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데 – 하느님, 사람 , 자연

장용창

질문: 요가에도 하느님이 있다니, 갈수록 재미있어집니다. 하지만, 저는 선생님이 좀 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가의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들 말고, 선생님 자신이 정말 하느님을 믿으시나요? 하느님을 믿는 사람만이 진짜로 요가 수행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답>

이번 질문은 좀 어렵군요. 제가 어떻게 답을 해도 오해를 받을 것 같아서 걱정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한번쯤은 솔직하게 밝히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네요. 좋습니다. 그 질문을 해줘서 고맙습니다. 사실, 제가 인도에서 여러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면서 물었던 질문도 바로 그 질문입니다. 하느님은 있는가? 당신은 하느님을 믿는가? 라는 질문 말이죠.

예, 저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하느님은 저 영원한 우주 자체입니다. 제가 이 우주에 대해서 어떤 판단을 내리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그 이후에도 영원히 존재하게 될 존재 그 자체가 하느님입니다. 노자가 말했던 도(道)처럼 말로 표현될 수도 없고, 사람의 보통 능력으로는 인식할 수도 없는 존재, 사람을 풀로 만든 개로 취급하는 존재, 이런 존재가 하느님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요가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라마야나(Ramayana)라는 오래된 소설에는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손오공의 모델이 되었다는 원숭이 장군 하누만에게 그가 모시는 왕인 라마 신이 묻습니다. “너와 나는 무슨 관계인가?” 그러자 원숭이 장군이 답합니다. “첫째로 당신은 아버지이고, 저는 아들입니다. 둘째로 당신은 바다이고, 저는 파도입니다. 셋째로, 저는 당신입니다.” 저는 이것이 신과 인간의 관계를 보는 대표적인 이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비유는 세 종류의 종교적 신앙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첫째는 하느님을 인격화해서 믿는 신앙, 둘째는 자기 자신 안에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신앙, 셋째는 이미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신과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먼저 베다 철학의 거미줄 비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다 철학에서는 하느님과 세상을 거미와 거미줄로 비유한답니다. 거미의 몸에서 거미줄이 나오듯, 하느님 자신에서 세상이 태어났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 둘을 어찌 분리하겠습니까? 이것도 바다와 파도의 관계와 비슷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요가에서 말하는 자연에 해당하는 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프라크리티(prakriti)와 마야(maya)가 그것입니다. 마야는 앞서 사성제 중 하나인 환상(illusion)이라고 얘기했지요. 그런데, 이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엘리아데(Eliade, 1969: 29)는 자연(prakriti)은 하느님(purusa)만큼이나 실재하며 영원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럼 자연(maya)이 환상이라는 것과 자연(prakriti)이 실재한다는 이 모순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제가 이해한 바로는, 우리의 경험 밖에 원래부터 있는 자연은 프라크리티로서 하느님처럼 실재하는 반면, 우리가 생각이라는 틀로 경험한 자연은 환상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 경험하는 모든 것은 마치 장자의 나비 꿈처럼, 우리의 생각들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입니다.

그래서 요가의 목적은, 우리가 경험하는 이것들이 환상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요가의 목적이 자유라고 할 때, 그 자유란 고통과 악이 있다는 우리의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Eliade, 1969: 33). 그런 깨달음이 올 때 바로 하느님이라는 실재가 경험된다고 합니다.

그럼 이 세계가 환상일 뿐이라는 요가의 저 설명을 믿냐고요? 네, 저는 믿습니다. 제가 바이런 케이티의 생각 탐구라는 걸 해보니까, 이 점이 좀 더 분명히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과는 아무 상관없는, 자기 생각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우리는 우리의 생각에 투영된 그 사람, 혹은 우리의 생각이 창조해낸 가짜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환상에 의해 맺어진 관계들이 우리에게 고통을 줍니다. 그 환상 너머의 실재-하느님-을 잠시라도 보게 되면 우리는 평화를 얻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가짜 세상 너머에 있는 하느님은 오직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Eliade, Mircea. (1969). Yoga: Immortality and Freedom. second edi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한 줄 명상>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입었다고 생각하는 상처와 피해는 진짜일까?

장용창

제주에서 태어났고, 1998년 한주훈 요가 선생님을 만난 이후 요가 공부를 하고 있다. 2005년 인도의 사티아난다 아쉬람, 비하르 요가 대학, 시바난다 아쉬람 등에서 잠시 지냈으며, 베다 니케탄 아쉬람에 있는 달마난다 선생님에게 요가 철학을 배웠다.

비폭력대화와 바이런 케이티, 노자 도덕경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요가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고 믿고 있다. 경남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고 (사)동아시아바다공동체오션에서 해양쓰레기 연구를 업으로 삼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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