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교회, 정말 가능할까?

 

송경용

(사진 : 걷는 교회 – 송경용 신부 페이스북 이미지)

‘가난한 교회’를 주제로 받았을 때 처음으로 생각한 것은 ‘가난한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라는 것이었고, 그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가난한 교회가 있는가?’, ‘가난한 교회는 가능한가?’라는 의문이었다. 최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가난한 교회’를 언급하실 때마다 옳으신 말씀이라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라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작은 차를 타고 울부짖는 사람들을 안아주시고 길거리에 있는 노숙인들과 점심을 드시는 장면에서는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로마 천주교회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 여든에 가까운 노구를 이끄시고 이미 부자가 되어버린 당신의 교회를 향해 말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전하는 간절한 메시지라는 생각에 ‘참 훌륭한 지도자’라는 느낌 한편에 가끔은 불경스럽게도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경험적으로, 역사적으로, 논리적(?)으로 불가능을 향해, 거대한 벽을 향해 외치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의문을 품게 되었는가에 대해 잠깐 설명하는 것이 옳을듯하다.

필자는 지난 1979년부터 당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도봉구 상계동(지금은 노원구)에서 10대의 노동자들과 야학을 하면서 그들과 함께 노동하고 공부를 하며 살았다. 1986년에는 그 동네에 ‘나눔의 집’을 세웠고, 1988년에는 성북구 정릉 판자촌에, 1990년에는 관악구 봉천동에 ‘나눔의 집’을 세워 2003년까지 노동자, 노숙인, 집을 잃은 청소년, 장애인, 철거민들과 함께 살았다. 그 이후 건강상의 문제로 영국에 건너가 대학, 국제 선교기관, 교회에서 일하며 사는 가운데에서도 런던에 있는 일곱 개의 교회들이 연합해서 노숙인을 돕는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돌아와서는 노숙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분들의 재활과 자활을 위해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마을 만들기 운동을 하는 단체, 인도와 동티모르, 파키스탄에 학교를 설립하고 교육 사업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나눔과 미래’에서 일하고 있다.

영국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그랬고 수십 개 나라를 돌아다니며 갖가지 사연을 가진 수많은 교회와 셀 수 없을 만큼의 그리스도인, 타 종교인들을 만났다. 개인적인 신앙 여정에서 천주교는 내 신앙의 첫 출발지였고 가족의 교회이기도 했다. 나와 내 가족이 가장 어려웠던 순간에 가장 따뜻한 품을 내주었던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스승과 도반을 만나기도 했다. 감리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기도 했으며, 사찰에서 스님들과 오랜 시간 교분을 나누기도 했다. 원불교 교무님들과의 우정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으며 무신론자들과의 교류와 토론, 논쟁도 언제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즐거운 시간이다. 봉천동 나눔의 집 제대 위에 걸려있는 십자가는 공산주의자이며 비전향 장기수이셨던 분이 두 달간의 공력을 들여 정성스럽게 조각해주신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신앙이 결정(結晶)되기까지는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 이리로 저리로 안내하고 돌리시는 길을 따라 헤매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희망에 들뜨기도 하는 것 같다. 필자 또한 그런 길을 따라 돌고 돌다가 ‘가난과 예수’가 마음속에 맺히게 되었고 그 길을 따라 살아 보려고 무던히, 부족하지만 나름 애써왔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교회는 어떤 교회?

이 논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가난’이라는 말에 대한 정의부터 생각해보아야 한다. ‘가난’은 ‘빈곤’과 같은 말일까? 집도 없고 물도 없으며 음식도 없는 물질적 궁핍이라는 물리적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로 표현되는 박탈, 소외 등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상태인가, 아니면 ‘청빈’, ‘자발적 가난’ 등으로 표현 되는 마음, 정신적 상태, 또는 지향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가난은 중의적인 표현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라고 산상수훈에 나오는 것처럼 ‘마음’의 가난으로 쓰이기도 하고, ‘물질적 결핍’의 상태를 표현하는 데에 쓰이기도 한다. 영어로 가난은 Poor와 Poverty라고 쓰이기도 한다. Poor는 단순히 가난한 사람이나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빈곤의 상태와 무관하게 ‘불쌍하다’, ‘애처롭다’, ‘가련하다’ 등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반면 Poverty는 ‘빈곤’, 물질적 결핍의 상태를 의미한다. ‘가난한 교회’를 말하자는 건, ‘마음의 가난’, Poor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그리스도인들이 ‘가난’을 이해할 때 이 ‘마음의 가난’이 가장 큰 오해의 소지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에 잠깐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 산상수훈에 나오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가난은 ‘파산’이라는 원뜻을 가지고 있음에도, 앞에 ‘마음’이 붙음으로써 애매모호한 뜻이 되어 버렸다. ‘마음의 가난’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마르 10,21)

