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운동의 영성을 찾아서 – 청년 신앙인들의 거룩한 갈망

경동현 –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청년 신앙인들의 거룩한 갈망 가톨릭 청년 성서모임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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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 청년 성서 모임 40주년 기념

미사장면>

80년대의 끝자락에 대학생이 되면서 관계하기 시작한 가톨릭대학생연합회(이하 ‘가대연’) 활동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시절이 시절이었던지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신앙은 온통 군사 정부를 반대하는 시위 참가와 사회과학서적 탐독과 동일시되었고 가톨릭 사제가 되겠다던 어릴 적 꿈은 자연스레 멀어져갔다. 대학3학년 겨울쯤으로 기억된다. 가대연 지도 수녀님의 막무가내식 권유로 그 해 겨울 한마음수련원에서 열린 ‘청년성서모임 창세기연수’에 다녀왔다. 창세기 연수의 경험은 가대연 활동하면서 겪지 못한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한마디로 표현하면 연수 기간 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뜨거웠던 천국 체험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 특별했던 경험을 이어가지 못했던 건 바쁜 가대연 활동 탓도 있지만 청년성서모임이 불의한 사회 현실과는 별개로 혹은 침묵하면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추구하는건 아닐까하는 주위의 평가가 작용한 탓이 컸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인천에서는 청년성서모임 회원 몇몇이 갈려나와 ‘우리신앙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신앙과 운동을 통합하려는 성서공동체운동이 시도되기도 했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지만 꾸준하지 못했다. 어찌됐든 청년성서모임의 특별한 경험은 이후에도 교회 청년들에게 계속 호응을 받았고 지금까지 500차를 넘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가대연활동을 포함해 교회 청년활동 대부분이 열악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2009년 11월 우리신학연구소 주관으로 ‘성서공동체 운동’에 관한 워크숍이 열렸다. 이 워크숍이 열리게 된 배경이 몇 가지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점 하나를 꼽는다면 청년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청년성서모임’에서 무얼 배울까하는 점이었다. 교회내 대부분의 청년 활동이 침체된 가운데서도 청년성서모임이 여전히 활성화되고 있는 것을 보면 성서사도직을 통한 신앙운동이 교회 청년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침체된 청년 활동은 앞으로 성서공동체운동을 바탕삼아 운동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를 모아보자는 취지였다. 이 워크숍에 참석했던 서울교구의 청년 성서모임 봉사자 한 분을 다시 만나 청년 성서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에 정리한 내용은 허선호씨와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재구성하였음을 밝혀둔다.

허선호씨가 청년성서모임과 관계하게 된 건 등 떠밀려 참가했던 나와는 달리 거룩한 갈망에서 비롯됐다. “처음에는 본당 청년단체에서 활동하였습니다만, 신앙과는 거리가 먼 친교 위주의 청년활동에 실망하고, 성당 내 교우관계에서 갈등을 겪었어요. 그러다 신앙에 대한 궁금증이나 관심을 해소시켜줄 프로그램을 찾아 당시 다니던 대학교의 청년성서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2007년에 창세기 연수를 다녀왔고, 그 이후 현재까지 계속 그룹봉사와 연수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잘나간다는 청년 성서모임은 옛말?

과거 1980~90년대 가톨릭청년의 사회 참여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 비하면 지금의 청년운동은 교회와 사회 구분 없이 침체기이다. 그만큼 청년들의 삶이 팍팍해졌다는 반증이라 생각하는데 이 와중에도 청년성서모임은 꾸준히 확산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본당이나 다른 청년단체와 마찬가지로 청년성서모임도 현재 침체되고 있어요. 2000년대 초-중반 수도권 대학에서 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청년성서모임을 만들고, 호응을 얻으면서 참여 인원이 늘어났습니다만, 최근에는 서울대, 서강대 등 상위권 대학을 제외하면 신입생들의 모집이 쉽지 않아 많은 대학에서 급격히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대학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본당에서도 전체적인 청년활동의 침체로 인해 참여 인원이 정체되거나 약간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강남, 서초, 송파, 강서구 등에서 상대적으로 성서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으며 강북 지역 등에서는 약세인 편입니다. 다만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이나 명동성당의 청년성서모임에서는 본당을 떠난 30대~40대 청년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은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연도별 연수생 현황을 살펴보니 전 세계적 경제위기가 있었던 2008년을 정점으로 감소세가 뚜렷하다. 경제적 약자인 청년들에게 경제위기의 영향이 연수생 감소에도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물론 경제 위기 여파로 청년들의 삶의 조건이 더 팍팍해진 탓도 있습니다. 본당에서 그룹공부를 마친 청년들이 연수에 참가하는데 시간적, 경제적으로 부담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1년에 연수비도 올랐기 때문에 참가에 대한 부담이 늘기도 했고,다른 교구의 자체 연수 비중이 늘어난 점도 연수생 변화에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교회 안팎에서 여러 원인들을 찾을 수 있겠지만 연수생이 계속 줄고 있는 건 사실이고 각 본당과 대학에서도 그룹을 모집하거나 봉사자를 구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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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자유롭고 자기 주도적 신앙인이 되고픈 갈망

허선호씨에 따르면 20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30대 이상의 미혼 청년들이 청년성서모임을 찾는다고 한다. “활동을 오래한 본당의 30-40대 미혼 청년들은 본당에서 20대 청년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인간적인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대 차이도 있고, 20대 청년들이 자신들과 달리 단체활동에 전념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모습이 있어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 그동안의 육체적으로 고된 봉사와 본당의 행사 인력 동원에 지쳐있고, 본당 사목회의 장년, 노년 신자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신앙을 추구하면서도 미사만 다니며 단체활동은 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본당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난 청년들이 좀 더 자유롭게 주도적으로 공동체를 이루어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청년성서모임에서 만들어주고 있어요. 특히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이 그런 경우인데 작은형제회 수사 신부님들의 관심과 지원이 특별합니다. 취업 준비나 앞날에 대한 불안감, 비정규직으로 일하거나 말단 사원으로 지내면서 여유를 내기 힘든 20대에 비해, 30-40대는 경제적,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신앙에 대해 더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청년성서모임의 프로그램이 이들의 요구에 맞는다고 판단됩니다.”

