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과 생명 살림을 위한 50년-4호/ 한국가톨릭농민회협의회 정현찬 회장

 

농민과 생명 살림을 위한 50년

한국가톨릭농민회협의회 정현찬 회장

2016년은 한국의 대표적인 평신도 사도직단체인 한국가톨릭농민협의회(이하 가톨릭농민회)가 창립된 지 5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가톨릭농민회는 지난 50년 동안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안에서도 중요한 시민사회단체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왔지만, 현재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 발생을 비롯하여 어려운 한국 농업의 현실과 함께 신음하며 고통받고 있습니다. 백남기 농민 사건 발생 201일째인 지난 6월 1일, 가톨릭농민회 정현찬 회장을 서울대병원 앞 천막에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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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지 200일이나 지났습니다. 왜 농민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지금 농촌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과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란 국제 무역기구가 생겼습니다. 무역질서를 바로잡는다는 이름으로 세계경제를 재편하면서, 미국 자본 중심으로 자유무역 체제가 결성된 것이지요. WTO는 다자간 협상으로 140개국이 참여하는데, 선진국과 중진국, 후진국의 견해차가 많이 발생하여 작년부터 중단되었습니다. FTA는 양자 간 무역협상으로 나라와 나라 간의 협상인데, 우리나라는 50여 개국과 FTA를 맺고 있기에 사실상 WTO와 마찬가지입니다.

무역협상을 맺으면서 농산물이 개방되어, 작년 말엔 쌀마저도 제값을 받지 못했습니다. 농촌에서는 봄의 매실부터 가을의 감, 쌀, 사과까지 대부분이 외국 농수산물에 밀려서 제값의 가치를 받지 못합니다. 특히 쌀 같은 경우 20년 전의 쌀값과 같습니다. 생산비인 인건비, 농기계비는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쌀값은 20년 전과 같은 값을 받고, 수입되는 쌀로 인해 수확철에 쌀값이 더 떨어지는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그래서 작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시위 때 농민들이 이제는 이렇게 농사짓고 살 수 없다며, 우리 농업과 식량을 지킬 수 없는 한국 농업 위기에 대한 정책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올해 70세입니다. 농가 인구에 젊은 사람들은 없습니다. 대부분 60대, 70대가 농촌에 남아있습니다. 그날 앞에 서서 목소리를 내던 백남기 농민이 그런 봉변을 당했습니다. 현장에서 물대포를 맞은 즉시 의식을 잃었고, 수술을 급하게 했지만 지금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계속 상황은 안 좋아지고 있고, 지금 약물과 인공호흡기에만 의존하고 있어요. 건강한 사람도 오래 누워있으면 건강하지 못한데, 노인이 물대포를 직접 맞아서 저렇게 오래 누워있으니 더 안 좋죠. 현재 의사의 소견은 1%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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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국회에서 ‘백남기법’을 만들자고 하는데 어떤 법인가요?

이번 사태는 국가폭력이 저지른 행태입니다. 백남기 농민이 의식을 잃은 지가 200일이 넘었는데도, 검찰은 가족들만 참고인으로 조사했습니다. 현 검찰이 국민을 위한 검찰이 아니라 권력의 눈치를 보고 제대로 된 조사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국민의 의결 대표 기구인 국회가 청문회를 열어 진실을 밝히거나 특별검사제를 시행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잘못된 행동에 책임을 물어서 벌을 주어 재발을 막아야 하고, 국가의 폭력이기에 대통령도 가족과 국민들에게 사과를 해야 하지 않나, 이런 입장에서 20대 국회에 ‘백남기법’(공권력 범죄 방지 및 피해자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요구했습니다. 야 3당이 먼저 결의해서 일차적으로 청문회를 통해서 진실을 밝히고, 재발방지를 위해서 가칭 ‘백남기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앞으로 힘없는 국민들이 국가폭력의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제 31일 국회에서 야 3당과 대책위원회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국민들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 농민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농업 정책은 무엇인가요?

