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vs Cool – 가톨릭 신학교, 교구별로 필요할까? – 이미영

이미영(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가톨릭 신학대학교의 오늘

전국 7개 교구의 가톨릭 신학대학교의 입학정원은 총 345명(2011년 현재)이다. 그러나 입학생 은 사제 지망자와 수도자, 평신도 등 일반 학생을 모두 포함해 233명(67.5%)의 학생만 선발했다. 신학교 입학생의 감소에 따라 대부분 입학정원을 줄이고 있지만, 지난 10년간 한국 천주교회 가톨릭 신학대학교 신입생 평균 충원율은 61.2%에 불과하다([표 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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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오늘의 상황을 미리 예견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1990년대 초에 이제민 신부는 “신학교 난립은 실제로는 지역교회에 대한 무지와 교구 간 대화의 막힘 및 교구 이기주의가 빚어낸 한국 천주교회의 현실”(이제민, <교회 순결한 창녀>, 225-226쪽)이라며, 90년대 이후 교구 단위 신학교 설립 사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이 글에는 1991년 5월 광주 가톨릭대학 신학생들이 개최한 모의공의회에서 발표한 ‘교구 단위 신학교 설립에 대한 문제’에 과한 글도 실렸다.(230-233쪽) 교수진의 부족, 도서관의 미비, 신학교 교육의 질적 저하, 교구 간의 장벽, 예상되는 사제 지망생의 감소 등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점들이다.

그러나 신학교 신설이 필요하였던 1990년대 초반의 교회 상황도 있다. 당시 한국인 사제 수는 총 1,504명(1990년 말 현재)으로 사제 1인당 신자 수는 1,610명에 달했다. 1980년대 초까지 사제 1인당 신자수가 1천 명 정도였는데 당시는 사제 한 명이 담당할 신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1980년대에는 해마다 새 사제를 50여 명 정도 배출하였는데, 신자 수는 매년 평균 약 15만 명씩 늘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1980년대 초까지 전체 사제의 약 20% 비율을 차지하던 외국인 사제도 계속 감소하여 1990년에는 10% 정도로 신자들에 비해 사제수가 절대 부족하였다.

1990년대에 신학교를 신설하면서 매년 탄생하는 새 사제 수는 평균 140명 정도로 늘어났고, 그 덕분에 현재 사제 1인당 신자 수는 다시 1,145명으로 낮아졌다([표 2] 참조).

가톨릭 신학대학교 신설로 새 사제 수가 갑자기 2~3배 정도 늘어난 것을 두고 사제들의 질적 수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한국 사회 다른 종교의 성직자 양성 현실과 비교하면 한국 천주교회의 성직자 양성교육 과정은 여전히 엄격하고 체계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록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인원수 충원에 급급하여 자질이 부족한 이들을 선발하지 않으며, 매년 중도 탈락율이 입학정원의 20-30% 수준에 이를 정도로 철저하게 양성하고 있다. 이러한 엄격한 성직자 선발과 양성 덕분에 한국 천주교 사제들에 대한 신뢰도는 지금까지도 다른 종교 성직자보다 훨씬 높다.

또한 사제가 늘어나면서 사목활동도 다양해지고 있다. 전체 사제 중 본당사목을 담당하는 사제 비율은 줄고, 특수사목이나 해외선교 등을 담당하는 사제들이 늘어났다.

최근 사제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러 나라에서 한국 교회에게 선교 사제를 요청하는 일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해외선교를 담당하는 사제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표 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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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엔트 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톨릭 신학대학교

시대의 변화로 가톨릭 신학대학교의 목적이 개방되었지만, 한국의 가톨릭 신학대학교는 여전히 ‘사제 양성’ 중심이다. 교회 공동체 전체가 사제 양성에 대한 책임과 역할이 있지만 특별히 주교는 사제 양성에서 일차적 책임자이다.

가톨릭 신학대학교는 교회법에 따라 관할권을 가진 주교(들)가 설립하고 그 운영 역시 관할권을 가진 주교(들)의 지도로 이뤄진다.

