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 우연은 맥주가 되어 : 인류와 맥주의 첫 만남

고상균

s(맥스)는, 왜 그런지 마실 때마다 ‘크~’ 소리를 절로 나게 탄산알콜음료인 맥주와 종교와의 역사적 연관성을 탐구해가는 자리이다. 맥주와 인문학이라니, 크~ 부어라 마셔라 마시기만 했던 맥주의 새로운 발견이 될 것이 확실한 명불허전 코너!

향린교회 청소년부 담당 준목으로, 청소년/소년들과 노는 것은 필수, 놀고 싶어 하는 어른들과 노는 것은 선택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적 퀴어 신학’의 출발을 위해 구약학 박사과정을 오~~래 공부하고 있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쫌만 더 재미있는 세상’을 꿈꾸며 학문과 경건, 그리고 실천의 조화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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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을 믿는가? 영화 「건축학개론」처럼 우연히 버스에서 ‘수지’녀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거나, 그냥 구경 갔다 예쁜 옷을 ‘득템’ 한다거나 아무튼 그런 거 말이다. 물론 신앙심 좋은 분들이야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계획’이라 말씀하시겠지만, 아직 그와 같은 절대반지의 영역에 오르지 못한 나로서는 ‘그분의 계획’보다는 ‘우연’에 더 정감이 느껴진다.