안타깝게도 위 구절에 나오는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불편해하는 사람들, 교회들, 사목자들, 교회 지도자들이 산상수훈의 이 구절을 가장 많이 애용하는 것 같다. ‘마음’을 심리적인 차원의 문제로 생각하거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열심히 기도생활 하고 성찬례(미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언제 어디에서나 묵주기도를 성심으로 하면서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는 신실한 신자 정도로 해석해버리고 만다. (이런 사람들은 산상수훈의 나머지 구절에 대해서도 편의대로 해석한다). 세속에서의 생활이 어떠하든 교회에서 요구하는 신자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를 충실히 하는 사람, 부정한 방법에 기대어서, 또는 자신의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착취해서 부를 쌓았거나 말거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그러나 예수님은 부자 청년처럼 상대적으로 정당한 부를 쌓(은 것처럼 보이)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사람도 ‘대견’하게 보시기는 하셨지만, 당신과 함께 구원의 길로 동행할 사람으로는 생각지 않으셨다. ‘마음의 가난’은 신앙생활에서 요구되는 여러 조건 중 하나의 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말이다.

가난은 물질적인 결핍으로 인해 빈곤의 덫(Poverty Trap)에 빠져 고통받는 상태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한 상태(Socially Excluded)를 의미하기도 한다. 1998년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빈곤은 단순히 저소득을 말하는 개념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여하한 가능성이 박탈된 상황을 말한다. 그것을 벗어난 것이 바로 자유다.”라고 말했다. 위키피디아에서 ‘빈곤’을 찾아보면 이렇게 정의한다.

빈곤(貧困, poverty)은 일반적인 부족, 결핍을 말하거나 일정양의 물질적 소유물이나 돈을 잃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은 사회, 경제, 정치적인 요소를 포함한 다면적인 개념이다. 빈곤은 만성적이거나 일시적인 개념으로 생각될 수 있고 대부분 불평등과 관련이 되어 있다. 또한, 소비패턴, 기술적 혁신 등에 따라 그 개념이 바뀌고 있다. 절대적 빈곤은 일반적으로 음식, 물, 위생시설, 옷, 주거시설과 건강관리를 포함하고 있는 기초적인 생활품의 부족을 의미한다. 반면 상대적 빈곤은 한 사회에 같이 사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부족함을 느끼고 빈곤한 상태에 있지만 그 상태가 일반적인 생활이나 건강을 즉각적으로 위협하는 상태는 아니다. (https://ko.wikipedia.org)

이런 교회가 있는가? ‘가난한 교회’는 위 두 정의의 어느 부분에 기대어 설명 할 수 있는가? ‘가난한 교회’는 실제로 존재하는 ‘실상’인가 아니면 언젠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소망’의 영역에 있는 것인가? 가난한 교회는 교회 재정이 부족하다는 뜻인가, 사목자가 가난하다는 뜻인가, 그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이 가난하다는 뜻인가? 교황께서 말씀하시는 ‘가난한 교회’는 도대체 어떤 교회를 말씀하시는 것인가?

가난한 교회는 존재하는가?

