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마실 – 자녀 되기, 부모 되기를 통한 세대 간의 신앙소통

박총 도심형 재속재가수도원 ‘신비와 저항’ 원장

자녀 되기, 부모 되기를 통한 세대 간의 신앙소통

– 지금 여기로 걸어나온 십계 4계명 ‘부모에게 효도하라’ 편

1. 부모 되기의 기쁨: 부모 되기를 통해 만난 하느님

40대 초반인 나는 아이 넷을 낳고 키우면서 하느님을 다양한 모습으로 만났다.

그 첫번째가 자궁 가진 하느님이다. 아내가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 미국 유니온 신학교 구약성서신학 교수였던 여성신학자)의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의 ‘자궁 가진 하느님’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그녀는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는 구절에 대해 ‘자비란 자궁과 어원이 같으며 이 구절의 속뜻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자궁에 품고 보듬어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듯, 내가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고 자비롭게 여긴다면 그를 내 자궁에 품어 다시 낳는 것’이라 했다. 가히 남자라 해도 억압받는 생명과 서로 품고 먹인다면 자기 새끼만 품고 먹이는 자궁보다 더 하느님을 닮은 자궁일 수 있겠다.

산파 하느님. 아내는 아기를 집에서 낳았는데 당시 아내를 돕던 산파를 보면서 ‘하느님을 노련한 산파로 비유한 구절’이 떠올랐다. 시편 71,6의 히브리 원문에는 ‘취하여 내다’라는 동사가 나오는데 당시 산파들이 아기를 받을 때 썼던 동사다. 아내가 해산 진통에 몸부림칠 때마다 그 부분을 기억하고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움을 청했다.

젖가슴 달린 하느님 ‘엘 샤다이(El-Shaddai)’. 엘 샤다이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여성신학자들이 주로 취하는 해석은 젖가슴 달린 하느님이다. 주로 이사야 60,16을 근거로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도 <파이다고고스(Paidagogs)>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찾는 어린아이들에게 성부의 사랑스런 가슴은 젖을 공급한다’는 비유를 썼다. 아이 출산 후 처음에는 젖이 안 나오지만 계속 빨리다 보면 가능해진다. 흔히 그 과정이 힘들어 쉽게 포기한다. 아내가 그런 어려움을 겪을 때 나는 만물을 먹이시는 하느님께서 아내의 젖을 통해 아이들을 먹이시길 기도했다.

갓난아기 하느님. 아기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고, 능력도 없는 의존적인 존재다. 그러니 구세주께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아기로 왔다는 것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그 느낌을 내 책 <욕쟁이 예수>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를 신령한 젖과 땅의 소산으로 친히 먹이시는 엘 샤다이(젖가슴을 지닌 하느님)의 하느님이 한 여인의 젖을 빨아 생존과 성장을 도모한 이 역설, 우리의 모든 언행심사를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엘로이(하느님이 감찰하시다)의 하느님이 요람에 눕혀져 그 몸짓 하나 하나가 육신의 부모에게 감찰되는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모든 허물을 씻기신 여호와 카데쉬(여호와가 거룩하게 하시다)의 하느님이 사람의 손에 의해 몸이 씻기고 똥오줌이 닦이는 역설, 인간의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시는 여호와 이레(여호와가 준비하신다)의 하느님이 인간 부모의 손에 모든 필요를 공급받게 된 역설, 인간에게 평화를 주시는 여호와 샬롬(하느님은 평강이다)의 하느님이 사람의 자장가를 들으며 평화롭게 잠든 이 역설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태아 하느님. 온 세상의 창조주이신 분이 친히 오장육부를 지어준(시편 139,13) 인간에 의해 다시 오장육부를 지음 받게 된다. 이렇게 자라는 과정을 지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Chambers)는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성육신의 경이는 주님이 평상의 유년 시절을 보낸 데 있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성육신의 최고봉은 주님이 태아로 양수 속에서 헤엄치신 데 있다.