우연하니까 갑자기 정말 우연으로 대학에 간 친구가 생각난다. 그는 자신의 참 소박한 성적과 그에 따라 갑자기 설정한 진로를 고려, 모 대학 전기과에 지망을 했는데, 정작 접수 할 땐 오기(誤記)로 전자과를 써내고 말았다. 전자과는 그 학교 최고 점수였던 터! 친구는 그날 저녁 마시지도 못하는 술에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죽겠다는 둥, 인생이 자기를 버렸다는 둥, 그야말로 난리 13코스를 새벽까지 이어갔다. 그런데 어쩜~! 참 우연하게 지망했던 전자과는 정원미달로 전원 합격! 반면, 전기과는 수십 대 일의 경쟁률로 그 해 최고를 기록했다. ‘우연’이 아니었다면 친구의 난리코스는 13단계에서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은 이렇게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우연이라는 선물이 없었다면 아르키메데스는 왕관이 진짠지 가짠지도 모른 채 욕조에서 목욕만 줄창 했을 것이고, 인류는 페니실린을 얻지 못해 수많은 병마 아래 신음했을 것이며, 어느 사무실의 어떤 책상 위에도 있음직한 위대한 발명품 포스트-잇은 그저 성능 떨어지는 접착제로 휴지통에 박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의 수다꺼리인 맥주도 역시 달콤쌉싸름한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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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상으로 볼 때 맥주는 기원전 35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랑받는 맥주의 위대한 시작은 아마도 그 옛날 빗줄기나 홍수 등으로 물이 스민 빵을 버리지 않고 맛보았던 ‘어느 창의적인 여인(당시 빵 굽는 일은 여성이 담당했으므로)의 우연’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 당시 맥주가 지금 치맥의 구성원과 같은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고, 아마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에 훨씬 더 무게가 실린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는 비단 빵을 구워 물과 섞어 발효시키는 기본 공정의 유사함을 따지지 않더라도, 보리나 밀과 같은 기본재료 이외에 홉과 같이 따져 묻기도 미안할 만큼 당연스런 첨가물이 확정된 시점도 15세기가 넘어서야 시작되었음을 생각해 볼 때, 지금 맥주만이 진짜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한 메소포타미아의 맥주는 보리와 밀 등을 주재료로 하는 10가지가 넘는 종류로 발전했고, 좋은 맥주 보급을 위해 왕의 이름으로 법령이 선포되기도 하였다. 만드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여 빵에 물을 부어 발효시킨 후 빨대를 이용해 마시는 것이었는데, 귀족들에게는 여흥과 맛으로, 하층민들에게는 가혹한 노동을 잠시 잊게 해주고, 부족한 영양분을 쉽게 보충 받는 음식으로 귀하게 여겨졌으며. 이와 같은 맥주의 위상은 신화에서 신들의 연회 중 음료로, 혹은 사랑하는 인간에게 내리는 하사품으로 등장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메소포타미아의 맥주는 이집트로 전해지는데, 성곽과 피라미드 등 거대 석조공사에 동원된 노동자들과 군인들에게 일종의 수당처럼 일정량의 맥주가 지급됨에 따라, 통치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가혹한 노역에도 폭동 등으로 국가체제가 무너지는 일이 없게 해주는 중요 지배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그 좋은 것을 노예들에게만 줄 리 없는 귀족들은 자신들이 마시는 맥주에는 꿀 등의 비싼 향신료를 듬뿍 넣어 호사를 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와 같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맥주 전통은 이후 이 지역이 이슬람화 되면서 완전히 단절되는데, 아쉽게도 발원지를 잃은 맥주의 강은 또 다른 거대 지류, 즉 게르만을 만나 다시금 활력을 찾게 된다. 게르만의 맥주가 독창적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집트의 맥주문화를 받아들였던 그리스를 통해 북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하겠으며, 중동의 여섯 줄 보리와 달리 숙성과 맛내기가 손쉬운 두줄보리를 재배했던 게르만에게 있어 맥주는 그야말로 신이 주신 음료로 여겨졌다. 이렇게 유럽에 안착한 맥주는 이후 게르만을 거쳐 노르만 바이킹에게 전해졌고, 이들의 항해를 통해 전 유럽으로 전파된다. 오늘날 맥주하면 떠오르는 나라들, 예컨대 독일, 영국, 덴마크 등의 맥주는 모두 이와 같은 맥주의 흐름에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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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맥주에 대한 ‘우연’스런 기억이 있다. 그건 1990년대 초반, 아버지와 함께 주방에 딸린 수납공간을 정리하다 라벨이 헤질 정도로 오래된 맥주 한 병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 우연한 발견에 대해 우리 가족은 입장이 분분했는데, 술에 대해 별 관심이 없으며, 과업의 결과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는 깔끔하게 ‘내다 버리라!’고 하셨고, 조심성 있는 형은 ‘식중독 등 다양한 위해요소가 있으니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신중론을 제기하였으며, 나는 ‘이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해야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이때 젊은 시절 하셨던 ‘한 술’로 당뇨병을 얻으신 이후, 술 근처에만 가도 온 가족의 비난을 받아야했던 아버지께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효 및 알콜 제품인 맥주가 직사광선도 받지 않았는데 상했을 리가 없다. 내가 마셔서 증명해보이겠다!’시며, 한국맥주산업 발전을 위한 임상실험에 본인의 몸을 내어맡기시겠다 선언하셨다. ‘설마 저걸?’ 하는 심정에 잠자코 있었던 가족들은 냉장고에 넣은 맥주가 식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를 보며, 그 말씀이 실언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드디어 냉기어린 맥주병을 꺼낸 아버지는, 불안 반 기대 반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가족들을 한 번 바라보신 후, 한잔 가득한 맥주를 쭈욱 들이키셨다. 그러고는 입가에 묻은 거품을 쓰윽 닦아내신 후 ‘여…… 맛만 조오타!’라시며 참 만족스럽게 웃으셨다. 그날 함께 나눠 마신 맥주는 내가 지금까지 맛본, 그 어떤 것보다 더 기억에 남고 시원했는데, 그건 ‘우연’이 주는 힘과 그 우연을 현실로 가져오신 아버지의 실험정신이 더해졌기 때문이지 싶다.

그렇게 소박하고 웃음을 전해주시던 아버지가 올해 1월, 정말 우연하고 갑작스럽게 하늘 길에 오르셨다. 거동 불편한 어머니의 아침식사를 챙겨주시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시며 그대로 쓰러지신 아버지. 아직 할 이야기, 나눠 마시고 싶은 맥주가 많은데…….

우연을 믿는가? 난 절대반지의 영역에 들어 아버지의 갑작스런 하늘 오름이 모두 주님의 뜻이었다고 하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아무도 어쩔 수 없이 가셨다’라고 하는 편이 더 가슴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래야 그날의 맥주도 누군가의 뜻이 아니라 갑자기 우리에게 찾아온 선물이 되지 않을까? 그 옛날 한 여인의 손끝을 통해 그 매력적인 맛이 찾아왔듯 말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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