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착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

지요하

착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

 연중 제 33주일, 11월 16일, 마태 25, 14-30

최근 성당 안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본당 주임신부님과 상의를 한 후 교중미사 중 주임신부님 강론 다음에 내가 해설대 앞으로 나아가 마이크를 잡았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천주교인 선언’의 취지를 설명하고 서명을 부탁하기 위한 일이었다. 차분히 설명하는데 돌연 몇 사람이 반발했다. 소란스러움 때문에 서둘러 마무리를 하고 말았는데, 한마디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래도 내가 말을 마치자 손뼉을 치는 신자들이 더 많아서, 그것으로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천주교인 서명 운동에 반발하는 신자들은 결코 ‘착한 사람’들일 수가 없다고 나는 단언한다. 그들이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님의 수난과 고통, 십자가 상의 참혹한 죽음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미사는 예수님의 참혹한 수난과 죽음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이다. 그 반복적인 기억과 기념 속에서 부활에 대한 희망과 신념을 각자의 가슴에 반복적으로 아로새기는 일이다. 그런 미사를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자세로 참여하는 것인지 나로서는 실로 큰 의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치유하는 길은 그 참사의 실체와 본질을 명확하게 바라보고 오래 기억하는 일이다. 결코, 망각이 치유일 수는 없다. 덮고 가리고 눈을 돌린다고 해서 말끔히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진상이 규명될 때 진정한 치유도 가능하고 재발도 방지될 수 있다. 그런 취지를 설명하며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공유하자는 호소에 반발한다는 것은, 더구나 예수님의 참혹한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자리에서 그 미사성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반발을 한다는 것은 미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그런 태도가 과연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의 바른 자세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오래전부터 착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을 구분하는 내 나름의 눈을 지녀왔다. 다행히 천주교 신자들은 대부분 착한 사람들이다. 착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들 대부분이 착한 사람들, 다시 말해 ‘착하기만 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의로운 사람인 것은 결코 아니라는 논법이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들은 비신자 중에도 많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착한 것이 아닌 것처럼, 비신자들이라고 해서 다 악한 사람인 것은 결코 아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착하게 산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열심히 미사참례를 하고 레지오 활동도 부지런히 하는 착하고 모범적인 신자이건만 의로움에 대해서는 전혀 눈을 뜨지 못하는 신자들이 우리 주변에는 널려 있다. 참으로 열심히 하는 신자이건만 어째서 의로움에 대해서는 눈을 뜨지 못하는 걸까? 예수님을 믿기만 하고 따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눈과 마음을 닮고 배우고 지니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 사물을 예수님의 눈으로 보려 하고, 저런 일을 예수님은 어떤 눈으로 판단하실까? 라는 물음표를 가슴안에 뜨겁게 세워보지 않기 때문이다.

착하기만 한 신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땅속에다 묻고 사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 달란트를 축내지 않고 잘 보존했으니 일단은 착한 사람이다. 이런저런 봉사활동으로 달란트를 묻어놓은 흙을 잘 다져놓았으니, 정말 신자답게 생활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의로움에 대해서는 눈을 뜨지 못하고 의로운 일들에 외면을 하고 산다면, 착한 사람이기는 할지언정 의로운 사람은 되지 못한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별로 부풀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의로움을 요구하신다. 비신자들도 착하게 살 수 있고 의롭게 살 수 있으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의로움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1월호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