아무리 생각하고 지금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를 살펴보아도 ‘물질적인 결핍과 사회적인 배제’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교회는 없는 것 같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교단이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한국천주교회에 이런 교회가 있는가? 개신교회에는 있는가? 내가 속해있는 성공회에도 재정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교회는 있어도,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있거나 기본적인 권리가 박탈되어 고통받는 교회는 없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313년 교회가 세상 밖으로 나와 정치권력과 힘을 나누어 가지면서 세속화되고 제도화된 시점부터 가난한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교회는 더 많은 교인과 더 큰 교회 건물을 지향해 왔다. 교회의 제일 모토는 ‘확장’에 있었다. 복음화, 또는 선교라는 이름의 밑바닥에는 교회가 더 커져야 한다는 규모와 세의 확장 논리가 지배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도전적이고 과감한 확장의 신학과 신앙 덕택에 우리가 지금 복음의 기쁨을 누리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커질 대로 커져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성장과 확장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어느 교단이라 할 것 없이 걸어서 몇 분 걸리지도 않는 거리에 수십억 수백억을 들여 그 지역에서 가장 좋은 건물, 교회당을 짓는다. 목 좋은 곳에 땅을 가진 기업과 개인들이 집을 부수고 주상복합 건물을 세워 더 많은 이득을 추구하듯이, 교회는 그 터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가치를 과감하게 부숴버리고 ‘교상(敎商)복합’ 건물을 지어댄다.

천주교, 개신교 할 것 없이 신자로 등록된 사람들이 운영하는 기업에 특혜를 주고, 자본주의적 대기업 방식의 사업체를 만들고, 소속된 기업들의 계열화를 시도하고 있다. 사목자가 사장이 되고 기업의 관리자가 된다. 교회의 크기, 시장의 크기에 따라 사장이 되고 관리자가 된 사목자들의 기업에 대한 지배력과 영향력도 비례해서 커져 간다. 당연히 기업을 운영하는 신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교회마다 교구마다 실업인회를 조직해서 정보와 사업 기회를 나누어 가지면서, 관리자가 된 사목자, 교단에서 제일 힘이 세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순번을 정해 좋은 음식점도 가고, 골프 모임도 조직하고, 여행도 시켜주고……. 그들이 운영하는 일부 기업은 교회의 권위를 덮어쓰는 특권을 누리면서 그 기업에 속한 노동자들에게는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짓을 하기도 한다. 마음이 가난하면 되니까.

가난하다고 ‘주장’하는 교회들은 어떻게 하든지 규모를 키워서 부자교회 반열에 들어가기 위해 밤낮없이 총력을 기울인다. 규모를 키워야 재정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고, 교단 내부에서나 지역 사회에서 위신을 세우고 대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물질적 결핍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사회적 배제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커져야, 덩치가 있어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도 할 수 있고 사회정의 실현에도 앞장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목자들, 교인들은 무슨 일을 같이하자고 하면 가장 먼저 돈이 없다, 사람이 없다는 말부터 한다. 기준이 크기, 규모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성인 프란치스코의 고향이자 그가 활동했던 아시시를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다. 그와 클라라의 삶과 활동의 흔적을 보면서 내내 경이로웠고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환자들을 돌보았던 소박하고 작은 기도처이자 요즘 말로 환자 돌봄 센터였던 곳이 수천 평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 성당’이라는 거대하고 웅장하며 지극히 권위적인 돌 건물로 뒤덮여서, 원래 모습의 프란치스코 기도처는 의식하고 찾아보아야 겨우 보이는 것을 보면서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청빈, 순명, 정결을 생명으로 하는 수도원, 그중에서도 특히 모든 것을 내던졌던 가난한 성인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이어받았다는 수도원의 재산 규모가 세계 여러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디에서 ‘가난한 교회’를 찾을 수 있는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종 메시아의 모습을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이사 53,4)고 노래하였다. 이 말씀처럼 볼품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주님이 병고를 메고 십자가를 지고 갔듯이, 세상 사람들이 겪고 있는 실업과 실직, 비정규직의 좌절과 눈물,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다 집단 자살하는 가족들, 청년, 노인,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병고를 메고 가는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한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수도자, 사목자, 교인, ‘극소수의 과격한 사람들’이라고 치부되며 탄압을 받아내는 사람들, 정의가 무너져 버린 사건의 현장에서 풍찬노숙을 하며 십자가를 세우고 가난하고 애통해 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며 투쟁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자체가 하느님의 백성들, 하느님의 종, 참다운 의미에서 가난한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도로서의 교회, 기구로서의 교회가 ‘가난한 교회’가 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천 년 동안 너무나 확고하게 물신적 신학과 신앙의 논리 위에서 성장해 왔기 때문에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교회는 가능한가?

