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Cool – 미사는 시위 수단이 될 수 있는가? – 경동현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교회쇄신, 평신도 운동의 관점에서 바라 본 거리 미사

나는 거리 미사가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교회의 작은 노력이라 생각한다. 또한 미사를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위로를 얻고, 갈등상태의 현안들이 하루 빨리 해결되기를 소망한다. 이런 내 생각과 달리 거리 미사에 반대하는 의견의 상당수는 거리 미사에 참석한 적이 없는 분들이 자신의 신앙관과 다르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혹은 ‘그건 신앙도 복음도 아니야!’라며 무시하는 의견이라 생각돼 동의하기 어렵다. 미사의 품위가 떨어진다거나 미사를 시위 수단으로 삼아서야 되겠냐는 의견들이 그렇다. 실제로 거리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한테서는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들이다. 그렇다고 반대하시는 분들의 신앙에 대해 뭐라 할 생각은 없다. 예수께서 겨자씨의 비유로 하느님나라를 설명하셨던 것처럼 그 신앙이 어떻게 열매 맺게 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단지 ‘NGO’만이 아니다

이런 저런 일에 매여 있다 보니 나 스스로 거리 미사에 열심히 참여하는 편은 못되지만 열혈 참석자들의 이야기 중에 귀 기울여 들을만한 이야기가 있다. 우선 거리 미사에 참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는 한 가지. 신앙은 개인 구원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과 사회의 구원까지도 자연스레 확장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간혹 어떤 상황에서는 이런 활동이 신앙에 바탕을 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 분들을 만난다. 개인 구원만을 강조하는 기복적 신앙도 문제지만 개인의 성화와 상관없이 사회 구원만을 너무 강조할 경우에 생겨나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구체적으로 특정 장면을 사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사회 참여적인 교회의 활동들이 “예수를 증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교회가 아니라 동정심 많은 비정부기구(NGO)에 불과하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적은 이를 두고 한 말이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이 역시 거리 미사를 반대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불완전한 존재들의 활동에서 생겨나는 시행착오 정도로 여기면 될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시행착오를 줄여가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전제될 일이지만 말이다.

성령께서 머무는 곳이 그리스도인이나 성당 건물로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면 사실 미사 장소가 거리냐 아니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대한문, 제주 강정, 평택, 울산, 인천 등 전국에서 행해지는 거리 미사에 참여하는 사제나 활동가들이 사실은 본당 신자들보다 한국사회의 진보진영에게서 더 환영 받는 게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상을 보수화된 신자의 탓으로 돌리는 순간 한국에서의 교회쇄신 노력이나 평신도운동은 계몽운동으로 진행될게 분명하다. 이른바 현실참여에 민감한 진보적 신앙인 그룹을 보는 많은 신자들의 시선에는 ‘그건 신앙이 아니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고 그 반대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신앙을 뜯어 고쳐야 할 무엇쯤으로 여기는 자리에 대화는 들어설 틈이 없다.

교회의 권위에 도전한 무례한 자들

요즈음 우리신학연구소는 2002년 217일 장기 파업 이후 11년째 해고자 신분으로 살고 있는 가톨릭중앙의료원 5명의 해고 노동자 복직을 위한 가톨릭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노동은 거룩한 것이니 자본의 이익보다는 노동자의 처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5월 장기파업 10년을 돌아보는 심포지엄 이후로 해고자 복직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면서 이들 해고자에 대한 교회의 시선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교회의 권위에 도전한 무례한 자들’이라는 낙인이었다. 이런 이유로 파업 기간은 물론이고,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대화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11년 전 같은 이유로 파업에 참여했던 다른 병원의 노동자들이 해고 후 1년 만에 다시 복직되었던 점에 비춰 보면 납득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다른 병원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성모병원 해고 노동자들과 달리 무례하지 않아서 복직된 것일까? 교회 밖 노사갈등의 현장에 대해서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근거로 약자인 노동자 편을 들면서, 교회 사업장에서 불거진 노사 문제에 대해서는 ‘무례함’의 낙인으로 감정의 잣대를 들이대는 교회를 사람들은 뭐라 말할까?

지난 5월 노동절과 노동자 주일을 즈음하여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를 비롯하여 각 교구마다 정의평화위원회가 주관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가 전국 곳곳에서 봉헌되었다. 교회가 노동주일을 기념하는 거리 미사를 통해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는 11년간 해고자로 살아온 성모병원 노동자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들 역시 쌍용자동차와 재능교육, 콜트콜텍의 해고 노동자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의의 잣대는 교회 안에서도 동일하게

사회적 이슈만으로도 거리 미사 감당하는 일이 힘에 겹다는 걸 모르는바 아니다. 제주 강정의 거리 미사 현장에서 매일 들려오는 소식은 듣는 것조차 쉽지 않다. 미사 참석 신자보다 몇 십 배가 넘는 경찰들이 미사 중인 사제를 매일 드러내는 일이 일상이 됐다고 한다. 다른 지역의 미사 현장도 정도의 차이일 뿐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이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먼저 십자가를 진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의의 잣대를 사회를 향해서만 휘두르는 교회를 보며 신자는 물론이요 일반인들도 ‘그건 신앙도 복음도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사회를 향해 시장 만능주의를 경계하라 말하고, 노동이 자본보다 우위에 있다는 원칙을 설파하는 일이 교회 안에서도 다르지 않게 벌어지는 일이라면 오히려 단호한 태도를 보일 일이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이웃과 타인에게 관대한 교회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복음을, 기쁨을 체험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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