이름 짓기를 통해 만난 하느님. 부모가 되는 특권 중 하나는 한 존재가 평생을 불릴 이름을 짓는 데 있다. 나는 그 두렵고 떨리는 이름 짓기를 네 번씩 하면서 하느님을 만났다. 첫째 아이 해민(풀 解, 백성 民)이의 이름에는 죄와 그 구조적, 개인적 소산인 억압, 착취, 가난, 차별, 폭력 등으로 고통 받는 백성을 해방하는 꿈을 담았다. 둘째 화니(꽃 花, 진흙 泥)의 이름에는 연꽃처럼 진흙 같은 세상에 깊이 발 담그고 살되 거기에 물들지 않은 순결함과 향기를 발하는 삶을 구했다. 셋째 해언(풀 解, 몸 굽힐 躽, 즉 화‘해’의 ‘언’덕)이의 이름에는 다툼과 미움으로 갈라진 사람들이 몸을 구부리고 언덕이 된 이 아이를 밟고 올라가 거기서 얼싸 안고 평화와 화해의 춤을 추는 세상을 그렸다. 넷째 해든(순우리말, 햇볕 든)이의 이름에는 주님의 얼굴빛이 깃든 ‘해든살이’와 ‘해든누리’를 일궈가자는 소망을 노래했다. 자녀의 이름에 우리 가정이 지향하는 삶의 모습을 대충은 다 담아낸 것 같다.

2. 부모 되기의 어려움: 아이를 노엽게 하지 마라.

이렇게 보면 내가 엄청나게 아이를 잘 키웠을 것 같지만, ‘아이를 노엽게 하지 마라’는 이 말이 결혼 후 14년간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걸려 넘어지게 했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지만, 부모도 자녀를 사랑해야 한다. 지금 와서 고백하건데 부모의 삶은 아이를 자극하고 열 받게 하는 삶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 내재하는 폭력성을 얼마나 많이 발견하는지 모른다. 나의 육체와 인격의 한계 속에 아이를 그대로 존재하도록 격려하기보다 획일성을 강요한다. 아이를 억압하면 아이는 그때부터 좌절을 경험한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노엽게 한다. 큰 애가 동생에게 짜증내는 것을 보고 야단치고 못하게 한 일이 있다.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을 억압했는데, 이게 얼마나 폭력적이고 나쁜 것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사실 나 자신도 부모로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억압받았다. 부모의 습성이라는 죄과가 그 자식에게 그대로 간다는 것이 참 무섭다. 아이들을 왜 노엽게 하는가?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한국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색깔이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친구에 대해 설명하면서 묻지도 않은 친구의 반 등수부터 밝혀 우열을 가르고, 부모가 만들어 준 간식보다 사 먹는 음식을 선호하며, 브랜드 신발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 사회가 얼마나 서구 중심적인지, 외식을 좋아하는지, 브랜드 위주의 소비문화 사회인지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채워줄 수 없기에 결핍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결핍을 모두 채워줄 순 없지만 그로 말미암은 아이들의 불평과 불만을 들어주고, 사회의 소비문화에 편승해서 따라가지 않게 하면서도 일정 정도 아이들을 충족시켜주고자 고민한다. 결핍과 순응 사이의 긴장을 창조적으로 살아내도록 돕고 싶다. 그러기 위해 물질적인 즐거움 외에 다른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최대한 삶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오기 전, 가진 재산을 다 털어 6개월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세계여행을 했다. 아이들에게 평생 갈 기억을 만들어 준 것이다. 제대로 못 먹고 힘들게 다닌 여행이었지만, 아이가 나중에 말하길 우리가 가난하니까 세계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거 같다고 했다. 부자였다면 자기 삶을 내려놓고 몇 달 동안 그렇게 다녀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아이의 말이 하느님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3. 부모 되기 이후에 발견한 자녀 되기

‘고아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논문을 쓴 스위스의 렌취니크 박사는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정치가들의 전기를 분석했는데, 그들 상당수가 고아였다. 고아는 버림받았다고 의식하고 주위 사람들이 고아라고 무시할 때마다, 성취를 통해 자신을 무시한 사람과 자기를 버린 부모를 향해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강한 권력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얼마나 일평생을 좌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사춘기 시절 나는 무능하고 시도 때도 없이 버럭하는 아버지에게 짜증이 나서 심하게 반항하다 뺨도 맞았다. 그런데 우울증 치료를 하면서 내 안의 ‘아버지’라는 결핍 요소를 발견했다. 그동안 나는 아버지를 한 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부끄럽게 여겼다. 회사에 다니지 않고 허름한 부동산에서 동네 아저씨들과 한량처럼 지내는 것이 너무나 수치스럽고 싫었다. 그런데 그 감정을 재빨리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기독교 윤리로 덮어버린 것이다. 그런 식의 태도가 모든 사물과 인간관계에서 반복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혼 이후 아버지를 재발견했다. 부모님 세대는 대하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살았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세대 차가 제일 심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런 불안함 속에서 자녀를 키우기 위한 부담감이나 스트레스를 이해하면서 부모를 보니, 동의는 안 돼도 이해는 되었다.

