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속으로 들어간 본당 – 고척동 본당의 불편한 즐거움

경동현 –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대박 ‘생협 운동’

국내 소비자생협연합회의 조합원 수와 공급액은 2012년을 기준으로 약 67만 명이고, 조합원이 이용하는 물품거래비용은 7천억 원을 넘어섰다. 놀라운 건 불황과 경기침체 속에서도 조합원 수의 연평균 증가율이 20%를 넘고, 공급액 증가율도 연평균 22.5%에 달한다는 사실. 생협의 거래 물품들이 유기농,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점, 이러한 활동은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교회의 가르침에도 부응한다는 점에서 고맙고 반갑다.

협동조합 방식은 아니지만 가톨릭교회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통해 1994년부터 생명의 먹거리 생산과 나눔을 중심으로 땅과 밥상과 사람과 세상과 자연생태계를 살리는 도농상생 운동을 꾸준하게 해오고 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전국에 농촌생활공동체 65개소, 도시생활공동체 239개소, 본당매장 237개소, 직매장 22개소, 개인회원 약 2만 명이 이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서울교구 고척동 본당은 지난 2010년 도시생활공동체를 본당에 꾸리고 본당직매장을 개설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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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척동 본당신자 전체가 참여하는 운동을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매주 본당 신자들은 주일미사 때마다 ‘나의 불편함을 즐겁게 봉헌한다’는 취지로 <불편한 즐거움> 실천 사항을 봉헌하고 있다. 신자들이 봉헌한 실천카드 1장이 모이면 대성전 앞에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 모자이크 벽화에 작은 스티커 한 장이 붙는 방식으로 참여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1년 계획으로 모자이크 그림을 채울 요량이었는데, 신자들 호응이 좋아 7월쯤이면 다 차게 될 것 같다고 한다.

하영옥 카타리나 회장에게 본당 신자들의 반응과 변화를 물었다.

<대성전 입구 오른쪽 벽에 설치된 “불편한 즐거움” 운동 현황표. 2013. 4>

“가랑비에 옷 젖는 것과 비슷한 거 같아요. 제 경우엔 집에서 성당 오는 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신호등이 하나 있는데 이 운동을 하고는 언제부턴가 지키려고 노력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어요. 또 이 운동의 일환으로 개인컵을 가지고 다니는 노력들을 하는데 지금은 많은 신자분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버릴 때도 한 번 더 사용하게 되고, 비닐봉지 받아오지 않고 시장바구니 사용을 습관화 하는 게 신자들 몸에 배고 있어요. 실천 봉헌 카드에 항목들이 쓰여 있다 보니 아무래도 신경 쓰는 편이고, 한번 하고 말면 잊게 되는데 매주 하니 각인이 되는 게 이 운동의 장점인 듯 합니다.”

또한 한 달에 한 번 한 시간 동안 불끄기를 통해 에너지를 아끼고, 가족끼리 기도와 담소를 나누는 운동도 진행 중인데, 교구 우리농본부와 환경사목위원회가 벌이는 ‘즐거운 불편’운동과는 어떤 차이가 있냐는 물음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불편하지만 즐겁게 하자는 것이 이 운동들의 지향입니다. 형식은 불끄기나 개인 컵 가지고 다니기 등의 환경 캠페인이지만 내용은 가족 구성원들이 친교를 좀 더 쌓고, 본당 신자 모두가 환경지킴이라는 공감대를 갖는 등 서로서로 깊어지는 관계라 할 수 있어요. 그냥 하기보다는 그런 지향을 가지고 하고, 불편함 보다는 즐거움에 방점을 두고 즐겁게 하자는 취지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도시생활공동체 구성과 직매장 개설

고척동 본당의 도시생활공동체 구성과 직매장 개설은 2010년 9월 남학현 주임신부의 부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임신부 인사이동 시기에 여성 성인신자로 구성된 복사단이 활동을 중단하게 됐는데, 이들에게 새로 부임한 남 신부가 우리농 활동을 제안하면서 모임이 꾸려졌다. 복사단 멤버 중 일부와 여성구역장, 지역장들이 바뀌면서 본당 활동에 적극 참여했던 봉사자를 중심이었다. 2010년 9월에 부임하고 같은 해 11월에 매장 축복식까지 진척이 빨랐던 이유는 기존 단체에서 활동했던 경험자들의 경험 덕분이었다. 진척이 빨랐다고 교육을 소홀히 한 건 아니다. 교구에서 실시하는 활동가 대상교육도 단계별로 수료하고, 매월 활동가 대상으로 진행하는 월례교육도 열심히 참여했다. 전 신자 대상의 교육도 진행했는데 2010년 이후 매년 대림특강은 먹거리와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주일학교 교사와 학부모 차원의 교육도 진행된다.

