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봄은 오는가?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한반도 정세

백장현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화로 지난 10년간 남북관계 악화 속에서 군사적 긴장 고조와 전쟁의 위기를 넘나들었던 한반도에 훈풍이 불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선수단과 응원단, 공연단을 보내고 김영남, 김여정 등의 고위급 대표단까지 파견함으로써 남북 간 관계 개선의 가능성이 열렸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로 남한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하고 평양 초청 뜻을 전달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혈육이라는 점에서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고위급 대표단으로 국가수반인 김영남과 친동생인 김여정을 보낸 것은 적극적인 대화의 의지 표현으로 평가된다. 남쪽이 화답해 이루어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당국자와 북한 대표단의 대화는 향후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신뢰를 쌓을 좋은 기회였다.

과연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 부는 봄바람은 지난 정부 10년간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이고 화창한 봄을 맞게 할 수 있을까? 남·북·미·중 관련 당사국은 이번 기회에 북핵 문제를 풀고 평화를 정착하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까?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여건’

김정은 위원장이 특사를 파견해 제안한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뿐 아니라 북핵 문제를 풀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킹핀(king pin)에 해당한다.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속도를 폭발적으로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상회담 정례화로 이어진다면 6자회담 재개를 통한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등과 북핵 폐기를 맞바꾸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대장정을 끌고 갈 핵심동력이다. 따라서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를 경우 향후 한반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게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고위급 대표와 면담에서 북측 대표단에 “여건을 만들어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자”고 화답하였다. 여기서 ‘여건’은 무엇을 의미할까? 또 그 여건을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라면 다른 누구의 협조가 필요할까?

문 대통령이 언급한 ‘여건’은 미국의 협조와 국민적 공감대 조성으로 여겨진다. 먼저 미국과 공조 문제를 검토해보자. 문 대통령은 북한의 대표단에게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니 북쪽이 미국과의 대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동맹국 미국은 과연 흔쾌히 협조할까? 이번에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보여준 일련의 행보는 미국의 협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펜스 부통령은 올림픽 축하가 아닌 대북압박과 북한의 올림픽 납치를 막기 위해 방한한다면서, 북한에 억류됐다 숨진 오토 웜비어의 부친과 함께 천안함 기념관을 방문해 탈북자들과 북한의 인권상황을 규탄했다. 또한 개막식 리셉션에서는 북한 대표단과 인사조차 하지 않고 5분 만에 자리를 뜨는 등 올림픽을 축하하러 온 인사의 행동으로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외교적 결례를 저질렀다. 귀국길에는 국내외의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대북압박을 지속하되 북한이 대화를 원하면 하겠다”라고 발언했지만, 여전히 대화보다는 압박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러한 펜스 부통령의 행보는 네오콘,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 등 한반도 평화체제 조성을 달가워하지 않는 세력들의 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서 잠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방해하는 세력들을 살펴보자.

첫째,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자양분 삼아 호황을 누리는 군산복합체가 평화체제 조성을 방해한다. 북한 위협 억지를 명분으로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이 진행되면서 전투기 등을 생산하는 대표적 군수산업체인 보잉사의 주가가 2017년 한 해 60% 올랐으며, 레이시온, 록히드 마틴, 노스럽그러먼 등도 30% 이상 상승했다. 또한 이들의 매출액도 크게 증가했다. 협력업체들을 포함한 미국 내 군수산업체들은 50개 주 전역에 걸쳐 포진하면서 고용·경기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며, 커넥션을 통해 행정부와 의회의 의사결정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기 발생했던 ‘금창리 사건’은 긴밀해지는 남북한 간 협력을 가로막기 위해 미 정보기관이 북한의 핵 개발 의혹 정보를 언론에 흘렸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나중에 사찰을 통해 확인한 결과 허위정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그냥 흐지부지되었다.