‘자식들은 부모가 세상을 살아가며 모든 것을 바르게 행하지는 않더라도, 심지어는 부모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로 그때에 부모를 공경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니, 십계명은 자유의 계명이다> (2012, 노트커 볼프, 마티아스 드로빈스키 지음, 윤선아 역, 분도)

핸리 나웬은 이렇게 말했다. ‘용서는 지속적으로 기꺼이 다른 이가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 즉 내 모든 필요를 채우지 못함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 역시 다른 이의 필요를 다 채워줄 수 없음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 사람들이 하느님일 수 없음을 용서할 때 당신은 그들이 하느님의 반영이라는 사실을 기쁘게 축하할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것 한 가지> (2013, 헨리 나우웬, 웬디 윌슨 그리어 저, 윤종석 역, 복있는사람)

자녀의 영혼이 부모에게 상처를 받거나 억압을 당하고 비현실적인 기대 때문에 억눌리고, 신체적 학대를 당하고 성적인 폭행을 당했다면 용서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경우 부모가 먼저 용서를 구할 수 없다. 자식들 스스로 용서를 원해야 한다. 왜냐하면, 용서의 여지조차 없다면 희생자는 이중으로 고통 받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건이 여전히 자신을 지배하도록 둔다면 부모가 계속해서 자신을 학대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부모 공경의 극단적인 예로, 귀농하고 생태운동하는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를 모신 일화는 감동적이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전희식 씨 가슴에 가장 깊게 자리 잡은 것은 ‘존엄’이다. 늙고 병든 노인을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자본주의 노인 돌봄 문제를 본 것이다. 우리 사회가 노인에게 저지르는 무례와 무시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다. 자연치유는 어머니와 더불어 어머니를 모신 아들에게도 가닿았다. 일하러 나갔다 온 사이 혼자 뒷간에 못 가시고 방에 누신 어머니 똥이 꽃으로 보이는 놀라운 치유의 힘. 온 방에 똥칠을 해놓고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어머니의 눈초리에서 아들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읽어낸 전희식은 눈물을 흘리며 ‘똥꽃’ <똥꽃 –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2008, 전희식, 김정임 저, 그물코)을 지었다.

똥꽃

감자 놓던 뒷밭 언덕에

연분홍 진달래 피었더니

방안에는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어머니 옮겨 다니신 걸음마다

검노란 똥자국들.

어머니 신산했던 세월이

방바닥 여기저기

이불 두 채에

고스란히 담겼네.

어릴 적 내 봄날은

보리밭 밀밭에서

구릿한 수황냄새로 풍겨났지.

어머니 창창하시던 그 시절 그때처럼

고색창연한 봄날이 방안에 가득 찼네.

진달래꽃

몇 잎 따다

깔아 놓아야지.

4. 다시 십계명을 받들다

독일작가 토마스 만은 십계명을 가장 매력적으로 묘사한 사람이다. 그의 소설 <율법>에는 십계명을 ‘한없이 간결한 율법’, ‘설득력 있고 구속력 있는 율법’이라고 했고, 모세에 대해서는 ‘제 출생이 불분명했던 모세는 질서 잡힌 것과 확고부동한 것, 계명과 금령에 열정을 바쳤다. 젊은 날 모세는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 살인을 저질렀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순간에는 희열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끔찍하게 괴롭다는 것과, 따라서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보다 잘 알았다’고 했다. 모세는 사람을 죽였다. 영원한 율법을 저버리는 체험을 몸소 겪은 것이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하느님의 율법을 선포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율법파괴자를 율법선포자로 세운 것이다.

오늘날 자녀든 부모든 4계명을 잘 지킨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를 멸시한 이들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의 선포자가 될 것이고, 자녀를 노엽게 한 이들이 자녀를 기쁘게 하는 이들로 세워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박총 : 학부와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구로동에서 한부모 가정 친구들과 교회를 개척했다. 캐나다에서 신학공부와 교회사역을 오래 했고, 한국에 돌아와 ‘복음과상황’ 편집장으로 일하다 우울증으로 접고, 현재 주부로 지내면서 재속수도원 ‘신비와 저항’을 꾸려가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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