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복음 사이 – 신 없는 세상에서 신을 만나다

김선실

6월의 말씀

“군중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루카 9,18-24

오늘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에 대해서 두 번 묻는다.

첫 번째 질문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묻는 거라면, 두 번째 질문은 제자들의 주관적인 생각을 묻는다.

또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견해나 교리, 교회의 가르침과 같이 보편적인 내용이거나 여러 사람의 생각에 해당된다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신앙인으로서 우리 각자가 지닌 예수님(또는 하느님)에 대한 견해나 이미지, 또는 체험에 바탕을 둔 것이리라.

따라서 두 번째 질문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매우 의미심장한 질문이다. 지금 예수님(또는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묻는다면 과연 무어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 답은 곧 자신과 예수님(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신앙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자신만의 독특한 내용일 것이다.

얘야, 너는 하느님을 믿니?

얼마 전 지리산에서 소박하게 농사를 짓는 70대 지인을 방문했다. 마침 근처로 이사한 후배가 9살 된 아이를 데리고 와 같이 저녁밥을 먹었다. 직접 채취하고 가꾼 나물과 푸성귀로 식탁은 풍성했고 새소리가 정취를 돋우었다. 즐거운 식사 자리가 이어지던 중 집 주인이 아이에게 “얘야, 너는 하느님을 믿니?” 하고 물었다. 어리둥절한 아이가 엄마를 쳐다보며 “엄마는 하느님을 믿어요?” 하고 물었다. 아이 엄마가 “물론이지!”라고 대답하자 아이는 계면쩍은 듯 자기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거야.” 순간 아이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눈동자가 흔들리며 깊어지는 듯 했다. 자연과 벗 삼아 사시는 그분은 만물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아이에게 일러주고 싶었을까?

신 없는 세상

중학교 2학년 무렵 세상이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결코 환한 모습이 아니었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 그래서 신은 없다고 단정지었다. 신이 있다면 이렇게 부정적인 모습일리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은 왜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런 질문들이 화두처럼 계속 맴돌며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고둥학교에 입학한 후 성경 교과서의 첫 부분에 실린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렛 1,2)라는 구절에 이끌려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허무함이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렌즈였기에 그 구절에 끌렸던 것이다. 인생의 허무함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의미를 찾게 해주는 성경시간과 그 교과서 덕분에 그 해 12월 말 나는 가톨릭 신앙인이 되었다. 그 당시 예수님이 나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면 “내 존재의 근원이자 의미입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존재의 허무함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신앙을 통해 그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대답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그 대답은 또한 그동안 살아온 경험만큼이나 더 다양하고 풍요로워졌다.

신은 어디에도 …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대학생 성서모임을 하면서 예수님은 성찰하는 삶의 기준이 되었고, 30대에 여성신학을 접하게 되면서는 하느님 아버지 뿐 아니라 하느님 어머니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우리의 벗이자 파트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생태문제에 대한 관심은 우주적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나를 이끌어가고 있다.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만큼, 치열한 삶의 현장을 겪는 만큼 예수 그리스도(또는 하느님)에 대한 이해도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단다.” 70대 노인이 9살 아이에게 던진 이 한 마디의 말이 그 아이의 삶에 내내 작은 울림이 되리라는 것을 예측한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김선실

내적 충만함으로 기쁘게, 인간과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파트너십의 실현을 꿈꾸고 실천하는 삶을 지향한다. 특히 교회와 사회 안에서 여성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일에 투신해 오고 있으며 한국파트너십연구소에서 파트너십을 함양하는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하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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