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인물 열전 – 종교의 경계를 넘는 자유인 ‘무위당 장일순’ – 나락 한 알 속에도 우주가, 무위당 장일순 <2>

황경훈(아시아평화연대 센터장)

종교의 경계를 넘는 자유인 무위당 장일순

  • 나락 한 알 속에도 우주가, 무위당 장일순 <2>

장일순은 여러 강의에서 비교적 자주 비유적으로 언급은 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그리스도론이나 신론이라고 할 만한 것은 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불선과 그리스도교를 ‘통섭’ 한 종교가 장일순의 사상 기반을 이루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가톨릭 신자였지만 그의 종교관은 각 종교가 그 안에서 통섭 되어 갈등이 아닌 조화를 이뤄낸 ‘토착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 소설가 김성동은 그의 종교관을 이렇게 본다.

“유가(儒家)인가 하면 불가(佛家)요, 불가인가 하면 노장(老莊)이며, 노장인가 하면 또 야소(耶蘇)의 참얼을 온몸으로 받아 실천하여 온 독가(督家)였던 선생은, 무엇보다도 진인(眞人)이었다. 속류 과학주의와 속류 유물론과 유사 종교적이고 혹세무민적이며 종교적 신비주의에 추상적 형이상학만이 어지럽게 춤추는 판에서 대중성, 민중성, 소박성, 일상성 속에 들어 있는 거룩함을 되찾아 내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한 몸뚱어리의 두 이름으로 더불어 영적 진보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 길밖에 길이 없다는 것을, 순평(順平)한 입말로 남겨 준 선생이시다.”

또한 그는 예수를 위대한 한 종교의 성인으로, 또 ‘보이는’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 ‘보이는’ 하느님으로서의 예수는 늘 함께 언급되는 특징이 있다. 이를 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장일순의 그리스도론은 늘 신론과 함께, 특히 삼위일체론 이라는 관계 속에서 그려지고 전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예수 탄생과 관련한 강연에서 예수가 구유에서 난 것은 짐승의 먹이로 온 것이며, 따라서 인간 세상만이 아니라 무한한 우주공간과 무한한 시간에 걸쳐서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 모두를 해결하러 왔다고 주장한다. 구유에 오신 예수를 통해서, 우주의 모든 티끌도 하느님이라는 절대와 하나라는 사실이었다. 예수가 “내일 걱정은 내일하여라” 고 한 것도 장일순은 상대적인 시간에 매여 살지 말고 절대적인 시간인 영원한 하느님의 생명에 동참하는 삶을 살라는 명령이라고 해석한다. 여기서 생명은 유기물뿐 아니라 무기물을 포함하는 것으로 우주의 모든 것이다. “생명은 하나이고 절대이고 그 누구도 함부로 못 하는 것이고,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권능이요 그분 자체이심을 알려주십니다.”

