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속으로 들어간 본당 – “잔치 잔~치 열렸네~”

 

경동현 우리 신학 연구소 소장

수살이공동체의 시화바오로 두레

6년간 노인들을 위해 국수 봉사를 해 온 소공동체 이야기

마을 속으로 들어간 본당’은 소규모 대안운동의 사례 소개 및 본당 상황에의 적용 가능성을 탐색해보는 코너. 2000년대 들어 시작된 마을 중심의 대안 운동은 지난 해 ‘협동조합의 해’를 기점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섰다. 이에 이미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해온 각 마을 공동체의 사례들은 보다 활력 있는 본당 공동체를 원하는 이들에게 흥미로운 표본이 될 것이다.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국교회 사회복음화의 방향’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앎과 삶을 통합하는 배움의 공동체를 일구는 일에 관심을 갖고 예수살이공동체 양성, 교육 부문에도 참여하고 있다.

수원교구 시화바오로 본당에는 조금 색다른 소공동체 모임(이하 ‘시화바오로 두레’)이 있다. 대개의 소공동체가 이웃에 사는 구역, 반 신자를 중심으로 남성과 여성이 따로 모인다면 시화바오로 두레는 ‘예수살이공동체’ 입문 교육인 제자교육을 받은 중장년 신자 20여 명이 함께 모인다. 주로 주부들로 이루어진 소공동체 모임과 달리 다양한 직업의 남녀가 한 자리에 모이고, 예수살이공동체가 추구하는 이상과 영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기존의 소공동체에서 찾아보기 힘든 공동의 실천을 매주 함께 한다는 점에서 시화바오로 두레는 특별하다.

국수 봉사의 시작

시화바오로 두레를 알려면 이들이 공유하는 예수살이공동체의 이상과 영성을 알아야 하는데 수행 혹은 깨달음의 영역을 몇 마디 말로 정리하기 보다는 공동체 강학집의 ‘예수살이 문답’에서 살짝 엿볼 수 있을듯하다.

문_예수살이란 어떤 것입니까?

답_예수 그리스도와 합일되어 지상에서 천국처럼 사는 이상의 삶입니다.

문_예수살이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답_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기쁨, 세상의 평화를 위한 투신입니다.

문답에서 보듯이 예수살이공동체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천국인 하느님나라를 살자는 운동이다. 예수께서 살았던 삶을 오늘날 우리도 살아보자 해서 ‘예수살이’라 이름 붙였다. 또한 우리의 일상은 늘 깨어있지 않으면 소비, 돈, 권력, 명예와 같은 욕망에 빠지기 쉬우니 공동체를 통해 의식적으로 해보자 해서 ‘공동체’라 이름 붙였다. 시화바오로 본당에서는 2004년부터 기수별로 1~2명씩 제자교육에 참여했다. 교육 이후에 어떻게 하면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본당 인근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차현국(미카엘)씨의 제안이 국수봉사의 시작이 됐다. 2007년 포장마차를 그만두고 전업을 준비하던 차 씨가 주방기기를 좋은 일에 써보자며 독거노인들을 위해 매주 한 번씩 국수 봉사를 제안한 것이다. 처음에는 본당 인근에 있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천막을 치고 하다가 지금은 정왕사회복지관 식당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에는 7~8명이 시작했지만 지금은 봉사자들이 40여 명에 이른다. 자녀들도 함께 커피도 따르고 음식 나르는 일도 거든다. 이들 중엔 예수살이 회원이 아닌 이들(본당 신자 20%)도, 신자가 아닌 이들(20%)도 있다.

