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속으로 들어간 본당 – 민들레의료생협이 교회로…

조세종 (대전민들레의료생협 이사장, 철학박사)

인연이라는 것

그동안 숱하게 민들레의료생협(이하 민들레)이나 협동조합 병원에 대해 강연도 하고 취재에 응했기 때문에 민들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가톨릭 성당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어떻게 시작하고 맺어야 할지 몇 번이고 난감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10년 전 우연히 민들레를 알게 되었지만 결정적으로 함께 하자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가톨릭 신자로서의 정체성 때문이었다. 인간중심의 의료와 신뢰의 공동체를 실현하는 일은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다른 것이 아니었고, 함께 해 왔던 교우들 역시 민들레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확인해갔다. 그러다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신부님들이 사목하는 본당들과 내동 성당, 병원지역 인근의 몇몇 성당으로 그 인연이 확대되어 간 것이다.

민들레의료생협이란 무엇인가?

대전 민들레의료생협은 2002년에 300명의 발기인으로 시작, 10년 사이에 3100세대, 1만 여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있는 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외형으로는 1차의료기관으로 보이지만 조합원들 세우고 운영하는 특이한 병원이다. 10년 전, 믿고 찾아갈 수 있는 인격적 진료를 하는 병원에 대한 원의들이 모여 지역통화운동의 한밭레츠 회원, 인의협(인도적실천협의회) 의사, 시민단체회원들이 모여 시작했다.

과잉진료 금지, 항생제 사용 억제 등 기본적인 진료원칙에서부터 조합원의 가정사나 개인사를 함께 살피면서 아픈 몸은 물론 아픈 마음까지 어루만질 수 있는 명실상부한 조합원들의 주치의가 되면서 사람들의 호응은 높아졌다.

진료실에서 일어난 많은 일화들 중 한 가지만 소개하면, 어느 날, 원장이 진료실 안에 스피커를 설치해 달라고 지원부서에 요청했다. 진료실에 웬 스피커인지 궁금하였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평소 우울증을 앓고 계신 할머니 환자분이 거의 매일 병원에 오시는데 약하신 몸에 약물치료를 계속 할 수 없어, 원장은 할머니가 병원에 오실 때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었던 것이다. 실로 몸과 마음의 온전한 쾌유를 고민하는 의사와, 조합원 스스로가 주인인 의료생협 체계라 가능한 일이었다.

본당 공동체와 협동조합, 연대의 가능성

내가 다니는 본당이기도 한 내동 성당이 민들레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12년 7월에 대통령상을 수상했을 때 부터였다. 수상 직후, 신부님이 그 소식을 들으시고 본당주보에 민들레의료생협이 어떤 곳인지, 대통령상을 받게 된 경위가 무엇인지 소개할 자리를 마련해주셨다. 뿐만 아니라 주일미사 시간에 직접 소개도 해 주시고 교우들께 이야기할 기회도 주었다. 그 후 많은 본당 교우들이 민들레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실제로 30여 명이나 조합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사실 작년 대통령상을 받을 때, 주임신부님은 새로 부임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그럼에도 민들레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신 건, 이전 주임신부님이 당시 대전교구 정평위 위원장을 하고 내가 정평위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본당에서도 사회교리학교도 개설하는 등 나름대로 교회의 사회적 사명에 대한 이해를 본당신자들에게 많이 알릴 수 있었던 결과다.

하지만 여전히 본당 신부님이나 교우들에게 민들레는 좋은 일하는 단체, 사회적 약자를 위하고 빈민을 돕는 병원일 뿐, 협동과 민주주의적인 가치를 통해 스스로 운영에 책임을 지는 협동조합이라는 이해는 부족하다. 교우들의 가입 동기 역시 협동조합의 가치 공유라기보다 좋은 일에 일조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

게다가 얼마 전, 제2의료기관을 설립한 지역의 성당에 홍보 요청을 하자 주위의 많은 병원을 두고 민들레만 소개한다면 문제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염려로 거절된 일을 보더라도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 없이는 협동조합 병원 또한 일반 병원과 다를 바 없이 생각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민들레가 해야 할 일, 각기 단체나 분야에 맞는 교육과 홍보가 필요함을 알려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본당과 협동조합과의 연계는 결국 현 가톨릭교회의 구조상 주임 신부의 가치관에 따라 본당의 문화가 완연히 달라지는 구조에 어떻게 적용해가느냐가 관건일 것 같다.

그나마 젊은 사제나 여성수도자들 중심으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지역화폐 등 사회적 경제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다. 비록 본당 차원은 아니지만 대전 정평위 위원장 신부님과 위원들이 지난 해 새로 설립한 두 번째 민들레 의료기관을 방문해 의료생협의 개념을 설명하는 중에 경제윤리나 대안경제의 실천적인 한 사례로 함께 교육하자는 의견도 모아졌다. 물론 그 자리에 참석하신 정평위 위원들 모두 조합원이 되었고, 현재 대의원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성직자의 문과 의사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자본이나 효율이 아니라 사람을 우선으로 두고 경제적 행위를 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협동조합과 교회 모두 동의한다. 그렇다면 사회교리학교와 같은 교육과 모임의 자리에서 협동조합을 소개하고 알리는 것은 물론, 본당 소모임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대안 경제의 모델들을 적용해보는 시도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선 본당에서 소모임 단위로 현미채식 실천단과 같은 건강프로그램을 여는 것이 좋겠다. 현미채식 실천단은 비만 당뇨 등 대사질환을 앓고 있는 교우들이 식생활을 개선하면서 서로 건강을 돌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의료생협 의료진들은 현미채식 시작과 종료시점에 건강상태를 측정하여 얼마나 호전되었는지 상담하고, 본당에서 관련 건강강좌도 갖게 된다면 더욱 많이 이들이 참여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본당의 빈첸시오나 사회복지분과에서 본당 관할에 있는 어려운 분들을 방문할 때 의료생협의 방문진료 가정간호사나 요양보호사가 함께 한다면 그분들에게 생활과 건강에 대한 도움을 함께 드리게 되는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실제 민들레가 한밭레츠라는 지역통화로 활발한 거래를 하듯, 지역의 통화운동을 본당차원에서 벌이면 또한 얼마나 좋은 효과가 나타날까 상상해 본다. 본당 교우들이 협약을 맺은 본당 교우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물건값의 일부를 지역통화로 주거나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을 제공한 이웃에게 지역통화를 주고, 나도 누군가에게 품앗이를 제공해서 지역통화를 받으면서 모든 신자가 품앗이 공동체 형태로 관계를 맺고, 물건과 서비스가 불필요한 사람에게서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통화운동을 생각할 수 있다.

협동조합 설립요건도 다섯 명만 있으면 가능하게 법도 제정되었다. 그것은 생활에 밀접한 문제들을 시민들 스스로 힘을 모아 해결하기가 수월해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본당에서도 할 일이 많다. 교육, 노동, 건강과 노년기 삶 등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결정하는 요소들이 더 이상 그리스도인의 이상과는 상관없이 상업화되는 현상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당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환대의 집을 열었던 중세의 전통을 다시 되살려야 한다. 오늘날에는 인간적인 가치 실현을 위한 사회적 경제를 꿈꾸는 이들의 협동의 집이 본당 한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어야 할 것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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