둘째, 동북아에서 급격한 현상변화를 꺼리는 미국 정부의 태도가 한반도 평화체제 조성을 어렵게 한다. 한미 군사동맹은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군사공격에 대한 방어와 억지를 위해 체결되었다. 따라서 평화협정 체결, 북미 간 국교 수립 등이 이루어져 공동의 적이 사라지면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평화체제 구축 이후 주한미군의 주둔과 전진배치가 위협받는다고 우려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 이래 미국은 주한미군의 감축 재배치와 함께 역할 확대를 꾀했다. 주한미군은 기존 임무의 상당 부분을 한국군에게 이양하고, 전략적 유연성 아래 북한의 남침에 대한 붙박이 군대가 아닌 한반도를 들락거리며 대테러전 등에 투입될 수 있는 신속 기동군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주한미군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이후에도 계속 남아 있겠다는 의지이며, 한미동맹을 통해 동북아에서 패권을 유지하고 주한미군으로 지역 안정자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중장기 구상이다. 또한 미국에게는 남북이 통일되면 인구 8,000만의 통일한국이 미중 간 전략 경쟁이 본격화할 때 어떤 태도를 보일지도 중요한 문제다. 미국 내 일각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깊은 경제적 의존관계, 같은 유교문화권으로서 오랜 역사를 함께한 유대 등을 들어 장차 통일한국이 중국에 편향될 것으로 우려한다. 이 같은 미국의 불안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인한 동북아 질서 변화를 꺼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셋째,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적극적 태도가 중요한데 북미 간 ‘적대적 공생관계’도 문제다. 미국의 6자회담 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은 2007년 북한의 김계관 대표에게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워싱턴과 평양에 대사관과 유사한 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안했지만, 김계관이 관심 없다며 선을 그었다고 증언했다. 북한이 미국 대표부의 평양 설치를 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 지도부가 입으로는 북미관계 정상화를 요구하지만, 막상 미국 위협이 사라질 때 발생할 내부의 체제동요를 걱정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개방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체제동요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우려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난관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두 번째의 ‘여건’은 국민적 공감대 조성이다. 올림픽 동안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같은 내부 냉전세력들은 북한의 올림픽 참여로 조성된 남북화해 분위기를 깨는 데 안간힘을 다했다.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언론의 조명을 받자 평창올림픽이 ‘평양올림픽’으로 변질되었다고 정부를 성토했으며, 북한 응원단의 가면 응원에 대해서는 김일성 가면이라며 응원단을 몰아내라고 윽박질렀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가 효력을 발휘하는 시점에 정상회담 개최는 국제적 공조를 파괴하고 북한에 대한 압박을 중단시킬 위험이 있으므로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자유한국당은 “북핵 폐기가 전제되지 않는 대통령 방북은 이적행위”라고까지 정치공세를 퍼부었다. 북핵 폐기는 남북 정상회담과 6자회담 등을 거쳐 달성해야 할 마지막 목표임에도 이를 전제조건으로 우기는 것이다. 이들은 북한과 협상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양보하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북한 정권의 위장 공세에 굴복해 북한의 숨통만 틔워줬다고 매도할 것이다. 현재 문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가 60~70%를 웃돌기 때문에 이들의 공세가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만약 50% 이하로 떨어지면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한미 군사훈련 재개가 가져올 후폭풍

주권 국가가 군대를 보유하고 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유독 한반도에서는 군사훈련 때마다 온 국민이 몸살을 앓는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실시 → 북한 반발과 군사적 긴장 고조, 남북관계 급랭 → 북한의 핵 및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 실험 단행 → 유엔의 북한 제재조치 발동, 미국의 선제 타격론 대두 → 한반도 전쟁위기 발생의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의 후폭풍에 대해서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의 증언이 정곡을 찌른다. 1993년 3월의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가 8차례 남북총리회담을 거쳐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한반도 비핵화 선언 등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남북화해 국면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한다. 딕 체니 국방장관이 타 부처와 상의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했던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는 북한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준전시체제’ 선포와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하게 함으로써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당시 한미 양국의 군사기관들은 팀스피리트 훈련의 군사적 장점을 떠들어댔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자신이 한국대사로 일할 때 미국이 결정한 유일한 최악의 실수였다고 회고한다.

