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vs Cool – 가톨릭 신학교, 교구별로 필요할까? – 곽승룡

곽 승룡(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1. 먼저 ‘가톨릭 신학교 교구별로 필요할까?’라는 질문의 표현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한국에는 군종교구를 포함해서 16개 교구가 있다. 그러므로 교구별로 신학교가 있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오히려 ‘지역 별로 신학교가 필요할까?’ 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4월에 창간된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에 대해서도 축하의 말씀   드리면서 동시에 잡지의 제목에 대한 유감도 전하고 싶다.

‘갈라진 시대에 기쁜소식’을 전하겠다는 의도는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시대가 갈라졌다’는 뜻으로 들리는 잡지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세상이 정말 갈라졌다는 뜻을 강하게 나타낸다. 그래서 이 시대가 화해와 일치의 희망보다 분리와 단절의 절망을 나타나게 할 수 있다. 이 시대를 가정으로 말하면 가정이 이혼상태라는 말인데, 이렇게 갈라졌다는 분리된 표현보다는 ‘서로 멀어지는 시대, 또는 서로 멀어진 시대의 기쁜소식’이라는 표현이 어떤지를 생각해 보았다.

분명 가정도 갈라진 ‘이혼’보다는 멀어진 ‘별거’의 상태가 화해와 일치의 희망을 두고 노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일치교령 12항 ‘갈라진 형제들과 이루는 협력’이라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다. 같은 그리스도교형제들에게 ‘갈라진 형제’라고 표현하기보다는 ‘멀어진 형제’라고 표현한다면 일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된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 1980년대 전까지는 서울대교구와 광주대교구에 있던 신학교가 대구대교구(1982년), 수원교구(1983년)에서 그리고 신자 수의 급증과 성소자의 증가로 부산교구(1991년), 대전교구(1993년), 인천교구(1995년)에 설립되었다. 1970년-80년에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이르고 이러한 영향이 의식 있는 젊은이들을 사제성소에로 인도하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필자가 입학했던 1980년대 초 서울 대신학교에는 대학을 졸업한 많은 사제 성소자들이 입학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님의 두 번에 걸친 한국방문은 신자와 사제성소자의 증가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한편 대통령 직선제를 이룬 1987년 6.29선언과 88올림픽, 1989년 임수경의 방북과 문규현 신부의 어린양을 찾아 함께 돌아온 사건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교회와 사회 등의 내외적인 환경은 젊은이들을 사제성소로 불렀던 것이다. 이에 한국가톨릭교회는 서울과 광주의 두 개 신학교로는 증가하는 성소자들을 양질의 사제로 양성하기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수원, 부산, 대전, 인천교구는 발 빠르게 신학교를 준비하였던 것이다. 성령께서 움직이신 한국사회의 민주화 과정과 김수환 추기경님의 삶,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이 많은 젊은 신앙인들을 일 깨워 신학교로 인도한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부르심이었다고 믿는다.

3. 황종렬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복음화에 대한 복음적 성찰을 태동케 하고 심화하였다. 서구 교회 밖의 지역 교회들이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제1 미션자들의 교회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그들의 선조들이 발생시킨 축복을 전하고 그들이 그 축복에 공명하고 감염되어서 그들의 새로운 복음화를 구현할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미션. 이 미션을 제2의 미션(missio secunda)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로 이 제2의 미션의 한 증표라고 말할 수 있고, 이제 이 제2의 미션은 진정한 상호 미션, 곧 그리스도 미션의 전지구화의 보편적 실현을 증거하는 현상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이제는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일방적으로 배우는 교회 관계나 교회 구조는 옛 패러다임이 되고 결국 역사의 무대 뒤편으로 물러나게 될 것이다. 그 대신 서로가 복음 안에서 형제요 자매로서 진정한 한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복음을 전거로 서로를 일깨우고 힘나게 하는 온 민족 사이의 상호 복음화(evangelatio inter populos)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이 상호 복음화와 온 창조물의 상호 미션을 복음적으로 살게 하는 제3세대 교회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진술에 자리 잡고 있다. 너보고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렇게 하겠다는 진술법. 이것은 진술법의 혁명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말한다. 권력이 무엇인지를. ”참다운 권력은 섬김임을 잊지 맙시다.” 이러한 이유로 지역별 신학교는 유지되고 전문화되어야 한다.

4. 현재 한국가톨릭교회에서 사제양성을 하는 7개 신학교는 이제 사제양성뿐 아니라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신학자 양성의 요람으로 더욱 전문화되어야 한다. 한 마디로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변화된 한국가톨릭교회는 나눔의 실현에서 물질뿐 아니라 그보다 더 정신 곧 영의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 이는 우선적으로 아시아 교회를 위한 영의 나눔의 실천으로서 사제 양성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해 동북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한 영의 나눔의 기초로서 한국의 가톨릭 신학교가 그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을 전해 받아들였던 중국으로 복음화의 미션을 수행해야 하며, 중국으로 미션수행을 보냈던 그곳, 유럽으로도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세상의 복음화와 동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아우르는 영의 나눔을 위해서, 7개 신학교는 그 지역의 특성화를 기초로 신학전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중국, 일본, 몽골 등의 지속적인 복음화 미션수행과 몽골, 중국, 일본, 방글라데시,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의 가톨릭교회를 위한 사제양성을 위해서도 신학교는 더욱 개방되어야 한다.

또한 7개라는 신학교 수에 연연하지 말고 하루 속히 그곳을 신학전문대학원으로 특성화 하는 것이 아시아 복음화 및 세계 교회에 미션과 재 미션의 수행을 위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평신도의 지도자, 해외선교사를 양성하는 못자리로 자리 잡아야 한다. 신학교가 일부 교구에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및 영적 가치를 아우르는 전문화와 특성화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새로운 복음화이다.

이를 위해 사제, 수도자, 평신도 신학자들의 협력이 절실하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사제뿐 아니라 수도자, 평신도 신학자들이 비교적 많이 포진되어 있다. 이제 그들의 신학적 업적과 능력들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 이러한 대안을 바라보지 않고 단지 신학교가 7개나 있다는 것 자체로 교구사제 충원 문제나 자질 저하의 문제를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수가 많다고 질을 채우지 않고 걱정만 해서 축소 내지는 폐교되는 여론이나 생각은 복음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의 성소를 인간이 준비하고 응답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복음과 멀리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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