청년성서모임은 누구에게 환영 받는가?

개인적으로 가대연 활동 시절 창세기 연수의 특별했던 경험을 이어가지 못했던 이유 중에 청년성서모임이 불의한 사회 현실과는 별개로 혹은 침묵하면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추구하는건 아닐까하는 평가에 대해 허선호씨의 의견을 물었다.

“성서모임의 영성이 보수적인 부분이 있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훨씬 더 보수적인 교구나 일선 본당에 비해서는 중도적이라고 생각돼요. 성서모임에서 그룹봉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재교육이 있는데 최근 주제를 살펴보면, 결코 신앙과 삶의 문제를 보수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신흥 종교, 환경 보존, 기부와 나눔, 신자유주의 비판, 생명 보호, 물신주의 등의 문제를 다루었어요. 하지만 일선 그룹 봉사자들이나 센터 봉사자들이 대부분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 한정되어 있고, 봉사자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환하여 기도와 묵상, 성경 공부를 통해 위안을 얻거나, 그룹 모임이나 연수 공동체 안에서의 위로와 친교 등에만 의존하여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별히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캠페인을 하거나 실천이 있지는 않습니다. 사실 그룹모집하고 그룹공부하고 연수하는 일만으로도 센터가 너무 바빠서 사회적 실천에 대해 신경을 쓸 여유가 없는 형편입니다. 또한 일선의 청년 봉사자들은 지도 사제들보다 보수적이라서 실천을 매우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거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듯하구요. 이런 분위기 때문에 사회적인 실천을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현실입니다.”

신앙을 개인 차원의 영역 안에 가두는 경향은 신자 계층이 중상층화되는 현상과 관련이 깊다. 연수 참여 인원이 줄고, 봉사자 찾기가 어려운 가운데 소위 명문대와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3구 지역에서 연수 참여가 상대적으로 활성화 되는 건 천주교 신자 구성의 중상층화 현상의 또 다른 결과물이다. 승자독식, 무한경쟁, 적자생존의 정글로 변한 사회에서 청년 신앙인들에게 절박한 관심은 실은 ‘복음적 삶’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 탓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생존’의 문제에서 조금은 여유가 있는 청년들이 연수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착하기까지 하단다. 천주교보다 먼저 이러한 계층분화 현상을 겪고 있는 개신교의 상황에 대해 김진호는 아래와 같이 분석한바 있는데 천주교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 되리라는 예상이다.

계층 분화가 사회 각 영역에서 제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착함’은 점점 중상위계층의 덕목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반대로 빈곤층에서 폭력과 범죄, 약물 의존도가 높은 ‘사회적 악함’이 나타나는 현상과 쌍을 이루게 된다.… 중략 … 문제는 이러한 교회의 계층분화와 신앙담론이 풍요를 신학화․ 신앙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결핍을 담론화하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보수주의, 착한 사람 이데올로기 신학은 실패를 대상화된 것으로만 다루며, 주체의 형식으로는 다루지 않는다.… 중략 … 따라서 최근 대형교회의 신앙의 미학화, 성찰적 성장주의는 또 다른 방식의 배제주의를 낳는 신앙적 장치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진호, “대형교회가 추구하는 인간적 삶, 그 삶의 미학은 불온하다,” 「우리신학」 8호)

통합적 영성을 위한 과제

허선호씨에 따르면 청년 신자들이 외부의 간섭 없이 자발적으로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신앙적이건 개인적이건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청년성서모임 외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80~90년대를 풍미했던 가톨릭청년운동이 학습과, 시위 현장을 통해 하느님 체험을 하고 자기 신앙을 형성해 갔다면, 청년성서모임에서는 그룹 모임과 연수, 특히 연수의 전례, 찬양 프로그램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고 나름의 신앙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또한 두 그룹 모두 든든한 선배와 봉사자 그룹이 준비되어 있다는 점, 감성적 결속을 강화해주는 확실한 장치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침체된 가대연 활동이나 여타의 교회 청년 활동들이 청년성서모임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이런 부분을 어떻게 회복해 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청년성서모임이 만들어내는 신앙 감각과 공동체에 대한 체험이 자기 자신의 성화(聖化)에만 머물거나 연수에 참가한 동기생, 봉사자들로만 제한되는 걸 넘어서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다. 연수모임은 꿈도 꾸지 못하는 삶의 조건에 처한, 팍팍한 일상을 사는 수많은 청년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연수에 참여하는 청년 신앙인들을 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기보다 자기와 유사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갖는 집단끼리만 강하게 결속하는 방식으로 내몰 가능성이 높다. 최근 봉사자 교육에서 사회 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주제들이 다뤄지는 점은 그런 면에서 고무적이다. 허선호씨의 제안대로 이러한 변화들이 좀 더 체화되기 위해서라면 다른 단체나 프로그램과의 연계도 적극 고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제 40년 역사를 넘어서 장년기에 접어든 청년성서모임이 그간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열악한 교회 청년 사목 안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등대와 같은 역할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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