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천국은 통화 중

윤성희

천국은 통화 중

 그리스도 왕 대축일, 11월 23일, 마태 25,31-46.

휴대폰을 바꾸었다. 전화번호와 사진들을 옮겨 담았다. 휴대폰 브랜드가 달라서 번호가 저장되는 방식이 달랐다. 번호를 저장하며 휴대폰을 들여 보다 이참에 사용하지 않는 번호를 정리하리라 마음먹었다. 번호를 하나씩 점검하며 사용하지 않는 번호들을 지웠다. 그러다 주인 없는 번호 하나를 만났다.

지난봄, 참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다. 한꺼번에 해일처럼 들려오던 부고에 매우 힘들었다. 예견된 이별도 있었고, 갑작스러운 이별도 있었지만, 이별의 시간을 가늠했던 사람도 떠나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세레나 언니가 그랬다. 교구에서 함께 교사로 활동했고, 내가 힘들었을 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며, 내 지친 어깨를 토닥이며 용기를 주었던 사람. 그런 세레나 언니의 죽음은 내게 큰 아픔이었다.

새로 산 휴대폰의 전화번호를 정리하다 세레나 언니의 번호를 발견했다. 순간 그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통화’버튼을 누르면 저쪽에서 “성희니?”라고 할 것만 같았다. 아이는 많이 컸냐고, 벌써 그렇게 됐냐고, 언제 시간 내서 밥이나 한번 먹자고 이야기를 건네올 것 같았다. 아, 세레나 언니의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 순간, 하늘나라에도 전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운 이들의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도록,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라도 물을 수 있도록 통화할 수 있는 전화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늘에서는 이곳을 내려다보며 우리를 지켜볼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곳의 생활을, 그들의 안부를 알 수 없으니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된다면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고, 부모를 잃고, 형제를 잃은 사람들이 많은 위안을 받을 텐데….

초등학교 다닐 때 주일학교 선생님이 천국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적이 있다. 그 번호는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의 권수를 나열하고, 마지막에 그 두 권의 숫자를 합쳐 나란히 놓은 번호였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숫자였지만, 나는 정말 천국으로 연결되는 번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 전화기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연결이 될까? 하늘나라에 있는 사람들이 지상에서 추억을 만든 사람들과 일일이 통화를 할 만큼 한가할까? 나는 오늘 복음을 읽고 하늘나라에 있는 사람들과 전화연결은 그리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과 통화를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한 사람일 텐데, 하늘나라에 있다고 그 습성이 달라질까? 하늘나라에 전화기가 있어도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가장 힘들어 하는 사람들과 먼저 통화를 할 테니 내 차례가 오려면 한 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어쩌면 나는 평생을 기다린대도 그들과 통화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세레나 언니도 통화 중일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아파하는 사람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심리전문가였으니 그녀 앞에 놓인 전화기는 24시간 내내 통화 중일 것이다. 하늘나라로 연결되는 전화기는 없고, 전화번호가 있다고 해도 그들과 통화를 할 수는 없으니, 나는 지상에서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통화를 해야겠다. 그것이 유일하게 하늘나라와 통화하는 방법일 테니까 말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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