2007년 4월부터 시작했으니 꼬박 6년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명절에도 쉬지 않고 어려운 지역민들에게 국수봉사를 한 것이다. 시화바오로가 위치한 시흥시는 빈민운동의 대부라 불리던 고 제정구 의원이 활동하던 지역으로 빈민운동이 비교적 활발한 편이고 서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어서 복지 체계가 비교적 잘 갖춰진 곳이다. 2008년부터 시화바오로 두레에 국수 봉사 장소를 제공해주는 정왕사회복지관 역시 제정구 선생과 빈민운동의 인연을 갖고 있는 곳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인연이 한 편으로는 고맙기도 한 일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 복지관에서 국수봉사를 하기 전에는 10여명 안팎으로 오시던 어르신들이 복지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는 인원이 늘어 지금은 하루 200여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기존에 복지관을 이용하던 어르신들과 입소문을 듣고 멀리서도 오는 분들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두레 모임 대표이면서 주방봉사를 맡고 있는 이선호(프란치스코)씨는 “여기 오시는 분들 가운데는 꼭 여기오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되시는 분들도 있는데, 물질적으로 넉넉해도 정신적으로 굶주린 분들이 와서 국수 한 그릇 나눠 드시고 행복해 하신다”고 말한다. 이곳에서는 손 내미는 사람들은 누구나 소찬이지만 대접하고 함께 나눈다. “여긴 차별이 없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어디서는 65세 이상이면 안 되고, 누구는 안 되고, 하는 제한이 있지만 여기선 그런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본당에서 마을로, 공동체의 확장

서두에 시화바오로 두레를 본당 소공동체에 비유했지만 아직까지 정식 사도직 단체는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월 두레 모임 장소로 본당 공간을 사용하려면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그나마 두레원들이 두레 모임 외에도 사목회, 연령회, 레지오마리애 등 이런저런 본당 활동을 병행하고 국수 봉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입소문이 나면서 본당에 모임 공간도 마련된 것이다. 소공동체운동의 원리대로라면 자발적으로 생겨난 다양한 본당 내 공동체들을 모두 소공동체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본당을 넘어 마을공동체로까지 운동의 지평이 확장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소공동체운동 20년이 지나도록 공동체의 범위가 승인된 신자 공동체로만 제한되는 건 크게 아쉬운 대목이다. 이런 현실에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본당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일례로 본당 사회복지 예산을 책정해 두고도 제때에 지원할 곳을 찾지 못해 쓰지 못하는 본당이 많은 이유는 마을에 속한 본당이지만 마을을 잘 모르는 탓이 크다. 이런 이유로 뭔가 봉사하기 원하는 본당 신자들도, 사는 곳 가까이에서 봉사할 곳을 찾지 못하거나 방법을 몰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매주 열리는 국수봉사 현장은 두레원들은 물론이고, 본당신자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훌륭한 나눔의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이선호(프란치스코)씨는 “남에게 봉사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국수라도 나누고 나면 문제가 달라진다”면서 선교운동이 따로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저 본당 안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 세상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체험이 쌓이다 보니 이웃의 범위도 자꾸 넓어져 용산참사 때에는 시국미사 현장에도 찾아가 철거민 유가족들과 미사 참석자들에게 국수 봉사를 하기도 했다.

지난 6년간 쉬지 않고 봉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 그럼에도 꾸준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물었다.

“복지관으로 장소를 옮기고 인원이 갑자기 늘어 2009년 말에 보니 500만 원가량 적자가 났어요. 그런데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두레원들이 무상으로 밭 1,500평을 임대해 배추농사를 짓고, 복지관에서 김장을 담가 바자회를 열어 그 해 빚을 모두 갚았죠. 2010년에는 힘든 배추 농사 대신 연말에 본당신자들을 대상으로 먹거리 바자회를 열어 기금을 마련했어요.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지난 6년 동안 본당의 물질적 지원 없이 두레원 스스로 이일을 꾸려 갈 수 있었던 것은 나눔에 대한 의지, 매주 봉사활동을 통해 쌓인 서로간의 신뢰가 큰 힘이 됐어요.”

시화바오로 두레의 사례를 다른 본당에서 시도해보려고 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함께 봉사할 사람들이 확고한 의지와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가지만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봉사를 하면서 가난한 이들, 어르신들과 함께 있으려는 마음보다, 이게 불편하니까 빨리 해결시켜버리겠다, 혹은 내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면 대부분 실패할 거 같아요.. 이웃을 도울 때 예수님 말씀처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끔, 받는 사람 입장도 생각하고, 존중하면서 사랑으로 믿음을 증거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 같아요.”

그의 말을 듣다보니 같은 예수살이공동체 회원이면서 인천에서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는 서영남 선생의 표현이 떠오른다. “손님을 하느님처럼 대접해드리면, 다른 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대접 받으신 하느님들이 알아서 해주시거든요.”

 

소장님3

▲ 봉사 시작에 앞서 시작기도를 하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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