한편 본당 직매장은 교육관 1층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미사 시간을 중심으로 매장 담당 봉사자를 정해 매장을 운영한다. 이런 활동으로 지난해는 1억6천만 원 매출에 약 2천200만원의 이익금을 남겼다. 매장 이익금은 4:3:3의 비율로 나눈다. 40%는 공간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조로 본당에 내고, 30%는 농촌 살리기 기금으로 적립하고, 나머지 30%는 우리농 활동가 교육을 위한 기금으로 적립한다. 활동가 교육기금은 도시생활공동체 멤버들의 교육뿐 아니라 본당 신자 누구라도 교구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겠다고 하면 이 기금에서 전액 지원한다.

도농 상생을 꿈꾸는 자매결연과 소입식 지원

본당 직매장 이익금의 30%를 농촌 살리기 기금으로 적립하면서 자매결연 이야기가 나왔다. “농촌기금을 마련하고 도와줄 곳을 찾다보니 무작정 지원하기 보다는 자매결연을 맺어 농민들과 관계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어요. 마침 주임 신부님이 안동 교구를 잘 알고 계셔서 가톨릭농민회 분회(농촌생활공동체) 한 곳을 추천하셨고, 지난 해 7월 농민주일에 안동 솔티분회에서 15분이 저희 본당으로 오셔서 자매결연식을 가졌습니다.” 고척동본당과 솔티분회의 자매결연은 1촌1사운동 같은 이벤트 중심의 농촌지원 프로그램이 아니다. 농산물의 교류뿐 아니라 주요 농사절기가 되면 사람도 교류하는데 지난 가을에는 본당 신자들이 안동으로 가서 솔티분회원들과 함께 추수감사미사를 드렸고, 올해 5월에는 본당 초등부 아이들과 부모들을 중심으로 손 모내기 행사에도 다녀왔다. 가을 수확철에는 추수일도 거들 예정이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삭막한 도시 정서에서 생태적 감수성을 살려내고 창조질서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신앙인이 할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다. 도시와 농촌의 관계가 누굴 떠받들거나 대접하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지체임을 깨닫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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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이익금 가운데 농촌살리기 기금은 주로 암송아지 입식 지원금에 사용한다. 암송아지 입식자금 지원운동은 유기 순환적 농업 체계를 도시와 농촌이 함께 만드는 실험적 사업이다.

이 운동의 목적은 크게 ① 공장형 축산 체계에서 벗어나기, ② 사료를 스스로 조달함으로써 유전자 조작 사료에서 벗어나기, ③ 기업형 축산물 유통에서 벗어나기 등이다.

<2012년 7월 15일,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솔티분회와 자매결연식>

2012년 2월에 1차로 농촌 살리기 기금으로 암송아지 한 마리 분에 해당하는 350만 원이 지원됐고, 지난 3월에는 2차로 송아지 한 마리를 보냈다. 입식이 되면 새끼 암송아지가 자라 두 번에 걸쳐 송아지를 낳을 때까지 농가에서 기른다. 그 후 두 마리의 송아지는 농가 소유로 기르고, 어미소는 도축해 고척동 성당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보통 두 마리 낳는 시기가 2년 정도 걸린다고 하니 내년쯤 도축이 가능하지 않겠냐고 한다.

공동체를 꾸린지 채 3년이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하카타리나 회장에게 고척동본당의 우리농운동의 전망에 대해 물었다.

“사실 저희 본당의 우리농운동은 주임신부님이 주도하신 경우에요. 그래서 나중에 신부님이 다른 곳으로 가시면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걱정하지는 않고 있어요. 교구 모임에 가보면 다른 본당의 경우 사제 인사이동 후에 어려움을 겪는 본당들을 보긴 했는데 지원은 않더라도 문을 닫게만 하지 않는다면 활동가들이 중심이 돼서 열심히 하는 본당이 있거든요. 현재의 구조에서 대안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운동이 꼭 필요하다는 걸 절감하는 활동가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계속 이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오늘날 밥상의 위기, 농업의 위기는 우리 모두의 뿌리인 농업의 생명적 가치와 공동체를 잃어버린 데서 비롯됐다. 이러한 뿌리를 치유하지 않고 부분적인 땜질처방으로 세상은 변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유기농산물 시장규모가 커지면서 생명농업의 친환경농산물이 더 이상 ‘친환경’이 아니라 ‘반환경’, ‘반생명’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사례들을 곳곳에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고척동본당의 불편한 즐거움 운동은 먹거리를 매개로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근원적 변화로 안내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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