오늘날과 같이 사제 양성 기관으로서의 신학교가 자리 잡게 된 것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영향이다. 이 공의회에서는 각 교구에 한 개의 신학교를 설립 운영하도록 권고하였고, 만일 그 여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관구별로 혹은 교구가 연합하여 하나의 신학교를 운영하도록 하였다. 이후 신학교 설립은 교구 주교의 특별한 의무로 부여되면서 수많은 신학교가 설립되었다(이찬우, “교회의 역사와 문헌에 나타난 사제 양성”, <누리와 말씀> 제5호, 242-244쪽).

트리엔트 공의회의 <신학교 교령>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하였기 때문에, 이 교령은 세속적 위험에서 사제 양성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온실 같은 신학교 환경을 만들었다. “이러한 사제 양성 교육제도는 교회의 권위에 충실히 복종하는 양심적이고 열성적인 사제들을 양성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성직자 제일주의의 사상과 계급의식을 초래하기도 하여 그들을 일반 대중과 분리시킴으로써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제상을 초래하였다.”(이찬우, 위의 글, 244쪽)

이에 비해 현대 사회에의 적응을 위해 열렸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세상으로부터 사제 성소자들을 보호하는 신학교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봉사할 사목자를 양성하는 곳으로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사제의 생활과 직무는 각 시대와 모든 생활환경에 적응해야 하기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제 양성 교령>에서는 신학생들이 신학 공부를 하기 전에 인문 교육과 과학 교육을 받도록 권고하고(13항), 신학과 철학을 조화롭게 편성하며, 신학 과목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가르치도록 하였다(16항). 특별히 신학생들은 사람들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적성을 기르도록 대화교육을 강조하였다(19항). 또 현대 사회의 흐름에 따라 사제가 된 이후에도 계속되고 보완되어야 한다는 계속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하였다(22항).

이처럼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가톨릭 신학대학교가 트리엔트 공의회의 신학교처럼 온실 속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세상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열린 교육으로 변화되도록 새로운 개편 방향과 체계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가톨릭 신학대학교 대부분은 여전히 트리엔트 공의회의 신학교처럼, 세상의 위험에서 신학생들을 보호하려는 듯 세상과 격리시켜 양성하고 있다. 이러한 격리된 사제 양성 교육제도는 트리엔트 공의회처럼 교회의 권위, 즉 그들의 양성 책임자인 교구장 주교에게 충실히 복종하는 열성적인 사제들을 양성하는 데는 성공적이겠으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의도했던 세상을 위해 봉사할 사목자를 양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심상태 몬시뇰을 비롯한 일부 신학교육 관계자들은 현대 세계 안에서의 사제 양성 지적 교육이 사회로부터 격리된 신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질 것이 아니고 종합 대학 교육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언하였다.(심상태, “한국 가톨릭대학교 신학 교육의 반성과 전망”, <이성과 신앙> 제40호(2009년), 173쪽에서 재인용) 또한 심상태 몬시뇰은 오늘날 신학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한국교회 교도권 당국의 책임을 물었다.(위의 글, 182-183쪽 참조). 심 몬시뇰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며 독단적이었던 전통적 로마-서구 교회 체계를 고수함으로써 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을 유지하겠다는 분위기가 지도층을 중심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느낀다.”(위의 글, 177쪽)고 하면서, 신학교육에서도 신학과 교도권이 상호 존중과 상부상조의 관계가 아니라 철저한 상명하복의 수직적 관계가 고착되어 있어 신학이 발전할 수 없는 것은 아니가 지적하고 있다. 또한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지연, 혈연, 학연에 집착하는 집단 이기주의가 교회 안에서도 있다고 비판하였다.

미완의 열린 신학교육 실험들

신학교육의 현실을 우려하는 학자들이 좀 더 개방되고 수준 높은 교육을 기대하는 것처럼, 교구 단위 신학교 운영과 관련하여 찬반을 논하는 것은 열린 신학교육으로 나아가려는 태도라고 보여진다. 이제는 가톨릭 신학대학교가 사제양성뿐 아니라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신학자 양성을 위해 더욱 개방되고 전문화되어야 할 것이다. 기존의 가톨릭 신학대학교를 통합하고 조정하거나 이대로 현상유지를 유지를 하자는 등의 견해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가톨릭 신학대학교가 사제 양성 기관만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신학기관이 되기를 희망하는 바람은 공통적이다.

이미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교는 1972년부터 평신도에게도 입학을 허용했고, 수원과 부산 등 여러 가톨릭 신학대학교들이 수도자와 평신도에게 개방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철저하게 사제양성에만 초점을 맞춘 커리큘럼과 체제로 운영되고 있어 수도자와 평신도의 사정이 고려되지 않는 현실이다.

