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데 요가 – 하느님

장용창

질문: 지난번에 고통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마지막에 하느님을 언급하시는 걸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선생님은 천주교 신자인가요? 아니면 선생님이 언급한 하느님은 천주교 신자인 독자들을 위한 립서비스인가요? 아니면 요가 사상에도 하느님 혹은 신에 대한 개념이 있나요? 있다면 요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답>

이번에도 질문이 참 좋습니다. 요가에도 하느님이 있느냐? 있습니다. 동사무소 요가에도 하느님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전통적인 요가에서 하느님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사실, 불교를 제외한 인도의 거의 모든 사상체계에서 하느님(Self, Spirit, Soul)이라는 개념이 수용되고 있습니다(Eliade: 1969, 15-18).

요가의 가장 중요한 교과서로 흔히 거론되는 것이 바가바드 기타와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입니다. 그러니 이 두 책에 뭐라고 나와 있는지 간단히 살펴 볼까요? 바가바드 기타(Sivananda, 2000)의 제2장55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오직 하느님(Atman, आत्मन्)으로부터 만족을 얻는 자만이 생각을 뛰어넘은 사람이다.>

요가 수트라(Satyananda, 1976)의 제1장16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라보는 자, 하느님(purusa, पुरुष)이 나타날 때, 우리는 물질세계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린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

이렇게 적어 놓으니, 기독교 신학하고도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요? 그러면 요가가 종교냐?라고 물으시면, 저는 이번에도 역시 답을 못하겠습니다. 요가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종교가 뭔지는 더더욱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도 철학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세 가지 속성을 잠깐 말씀 드리면서 글을 끝맺는 게 좋겠네요. 인도의 베다 철학에서는 하느님의 속성을 Sat, Chit, Ananda라고 합니다. Sat는 진실, Chit는 의식(意識), Ananda는 기쁨을 뜻합니다. 연결시켜 말하면 “진실을 보는 기쁨”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요가철학에서는 하느님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무런 속성도 없고, 단지 하느님은 “있으며(it is),” “안다(it knows)”고 합니다 (Eliada, 1969: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Satchitananda(삿치타난다)는 신의 속성으로 자주 설명되기 때문에 이것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는 요가 수행자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복잡한 질문들이 많습니다. 위 두 책에서 언급된 푸루사(Purusa)와 아트만(Atman)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불교의 무아(無我, anatman) 사상과는 어떻게 다른 것이며, 그러면서 또 불교에서 모든 사람에게 있다고 하는 불성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기독교 신학의 하느님과는 어떻게 같거나 다른 것인지……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이것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요가의 목적이 “자유”인데, 그 자유를 얻는 순간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고 합니다.

<참고문헌>

Eliade, Mircea. (1969). Yoga: Immortality and Freedom. second edi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Satyananda, Saraswati. (1976). Four Chapters on Freedom: Commentary on Yoga Sutras of Patanjali. Bihar School of Yoga.

Sivananda, Sri Swami. (2000). Bhagavad Gita. A Divine Life Society Publication. World Wide Web Edition.

<한 줄 명상>

전능하신 하느님! 어디 계시나이까?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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