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현주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달라이 라마의 말이 생각나네요.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아무도 고통을 원치 않는다. 이 점에서는 인종, 종교, 민족, 학식 따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똑같다.” 저는 이 말에 동의합니다. 아마 그렇지 않다고 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 말에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지 않고 고통에서 자유롭지도 않다는 역설적 진실이 담겨있지요. 누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말은 그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고, 누가 고통을 원치 않는다는 말은 그가 지금 고통을 받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질문하신 분은 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이런저런 견해들을 언급하고 나서, “과연 행복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는 건가?”를 묻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행복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여러 가지로 생각도 하고 말도 합니다만, 그것들 모두 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오는지에 대하여 아무도 반박 못할 만큼 완벽한 논문을 썼다 해도, 그래서 그가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렇긴 하지만, 무엇이 행복이며 사람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 분명할 필요는 물론 있겠지요. 그게 없으면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으로 될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제 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들은 거기 그냥 놔두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스스로 물어볼 차례가 된 것 같습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행복에 대한 백만 명의 견해보다 나 한 사람의 생각이 훨씬 중요한, 아니 어쩌면 유일한 열쇠가 되지 않겠습니까?

‘행복’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궁금한 게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을 원하는데 왜 행복한 사람들을 보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아무도 고통을 원치 않는데 어째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로 세상은 가득 차 있는가?”

이 궁금증에 대한 저 나름의 답은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면서 정작 ‘행복하게 사는 길’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비유컨대, 자동차를 운전하고 싶다고 생각은 날마다 하면서 정작 운전학원을 찾지 않는 사람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행복하게 사는 길을 알고 그 길을 가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는 겁니다.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행복하게 사는 길에 가서 닿아야 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지요. 그런데요, 사람이 무엇을 ‘안다’는 게 그래요. 머리로, 이론상으로, 무엇을 아는 것 가지고는 아직 멀었습니다. 몸으로, 체험으로, 알아야 비로소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예수의 가르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러니까 뭘 어쩌라는 건지를 제대로 알려면 아무리 머리(생각)를 굴려도 그것만으로는, 애들 말로, 턱도 없습니다. 스승이 하라는 대로 직접 살아보지 않고서는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것이, 그것이 이른바 ‘종교의 가르침’이거든요.

그런데 행복을 저마다 원한다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마음조차 없어 보이니, 알아보려는 건 관두고 마치 그 길을 잘 알고 있는 양 자기 맘대로 넘겨짚고들 있으니, 얼마나 어이없고 가련한 모습입니까? 사람이 이렇게 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이른바 ‘인류의 스승들’이 가까이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쩌자고 사람들은 무지몽매한 대중의 길을 좇아서 엉터리 행복을 찾아 쓸데없는 우왕좌왕 좌충우돌을 저렇게 되풀이하는 걸까요? 저마다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말은 하는데, 마치 “비참해지기로 작심한 사람들”(앤소니 드 멜로 신부)처럼 행복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곳을 헤매며 갈수록 힘들고 괴로운 인생살이를 되풀이하는 까닭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생각할수록 딱하고 안타까운 아이러니올시다.

그러기에 행복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느냐는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을 말씀드릴 수야 있겠지만, 여기서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 또한 결국은 행복에 대한 이런저런 견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따라서 그걸 말하는 게 질문하신 분이나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무엇을 알고 싶을 때 그에 대한 답을 가진 사람한테 물어보고 배우는 것보다 확실한 해결책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저처럼 어리석은 자의 견해 따위 알아볼 것 없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 길을 몸소 걷고 그래서 남을 가르칠 자격이 충분한 스승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가서 그분에게 행복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 거냐고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곧 답을 얻을 것이고 두 번 다시 같은 질문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질문은 답을 아는 사람한테 해야지, 아무한테나 하는 게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엉터리 답을 마구 팔아먹는 가짜 선생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한 말씀만 더 드리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그냥 참고하십시오. 저는 여전히 아프고 슬프고 괴로운 인생길을 걷고 있지만,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도 않아요. 행복으로 가는 길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것이 그 길이고, 모든 게 이미 넉넉해서 더 무슨 바랄 것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직, 한 때 저와 한 시공간에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시다가 지금은 어떤 이름에도 갇히지 않는 하늘같은 참 당신으로 귀의하시어 마침내 제 가슴 속에도 계시게 된 저의 스승님 덕분입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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