교회를 제도나 기구, 그 제도나 기구 안에서 작동하는 조직이라고 이해한다면 ‘가난한 교회’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가난한 교회’라는 의미를 바꾸어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물질적으로나 존재 자체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교회이고, 두 번째는 사목자나 교회 지도자들이 검소하고 청빈하며 겸손한 교회이다. 이루지 못할 꿈을 반복해서 외치고 하지 못할 것을 닦달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도 않고 해낼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교회 지도자들의 말씀이 온갖 탈법과 부정으로 부를 축적한 재벌이 서민들을 향해 검소하게 살자고 하는 말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소유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말처럼, 실업과 실직의 공포 때문에 연애도 포기하고 결혼・출산도 포기하는 청춘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는 실없는 말이 되지 않으려면 목표를 낮추고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세 번째는 위에서 말한 사건의 현장에 있는 교회를 우리 스스로 교회로 인정하고 그런 교회가 많아지는 방법이다. 교인들, 사목자들 스스로 그런 교회를 무슨 가설무대, 임시 천막 교회로 생각하는 한 물질과 권위를 독점하는 ‘부자교회’, 제도로서의 교회, 기구로서의 교회는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교회를 만들고 싶으면 프레임 자체가 새로워야 한다. 형식과 내용이 모두 새로워야 한다. 진정 ‘가난한 교회’가 되고 싶으면 형식과 내용이 모두 가난해야 한다. 물질적인 욕망을 부추기는 구조를 없애버리고 교회의 운영도 기존의 질서에서 탈피해야 한다. 가난은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물질적인 궁핍과 더불어 참여의 기회를 박탈당한 상태이며 소속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가난한 교회를 내 나름대로 이해하자면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는 그들이 일상에서 짊어지는 생활의 무게를 같이 짊어지고 그들로 하여금 교회의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모든 물질과 권위가 일부 지도자들에게 속해 있는 교회, 부자 청년처럼 재산은 움켜쥐고 말로만 가난한 신앙과 구원과 선교를 외치는 교회를 어찌 가난한 교회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필자는 가난한 교회를 실현해보기 위해 1986년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던 상계동 시장 복판 아주 허름했던 주택에 ‘나눔의 집’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일부러 교회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았다.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신학원 학생이 된 신분으로 다시 만났던 나의 친구 노동자들은 교회에 대해 “이미 알 만큼 안다. 우리를 꼬드기려 하지 마라!”라고 선포하고 있었고, 나 역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들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교회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교회라는 간판을 걸 생각도 없었다. 같이 노동하고 밥을 나누고 퇴근하고 돌아온 한밤중에 라면상자 위에 성경을 펼쳐놓고 돌아가며 성경을 읽었다.

이후 노숙인, 장애인, 길거리 청소년, 일용직 노동자, 매 맞는 여성, 버려진 아이, 밥을 굶는 노인, 어린이, 인도의 불가촉천민, 파키스탄, 동티모르, 아프리카의 어려운 친구들,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활동가들과 30여 년을 함께 노동하고 밤을 지새우고 때로는 투쟁하며 지내오고 있다. 10평도 안 되는 작은 집에서 ‘나눔의 집’을 시작했고 큰 건물도 여러 채 지어보았다.

언제나 스물 몇 개의 역할과 직책을 가지고 바쁘게 살아왔지만 나 혼자만의 독립적인 사무실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한 뼘의 공간이 있어도 나누어 쓰려고 했다. 내 사무실은 언제나 전화기였고, 길거리였고, 달리는 차 안이었고, 현장이었다. 내 차 안에는 여러 종류의 옷을 가지고 다녀야 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바꾸어 입어야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조금 커져서 40여 평 정도 되는 철거민촌 무허가 집에서 ‘나눔의 집’을 할 때도, 내 자신과 ‘나눔의 집’이 작고 가난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 봉제공장 시다(보조원)와 용접공, 컴퓨터 수리 기사, 롯데백화점 입주업체 판매직원, 비정규직, 학습지 교사, 마늘을 까고 인형에 눈깔을 붙이며 생활하는 동네 이웃집 아주머니가 세례를 받고 신앙공동체(기도 모임과 주일 성찬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이렇게 불렀다)를 이끄는 리더들이 되었을 때는 하늘로 치솟는 듯한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두 살 때부터 갈비뼈와 쇄골과 머리통이 깨지도록 두들겨 맞고 자란 아이, 아버지를 산재로 잃고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3년째 누워만 있어서 집세를 못 내 쫓겨날 처지에 놓여 본인도 동생도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아이, 남편에게 수년 동안의 폭력에 시달리다 아이를 안고 길거리로 도망쳐 나왔던 여인,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육체적・심리적으로 거의 파멸 직전에 있던 열여섯 살 소녀, 열 살 때 단돈 2만 원에 남의 집 식모로 팔려가 6년 동안 한 번도 바깥세상을 나와 본 적이 없던 아이, 이 밖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기도하는 자리, 성찬례를 드리는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스스로 교회를 꾸려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자랑 같기도 하지만 내가 지켰던 원칙은 내가 사제라고 해서 의사결정 과정에 다른 사람들보다 큰 지분을 가지고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들은 내 삶의 가장 든든한 동지들이자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교회를 이끌어 가는 교회의 지도자들이다.