현재 한국의 모든 가톨릭 신학대학교는 대학 과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사립학교법을 따르는 ‘대학교’(universitas)와 가톨릭 사제를 양성하는 ‘가톨릭 신학대학교’(seminarum majus)의 이중구조를 지니고 있다. 2년의 입문과 4-5년의 본과 과정을 요구하는 보편 교회 사제 양성 기준에 따르면서도, 한국의 교육 체계에 맞춰 대학교 4년의 학부 과정과 2년 이상의 대학원 과정으로 총 6~7년의 신학교육을 시행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황청이 제시한 2년 과정의 전문 과정을 추가하지 못하고 기초적인 학부 과정을 기간만 연장한 것이어서 대학원이 심화과정이 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학부과정을 졸업하는 수도자나 평신도들은 기본과정도 이수하지 못하는 셈이다.(이재룡, “한국 사제양성 교과 과정의 문제점과 대안 모색”, <가톨릭신학> 창간호(2002년), 18쪽 참조). 또한 사제 양성에만 중점을 둔 신학교 운영체계는,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공부하는 ‘대학’을 기대하고 입학한 수도자와 평신도들에게 소외감을 주고 있다.(“가톨릭대학교 평신도 신학교육 개방 40년… ‘통학생’ 홈커밍데이 열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2년 11월 6일자 기사 참조).

폐쇄적인 교구 신학교에 대한 대안으로 예수회의 열린 신학교육과 일부 신학교에서 실험운영되는 열린 신학교육을 실험하는 곳도 있다.

1999년부터 대구 가톨릭 신학대학교는 1학년은 한티 영성관에서 신학생들만 수업을 하고, 2-3학년은 하양 교정에서 일반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군 제대 후 4학년과 대학원생은 다시 남산동 신학원에서 남은 과정을 이수한다. 이 중 2-3학년 학생을 일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자율적인 생활을 익히도록 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초창기에는 개방이 큰 폭으로 이뤄져 전공과목 이외에 교양과정 등을 선택할 수 있었고 규칙도 최소화하여 일반 학생들과 자유롭게 교류하도록 하기도 했다.

신학교의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 한국 천주교회의 신학교육은 세상의 변화를 위협과 도전으로만 여기고 신학생들을 세상에서 격리시켜 거룩하게 양성해야 한다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시대 인식에서 크게 못 벗어난 듯하다. 학문의 자유를 누리며 다양한 담론을 펼치는 장이 되는 대학이라기보다 교도권의 가르침에 충실한 사제들을 키워내는 양성소에 더 가깝다.

1990년대 신학교 신설을 전후하여 지금까지도 논쟁이 이뤄지는 신학교의 미달 사태나 신학교육의 질적 저하 등에 대한 우려보다 한국 천주교회의 신학교육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충분히 반영하가에 대해 성찰해야 할 것 같다.

세상과의 대화를 강조한 2차 바티칸공의회는 세상에 봉사할 수 있는 사목자를 양성하는 과정으로서 신학교육의 쇄신 필요성과 방향을 제시했다. 인성 교육의 강화나 세상 학문과의 대화 중요성, 대화식 교육방법 등은 세상과 충분히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교회의 일꾼을 양성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그러한 신학교육은 사제 양성 과정도 변화시키지만, 평신도로서 세상 안에서 봉사하고자 하는 이들을 양성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신학대학교의 교육 쇄신을 위해 우선 일반 학문이나 일반 지식인들과의 대화와 소통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둘째로 교리신학원을 따로 두고 분리된 교육을 실시할 것이 아니라 사제와 평신도들을 함께 교육함으로써 신학을 발전시키고 교회를 쇄신할 수 있는 기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서울과 대구 등 일부 신학교들은 종합대학의 면모를 지닌 만큼 이러한 시도를 해 볼 수 잇을 것이다. 그러한 변화가 당장 실현될 수 없다면 최소한 다양한 학문을 전공한 평신도 전문가를 교수로 초빙해 신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높여나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더 나아가 사제들과 교회 직원들, 신자들의 평생 교육 기관으로서도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신학교는 교회를 새롭게 하고 활력을 주는 양성소로서 우리에게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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