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가정과 교회, 세계주교회의 평가와 전망 – 최현숙

최현숙

천주교회의 내일은 얼마나 걸려야 올까

  1. 먼저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글의 계기가 된 ‘2014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주교시노드)’와 관련된 많은 사람의 노력과 고민을 존중한다. 더구나 의장인 79세의 프란치스코 노인은 “확실히 말하라. 아무도 ‘당신은 이것은 얘기하면 안 돼’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라.”라고까지 했다니 모처럼 다행스럽기도 하다. 프란치스코 의장은 기각된 항목들도 문서에 포함해서 발표하도록 명령했단다. 그 ‘진전’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분들과는 큰 차이가 있지만, 나 역시 그 진전이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진전을 고무적이라거나 희망차게 느끼지는 않는다. 그 회의에서 투표권을 가졌다는 190명의 독신 남성노인들의 ‘대지진’이니 ‘혼란’이니 ‘가장 획기적인 진전’이니 하는 그 왈가왈부에 관심이 없다. 190명의 독신 남성노인들의 표결 결과가 어떠하든, 로마 가톨릭 따위가 성(聖)스러운 불변의 교리를 고수하든 / 발전적으로 적응하든 / 사목적으로 새롭게 접근하든, 나는 재생산의 의무도 염려도 없이 그들의 문젯거리인 내 성(性, Sex)을 즐긴다. 그러면서 기회가 닿으면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를 한다. 시노드 관련 기사 몇 개를 스치듯 본 이유는 구경거리여서다. 문자 그대로 꼴값(외양/형식을 위한 값)들을 하고 앉았다. 옛날 옛날 한 옛날을 아직도 살고 있는 190명 독신 남성노인들이 자신들의 옛날이야기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지에 대해, 구경거리 이상의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아직 가톨릭교회에 마음을 두고 있는 ‘다른 육우당들’을 위해 그 독신 남성노인들 집단의 혼란에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 육우당 안토니오는 2003년 4월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19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을 맸다. 천주교 신자인 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독실하고 활발한 신앙생활을 하며 성장. 문학과 연극과 성악과 봉사활동. 묵주를 가장 좋아했고 신부, 수녀들을 많이 좋아함. 중학교 3학년 이후 교리와 성 정체성에 대한 번민으로 그가 찾아간 고백소. 예수를 대신한다고 하는 신부 나부랭이들의 단죄와 낙인으로 겪었을 절망과 모멸. 동성애자인권운동과 커밍아웃. 신앙 포기와 회심. ‘난 가톨릭을 벗어나서는 살 수가 없다’며,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 십자가와 성모상을 두고 늘 기도. ‘장례를 천주교식으로 해 달라, 천주교를 사랑한다’는 유언. 인천 부평 모 성당의 모 신부가 장례미사를 집전했으니, 그를 위해서 다행이었다. 주여,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육우당 사진]

2-1. 원고청탁을 수락하면서부터 이후 내내, ‘동성애에 대해 천주교와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나는 1984년에 서울 변두리의 한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고, 1987년부터 2000년까지 천주교 사회운동을 내 주요 활동으로 했으며, 2000년 이후 진보정치운동으로 활동의 중심을 옮겼고, 2005년 동성애자로 전면적 커밍아웃을 했다. 이후 내 활동의 상당 부분은 성 소수자 인권운동이었다. 커밍아웃 이후 다양하고 수많은 자리와 현장에서 이전에 알고 지내던 천주교 신자와 수도자와 신부들과 마주쳐 왔다. 구태여 표현하자면 보수와 진보를 망라해서 모두, (나의) 동성애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천주교 사회운동의 극히 일부가 제공한 몇 차례의 발언 기회와 글을 제외하고는.

이런 경우 나는 침묵 너머의 불편함을 이해해버리는 편이다. 게다가 시비를 걸어온 것도 아니다. 아마 난감한 거다. “X” 말고는 언어가 없으니 질문의 실마리를 잡기도 어려울 것이다. 혹 배려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피한 사람들 역시 이해해버린다. ‘더 불편한가보구나…….‘, 얇은 불쾌함을 느끼지만 그보다는 ’좀 웃기다‘’는 느낌이 더 크다. 그럼에도 ‘아쉽다’ 정도로 내 마음을 정리한다. 다른 기회의 다른 관계를 위해 마음을 닫지 않는다.

2-2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의 원인을 모든 생명체가 가질 수밖에 없는 ‘자기 존재의 불안’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동성애 의제에 관한 많은 사람의 혐오증을 심리적 측면에서는 이해해 보려고 한다. 하여 동성애 관련 모든 현장에서 점점 가열되고 있는 개신교 우파의 끔찍한 동성애 혐오와 악다구니는 기가 차도록 천박하지만, 그들 속의 불안을 보는 듯하여 한편으론 연민의 마음도 든다.

반면 교황청 신앙 교리에서 “동성애는 본질적으로 윤리적인 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천주교가 동성애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비열하다. 천박한 악다구니의 뒤에 숨어 고상한 척 점잔을 떨며 물러나 앉은 채 제 이익만 챙기던, 봉건시대 위선적 양반 나부랭이들의 꼬락서니다.

  1. 가톨릭교회교리서는 동성애를 ‘객관적으로 무질서’한 성향으로 간주한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1986년에는 ‘본질적으로 윤리적 악’, 2003년에는 동성애 커플 입양 허용은 ‘심각하게 비도덕적’이며,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해왔다.

이와 달리 결국 기각되고만 2014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토론 보고서에는 동성애자들 역시 “교회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은총과 자질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은 종종 자신들을 따뜻하게 환대하는 집과 같은 교회를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는 일부 의견이 담겨있다. 또한, 동성애 결합이 ‘윤리적 문제’로서 전통적 혼인과 동등한 입장으로 간주할 수는 없지만, 동성애자들 역시 자기 ‘희생’의 수준까지 이를 수 있는, 서로에 대한 지지를 모범적으로 선사할 수 있다는 문구도 들어있단다. 그러면서도 “우리 교회공동체들이 가정과 혼인에 대한 교리를 타협하지 않고 지키면서 동성애자들의 성적 지향을 수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담겨있다.

‘노인들이 참 괜한 고생을 하고 있구나’ 여겨진다. 누가 봐도 독선이 ‘본질적으로 윤리적 악’을 수용하자면서 타협만으로도 불가능하다. 자신을 버려야 한다. 터전을 불사르고 광야로 나가야 한다.

  1. 이혼 후 재혼한 신자, 동거 커플, 혼배성사 없는 결혼, 동성애 등이 이번 시노드의 주요 의제였다고 한다. 서로 간에 합의하고 / 타인들이나 사회에 합리적인 해가 되지 않는 /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해 단죄하고 낙인 하면서 그 남성노인들의 교회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천주교의 내일은 얼마나 오래 걸려야 올까?

외람되지만 나는, 저 노인들의 교회에서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다. 혹 내일을 도모하자면, 평신도들 안에서 함께 도모하기를 기대한다. 이미 어떤 평신도들은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들이다. 이혼 후 재혼한 신자, 동거 커플, 혼배성사 없는 결혼을 한 사람들 역시 평신도들 안에 이미 얼마든지 많다. 그들은 독신 남성노인들 집단의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매일 그리스도의 식탁에 초대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먹고 마신다. 혼돈 속으로 자신을 던져야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최현숙 1957년생. 결혼을 통해 가난으로 들어섰고, 예수와의 충돌로 가난을 선택 했으며, 여성과의 사랑을 통해 더 큰 자유로 나아갔다. 현재 노인복지 현장에서 밥을 벌며, 민중들의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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