2010년부터 필자는 ‘걷는 교회(Walking Church)’를 하고 있다. 건물이 없다. 세상 모든 곳이 교회이다. 특별히 가난하고 애통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주된 교회이다. 철을 따라 아름다운 산과 강으로 떠나기도 한다. 배낭 하나 메고 김밥 한 줄과 물 한 병이 주일 준비물 전부이다. 성경과 기도문은 스마트폰으로 본다. 십자가, 포도주는 내 배낭 안에 있다. 빵은 길동무 중의 한두 분이 구워 온다. 새들과 바람, 햇살이 성가를 불러준다. 자유롭다. 길거리와 땅을 걸으며 평소 접하지 못했던 풍경과 생명들을 만난다. 모든 헌금은 즉시 국내의 인권 단체, 복지 단체, 해외 지원 사업으로 보내진다. 돈을 쌓아놓으려는 생각도 없고 저축하려는 계획도 없다. 전기세・수도세도 없고 건물 관리비도 없다. 교회 발전 전략 같은 것도 없다. 기존 교회의 대안으로 생각지도 않는다. 그저 있음으로 있는 교회이고,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는 교회이다. 교회 안에 높고 낮은 직책도 없다.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로, 하느님 나라를 향해 걷는 길동무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가난한 교회는 가능하다.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목숨을 걸고 인권과 자유를 위해, 복음을 위해 산을 넘고 강을 넘는 자들을 수도 없이 보았다. 한 달 사례비가 계란 한 줄이라는 우간다의 사제, 에티오피아, 수단, 콩고에서 활동하는 사목자들, 뿐만 아니라 뉴욕의 슬럼가에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마약 중독자, 에이즈 환자들을 돌보는 사목자들을 만났다. 우리나라에도 많다. 강정에서, 용산에서, 대추리에서, 노숙인들의 마을에서, 노동자들의 철탑에서, 소록도, 팽목항에서 온몸을 사르며 헌신하는 ‘교회들’이 참으로 많이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사람들, ‘에클레시아’라는 말의 원의에 충실하게 교회를 생각한다면 가난한 교회는 이 지구상에 무수히 많다.

가난한 사람이란 물질의 결핍과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둘 중의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가난한 사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질적으로 조금 궁핍하다 하더라도 어려울 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나, 사회적 자원과 관계망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거나,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난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교회를 생각할 때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재정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서, 교회의 사목자가 생활이 조금 궁핍하다고 해서 그 교회를 가난한 교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온전히 가난한 교회라고 하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더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교회만이 있을 뿐이다.

천주교나 개신교나 성공회나 모든 교회들, 제도나 기구로서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 중 3%만이라도 온전히 가난한 교회, 150만 명이 넘는 청년 실업자들, 700만 명이 넘는 빈곤 계층, 비정규직 노동자, 노숙인, 길거리 청소년, 이주민, 사랑하는 사람과 자식을 잃고 애통해 하는 사람들, 농민, 장애인, 노점상인, 영세 상공인, 보금자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진실로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가 되면 좋겠다. 바닷물이 3%의 소금으로 짠 맛을 잃지 않듯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고향의 오랜 친구가 늘 하는 말로 맺고 싶다. “돈과 물질이 근본이고 장땡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 주머니 안에 있는 돈, 지가 가진 물질을 내놓고 나누는 사람이 젤로 위대한 성인이여. 다른 말 백날 혀 봐야 맹탕이여. 내 말이 틀렸는가? 안 틀리면 일단 내놓고 이야기 혀 봐!”

 

송경용 / 성공회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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