지난 1월 한미 정상이 평창올림픽 성공을 위해 어렵사리 군사훈련을 연기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곧바로 군사훈련 재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미국 합참의 케네스 매켄지 중장은 기자들과 만나 올림픽이 끝난 뒤 곧바로 훈련을 실시하겠다고 했으며, 한국의 국방부도 훈련 일정에 대해 한미 간에 협의 중이라고 호응하였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타국에 대한 내정 간섭에 해당함에도 국내외 언론을 상대로 한미 군사훈련의 재개가 필요하다는 발언을 반복했다. 급기야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해서는 안 되고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문해, 문 대통령으로부터 “이 문제는 우리 주권의 문제이고 내정에 관한 문제”이므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면박을 받았다.

올림픽 이후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숙제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문제일 것이다. 한미 군사훈련은 남북관계와 북미 대화는 물론 한미 공조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7일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할 경우 “첫걸음을 뗀 북남관계가 휘청거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그동안 북 지휘부 제거작전이 포함된 키리졸브 훈련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해왔다. 비정상적으로 증폭되어 논란거리가 된 군사훈련을 차분히 주권 국가의 정상적 훈련으로 자리매김하는 지혜와 결단이 요구된다. 현재로선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를 강조하는 미국이 한미 군사훈련을 거듭 연기할 가능성은 낮으므로 훈련의 규모나 기간을 줄이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중요한 기회를 놓치면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올림픽을 계기로 찾아온 천금 같은 기회를 흘려버리고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 재개 → 북한의 도발 → 유엔의 제재 발동, 미국의 선제공격 위협으로 치닫는다면 이번에는 단순한 위기로 끝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통일과 분단의 갈림길, 구심력과 원심력의 대결

올림픽 이후 한반도 정세는 구심력과 원심력의 대결로 결정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 간 교류·협력을 거쳐 통일로 나아가려는 구심력과 분단 상태에서 적대관계를 유지하려는 원심력의 대결에서 승자는 누구일까?

구심력이 승리하려면 구심력을 키우는 게 관건이다. 원심력을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구심력의 양대 요소는 촛불혁명을 성공시킨 대한민국 국민의 힘과 세계적인 평화세력과의 연대다. 먼저 문재인 정부는 한국민의 집단 지성과 그 힘을 믿고 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국민과 정직하고 섬세한 소통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울인 노력만큼 결과는 나올 것이다. 다음으로 세계적 평화세력의 힘을 믿고 보편 이성에 바탕을 둔 도덕적 호소력을 지닌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그리고 외신과 소통에 신경 써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결성을 두고 “세계 평화의 희망을 안겨주는 일”이라며, “남북 단일팀은 스포츠 정신이 세상에 가르치는 대화와 상호존중을 통한 갈등의 평화로운 해결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올림픽 이상은 한반도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울림이 있다”면서 전 세계에 ‘평창 동계올림픽 휴전 결의’ 준수를 촉구하고 북미 대화를 권고했다. 남북이 화해하고 힘을 합쳐 통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이를 지원할 평화세력이 세계 곳곳에 있다.


백장현. 정치학 박사, 한신대학교 초빙교수,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필자는 정부의 통일정책이 제대로 펼쳐지려면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통일운동을 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생활터전에 기반을 둔 통일운동을 일구기 위해 고양 파주 지역에서 ‘통일을 이루는 사람들’을 창립해 통일시민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참고자료

백장현, 『통일코리아 가는 길』(새터, 2016), 109~112쪽.

크리스토퍼 힐, 『크리스토퍼 힐 회고록: 미국 외교의 최전선』(메디치미디어, 2015), 324~325쪽.

도널드 그레그, 『역사의 파편들』 (창비, 2015), 357~3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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