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회는 지금 – 대화하며 함께 살아가기: 캐나다의 다문화 사회와 종교의 다양성

조희정

대화하며 함께 살아가기: 캐나다의 다문화 사회와 종교의 다양성

캐나다의 단풍이 가을 낙엽으로 물들던 시월의 어느 날, 오타와 국회의사당에서 총기 사건이 있었다. 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목표로 삼은 이 사건은 자칫 큰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다행히 저지되었고 다시금 캐나다 내 문화,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갈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다소 놀라운 것은 사건 이후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특정 민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사람들의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이러한 인식은 최근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한 동영상에서 드러났다. 화제의 동영상은 백인 배우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인종과 복장을 이유로 유색인 배우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지목하고 버스를 타지 못하게 하는 둥 소란을 피우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내용이었는데, 동영상 속 대부분의 캐나다인들은 백인 배우의 인종 차별적 발언에 반발하며 인종 및 복장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세웠고 나아가 오타와 총기 사건은 한 개인이 집도한 것이기 때문에 그가 속해 있는 종교 전체를 그 사건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동영상은 문화 및 종교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평화롭게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 도래했다는 문구와 함께 끝났다.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을 나의 이웃으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캐나다의 시민의식은 캐나다의 다문화 사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캐나다는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로 대부분 도시에서 매우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얽혀 살아간다. 캐나다 통계청의 발표로는 인종, 민족적 소수자 (visible minority groups), 즉 토착민과 초기 정착민인 백인을 제외한 타민족의 비율이 2006년 인구조사 기준 토론토의 경우 전체 도시 인구의 42.9%, 밴쿠버는 41.7%로 측정되었다. 나아가 가속화되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 통계청은 민족적 소수자의 비율이 2031년경에는 토론토의 전체 도시 인구의 62.8%, 밴쿠버의 경우는 59.2% 정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캐나다의 다문화 현상에 가장 특징적인 모습은 대부분의 이민자가 자신들의 본래의 문화적 정체성을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은 캐나다의 독특한 초기문화, 즉 건국 과정에서부터 토착민, 영국인, 프랑스인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진 다문화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초기 정착 시절부터 캐나다에는 영국인과 프랑스인 사이에 끊임없는 갈등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캐나다는 토착 문화와 더불어 영국과 프랑스의 문화가 함께 존재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후 1971년 수상 피엘 트뤼도(Pierre Trudeau)는 캐나다에 영국과 프랑스 문화 중 공식적인 하나의 문화는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인종도 다른 인종에 비해 우월하지 않다는 선언을 하였고, 이 선언은 점차 영국과 프랑스를 넘어서는 넓은 의미로 해석되어 이민자의 증가추세와 더불어 다문화주의 정책에 힘을 실어 주었다. 다문화주의는 계속하여 캐나다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를 밝혔고 1988년에는 다문화주의 법률 (Canadian Multiculturalism Act)이 제정되기에 이른다. 이 법률에 따르면 캐나다 정부는 모든 캐나다 인들이 그들 본래의 문화적 유산을 지키고 강화하기를 장려하며, 이들에게 사회, 문화, 경제, 정치 면에서 평등한 참여의 기회를 부여한다.

이렇게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아가는 캐나다의 다문화 사회는 필수 불가결하게 다양한 문화 및 종교관이 바탕이 된 갈등과 충돌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 다양한 문화권의 세계관 및 가치관은 종교적인 바탕을 둔 경우가 대부분이며, 문화 간의 차이점을 들여다보면 중재의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굳은 신념들이 자리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화와 종교의 차이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근본적으로 다른 체계 및 신념을 지니고 있는 종교들에서 보다는 같은 뿌리에서 기원하되 다른 해석에 기반을 두어 체계를 구축한 종교에서 더욱 민감하게 도드라진다. 유태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즉 아브라함에서 비롯된 종교들은 히브리 성경적인 바탕을 함께 공유하나 그 안에서 각자의 입장이 갈리며 미묘한 입장의 차이에서 아프고 안타까운 분쟁들이 일어난다. 이러한 분쟁들은 과거 이민이 흔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다소 피해 갈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세계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더불어 교통수단의 발달과 인터넷의 도래로 인하여 현 시대의 사회인들은 어렵지 않게 타 문화권의 사상 및 신념이 바탕으로 된 개념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세계화 사회의 종교 및 문화의 다양성의 문제는 더는 개개인의 선택 사항이 아니며, 좋든 싫든 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이웃 나라 미국에서 일어난 9·11테러 이후 캐나다 또한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에 인해 2007년 17명의 토론토인들을 종교, 문화적 배경으로 판단하여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체포한 일은 캐나다 인들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으며 우리 사회에 종교의 문제가 매우 근본적이며 민감한 문제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아픈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종교적인 신념에 대해 대화하는 것은 꺼리게 되고 잠재적으로 종교의 분쟁은 매우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종교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테러를 근거로 삼아 종교가 폭력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가설에 대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2011년 아씨시에서의 연설에서 이러한 가설은 종교에 대한 탈계몽주의(post-Enlightenment)적 비판이자 반론으로 종교의 진정한 성향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교황은 종교 지도자들의 근본적인 과제는 모든 종교에 존재하는 공통분모를 찾아 공감대를 형성하는 대화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에 따르면 종교 참된 성향은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분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더불어 살게 하며 조화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복음의 기쁨』 에서 교회 안팎으로 내적인 대화와 종교 간의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종교 간의 대화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제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대화의 참여자들을 쌍방향적으로 이롭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캐나다 주교회의(Canadian Conference of Catholic Bishops) 에서는 최근 “대화의 교회 (A Church in Dialogue)”라는 제목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Unitatis Redintegratio)” 50주년을 기념하는 간행물을 발간하였다. 이 간행물은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에큐메니즘(ecumenism) 정신을 바탕으로 교회와 문화가 이 세상 속에서 나누어야 하는 대화에 대해 구술하고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참된 대화는 하느님의 구속계획에 포함되어 있으며,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쌍방향적인 소통이 기본이 되어야 하고 대화의 상대를 바꾸려 들거나 특정 신념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참된 대화는 단순히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듣는 행위를 넘어선다. 진실성 있는 대화를 위해서는 나의 의견을 피력하기에 앞서 타인에게 또한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타인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들으려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따라서 대화는 진실한 공감을 바탕으로 나와 다른 견해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요구되는 행위이다.

캐나다 사회의 다문화의 모습은 다양한 종교 및 가치관이 함께 존재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종교인들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나의 이웃이 나와 다른 종교관 및 가치관을 따르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변화를 강요하지 않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나 조화와 일치를 이루는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한 사회 안에서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듯,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은 나와 다른 나의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 되는 것이다.

조희정 캐나다 토론토 리지스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과정 중에 있다. 책 속에 머무는 지식을 쌓기보다 삶 속에서 살아내기 위한 공부를 위해 노력 중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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