이렇게 볼 때, 장일순의 하느님은 티끌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것과 동일시되며 이는 그가 표현하는 ‘생명’과 동의어로 이해된다. 그는 하느님은 보이지도 이해될 턱도 없다고 비판하면서 ‘안 보이는’ 하느님의 중요성을 ‘보이는’ 하느님인 예수와의 관계 속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공(空)이라든가 기(氣)라든가 부처님이라든가 하느님이라든가 하는 이 사실은 눈으로 육안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예수는 뵈는 하느님이고, 하느님 아버지는 안 뵈는 하느님이다 그 말이에요. 그런데 그 모범과 자연의 이치대로 가장 잘 살아간 사람은―여기 그리스도교인이 많으니까―예수님이에요. 그런데 여기 이 자리에도 예수님이 많아.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너희들은 오라질 놈들아 백 날 가도 아니다, 이러면 안 되겠지요?”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장일순에게 그리스도는 인류의 ‘오직 유일한 구원자’라기보다는, 눈에 안 보이는 하느님을 가장 잘 따르다 간 한 ‘모범’으로 해석하고 있는 점이다. 기존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는 비켜서 있다. 또 앞의 말처럼 “그리스도교인이 많으니까” 예수가 그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지, 불교인이 많았다면 부처라고 말했을 거라는 예상이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더욱 상대화된다. 심지어 ‘이 자리에 예수도 많고, 너희도 하느님이다’라고 말하는 데서는, 곧 예수와 하느님과, 인간과의 질적 차별성을 두지 않는 장일순의 예수와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전통 신학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장일순에게 예수는 기도의 대상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기도를 바치는 사람이다. 도덕경을 풀이하면서, ‘하느님의 자리’, 그 자리에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보는 자리’가 중요하거든. 그 자리에서 세상만사를 들여다보시는 분을 가리켜 수운이나 해월은 ‘한울님’이라 했고 예수는 ‘아버지’라고 했지. 그러니까 뭐냐 하면 언제나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다가도 그 ‘자리’로 돌아가라는 거야. 아버지의 자리로, 부처님의 자리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행하고, 사물을 보되 그 자리에 비추어서 보자는 그런 말씀이지. 바로 예수가 그렇게 사셨단 말씀이야. 거 왜 살다가 곤혹스런 일을 당하면 산으로 들어가시지 않던가? 산에 들어가 엄재하시는 아버지 앞에서 깊이 묵상하고 자기를 비우는 일을 계속하시거든.”

여기서 예수에 국한해서만 말한다면, 장일순이 예수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산으로 가서 ‘아버지의 자리’에서 묵상하면서 자신을 비우는 수행을 한 점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그의 영성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해 보인다. ‘밑으로 기어라’나 ‘조 한 알’이라는 지극히 겸허한 명호를 삶의 원칙으로 삼고 그렇게 살고자 노력한 데에서, 바로 예수의 이런 수행이야말로 장일순에게는 한 모범으로 여겨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수행과 예지로는 도인의 수준에 이르렀음에도 민중들과 늘 함께 하려했고 또 그 안에서 행복해했던 ‘밑으로 기는’ 영성은 자신을 좁쌀보다도 더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고, 그렇게 ‘보기’ 위해 하느님 자리에서 항상 자신을 비우려 끊임없이 노력했던 데서 우리는 이를 ‘모심의 영성’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좀 더 현대적 어법으로 표현한다면, 그 개방성과 포용성의 철저함을 내용으로 하는 ‘철저한 연대’(radical inclusiveness)의 영성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장일순의 이러한 종교 사상은 가톨릭 농민회 지도신부였던 정호경의 회상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지인들과 지학순 주교, 장일순 등이 치악산에 갔었는데, 상원사란 절에 들렀다. 장일순과 지학순이 대웅전 안의 불상을 향해 합장을 하고 공손히 절을 하는 것을 보고 한 일행이 이상하게 여기고 물었다.

“‘천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째서 불상을 보고 절을 해요?’ 장일순이 껄껄 웃었다. ‘이 사람아, 성인이 저기 앉아 계시는데 어찌 우리 같은 소인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일화를 통해 장일순의 종교사상이 조금도 꾸밈이 있다거나 과장되지 않은 것임이 보인다. 정호경은 장일순에게 ‘불취외상 자심반조’(不取外相 自心返照)란 글을 써달라고 부탁해서 받았던 적이 있다. 여기서도 장일순의 종교 간 융섭과 일치 사상이 정호경의 종교사상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가톨릭 신부가 불교 경전의 알맹이를 화두로 삼는다! 거 참 좋구나! 그래, 종교의 벽을 넘나들며 산다는 것, 그게 하느님의 뜻일 테고, 예수 석가의 길이니까, 마땅하고 옳은 일이야! 하지만 거기서 그냥 머물러서야 쓰겠는가! 끝도 없이 나아가야지! 애당초 한 몸이었으니까! 이념의 벽도 종교의 벽도 허물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벽도 허물고 하나로 통일될 때, 그 때 거기서 참 생명이신 하느님도, 너도, 나도 제대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정 신부, 아우님(생전의 선생은 술자리에서 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렇지 않소이까? 하하하.”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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