은 아마도 끊임없이 나눴던 대화를 통한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흔히, 친한 벗을 ‘소울 메이트’라고도 한다. 영혼과 영혼이 통한다는 뜻이다. 곽은경 씨와 백창화 씨도 기나긴 우정의 세월을 떠올리며 참으로 불가사의 한 일이라고 말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연락이 끊어질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만나게 됐던 인연의 끈. 가족처럼 느껴지는 포근함, 몇 년에 한 번씩 만나도 이야기가 잘 되고, 그 이야기가 다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힘. 그 힘과 인연의 끈은 서로가 가진 영혼의 다른 면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이 삶을 존중하고 동경하고 바라봤던 것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내가 살고 싶었던 삶, 이렇게 살아가야 할 것 같은 삶을 사는 친구라고 생각했죠. 근데 책의 내용처럼 이렇게 진한 삶인 줄 몰랐던 것이죠. 인터뷰하면서 저도 알게 된 거예요. 저도 책을 쓰자고 할 때도 십 분의 일 정도로 짐작한 것을 가지고 시작했죠. 그런데 실제로 인터뷰를 해보니까 제가 알고 있었던 것은 정말 얼마 안 되는 거였던 거예요.” (백창화 씨)

“책을 통해서 계속 만났던 인연 같아요. 제가 밖에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그동안 읽지 못하는 책이라든지 드라마를 백창화 선생님을 통해서 듣기만 해도 머릿속에 정리되는 거예요. 워낙 통쾌하게 딱 분석해주시고요. 사실은 정말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가끔가다 꺼내보는 책처럼 항상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만들어가고, 좀 더 좋은 책을 만들어가기 위해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고마웠고, 그래서 이렇게 같이 책을 낼 인연으로 엮인 게 신기해요. 한편으로는 운명 같아요. 저도 책 만드는 일을 좋아해서 그 일을 계속 했더라면 그 일을 하는 사람으로 남았을 텐데…. 내가 하지 못했던 일을 계속 하는 사람, 창화 씨는 저를 보면서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을 자신은 못했지만 하는 사람. 그런 공감의 답장이었던 것 같아요.” (곽은경 씨)

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단짝의 개념을 새로 정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항상 내 옆에 머물러 있어서 시시콜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단짝과는 약간 모습을 달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은경 씨와 백창화 씨는 서로를 ‘그동안의 일을 설명하지 않아도 소통이 되고, 수다를 떨 수 있는 단짝’ 이었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곳은 곽은경 씨의 책,『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의 북 콘서트가 열린 파주출판단지에서였다. 북 콘서트에서 NGO 활동을 하며 겪었던 일들을 들려주며 곽은경 씨는 눈가를 자주 훔쳤다. “제가 잘 울어요.” 라고 말하며 웃음을 보이는 곽은경 씨를 묵묵히 바라보는 백창화 씨의 뒷모습에서 이들의 관계도 그러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삶을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하고 공감했기에 이토록 진한 우정을 나누는 것이 가능했을 것 같다. 그동안 함께한 나날들을 얘기하는 그녀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 웃음은 학교 앞 분식집의 떡볶이 한 접시로도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해하는 풋풋한 여고생을 닮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은 단짝이라는 단어에서 여고 시절을 느낀다고 했다. “미울 때도, 좋을 때도 언제나 일상을 공유하는 그런 존재 말이지요. 그런 면에서 생각한다면 저희는 단짝이라는 개념과는 살짝 안 맞는 것도 같아요. 하지만 이런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서로에게 울림을 주는 관계도 중요하니까요.” ‘울림을 주는 관계’라는 말이 한동안 맴돌았다. 전설적인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가 되기를 꿈꾸며 빛나는 청춘을 함께 한 그들의 우정 역시도 오랜 시간 동안 쌓인 공감과 신뢰에서 빚어진 것이리라. 앞으로 이 ‘울림’ 있는 만남을 이어갈 그녀들의 다음 여정은 어떤 모습일까.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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