농민들이 지금껏 대대적으로 요구한 것은 쌀 문제, 농수산물 문제입니다.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사짓도록 대안을 마련하고, 먹거리 안전성을 위해 식량주권을 법적으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정부에서 안전성 검사를 하고 있는데, 이 검사를 하는 사람들이 국민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닌, 세계적인 곡물자본가인 ‘몬산토’의 장학금을 받은 이들입니다. 대부분 안전하다고 판정이 나올 것이고, 이 땅의 먹거리는 점점 더 불안해질 것입니다. 앞으로 쌀을 상용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은 수입산 보다 국산 쌀이 질적인 면에서 안전하고 맛있지만, 안전성 검사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화학약품 사용은 암묵적으로 행해질 것이고, 한국 쌀은 위험해 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우수농산물 품질인증’(GAP, Good Agricultural Practices) 제도로 농업 정책을 끌고 가는데, GAP에는 제일 우려되는 농약인 제초제 사용규제가 없습니다. 또한 ‘유전자조작농산물’(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을 규제하는 법 또한 없습니다. 기존 화학농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규제해야 할 품종들을 GAP에서는 안전하다고, 안심하고 먹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알리고 있는 셈입니다. 국민을 기만하는 겁니다. 가톨릭농민회에서는 이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조작식품처럼 생명을 조작하는 행위는 윤리적 측면에서 용인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 올해 가톨릭농민회 창립 50주년인데,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50주년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으신지요?

농촌 사정이 좋고, 농민들이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처럼 살 형편이 좋았더라면 잔치를 하고 즐겼을 터입니다. 하지만, 지금 저희 회원 백남기 농민이 사경을 헤매고, 한국 농업이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농민들의 삶은 파탄이 나고 있습니다. 올해는 이 현실적인 면들을 돌아보고, 지난 50년간의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재평가하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은 바로잡고 그동안 못다 한 사업 내용을 의논하려는 것입니다. 50주년을 맞아 평가 및 계획에 들어갈 겁니다. 특히 먹거리 안전성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인 문제입니다. 생명살림의 밥상을 위해 운동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찬미 받으소서』를 읽어보면 지구는 하나다, 이 지구상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나옵니다. 한국에서도 사람들이 이 땅에 살지 못하는 환경에 처했습니다. 가톨릭농민회가 생태계 보호에 집중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올가을 추계주교회의에서 제2의 ‘생명밥상 살리기 운동’을 선언해 달라고 요구하려고 담당 주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계획서를 추계주교회의에서 검토하게끔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GAP와 GMO 반대 운동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생명밥상 살리기 운동’은 생명이 살아있는 밥상을 교회가 앞장서서 실천하자는 겁니다. 생명의 밥상은 가공식품과 불량식품을 줄이고, 농민들이 농사지은 것을 나누어 먹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주교님, 신부님, 수도자들 밥상부터 도시에 사는 신자들의 밥상까지 살리자는 거죠. 현재 성당 주일학교에서도 불량식품을 먹이고 있습니다. 한국이 GMO를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 1위입니다. 모든 가공식품에 GMO가 들어갑니다. 콩, 옥수수, 기름 등 일반 생활 속에서 GMO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현재 밀가루도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과 무역이 늘어나면서, 일반 시중에 중국 농산물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중국은 농약규제법이 없어서, 하루에 두 번의 농약을 쳐도 규제를 받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재래시장에서 중국산 농산물이 70~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반 시중 식품들은 우리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먹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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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가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20년 넘게 벌이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도 그리 확산되지 않는 듯합니다. 왜 교회 안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을까요?

지난 2년간 분석하고 교구별 생산지를 둘러보면서 문제를 알게 되었는데,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하 우리농)을 교회가 선언하고 운동을 하는데도 소비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이해 부족’이라고 생각됩니다. 교회 내 운동에 무관심한 신자들도 많고, 그런 게 있는지 모르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담당 신부님들이 나서서 생활공동체를 결성하여 우리 농산물을 먹도록 권장해야 합니다.

주일학교 간식만 해도, 실상 교회 재정만을 먼저 생각하지 우리 농촌을 살리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실제 농산물 직거래를 하는 본당들 중에도 우리 농촌을 살리고자 운동을 하는 본당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먹거리의 문제점과 불완전한 점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우리 농업을 살려야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이해 부족의 원인에 대한 책임은 가톨릭농민회 안에도 있습니다. 제대로 홍보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매년 7월 농민주일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홍보부족보다 더 큰 문제는 교회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농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가톨릭농민회가 생산한 생명살림 농산물의 절반 정도는 제값에 판매가 되지 않아서, 시장에서 다른 화학약품 농산물들과 같은 취급을 받고 헐값에 팔리고 있습니다. 농사 짓기는 몇 배나 힘든데 제값을 못 받으니, 힘들게 생명살림의 농사를 지으려는 의욕이 안 생기지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라 지키는 군인들에게 유기농을 먹이자고 농림부(농림축산식품부)에 건의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이들에게 냄새나는 쌀을 먹인다는 것은 인간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행위와 같습니다. 학교 급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는 각 가정의 책임이지만, 군대나 학교 등의 시설은 국가의 책임입니다. 학교 급식과 군인들의 밥을 우리 농산물 안전한 먹거리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도 요즘 곳곳에서 아이쿱, 한살림, 행복중심 생협 등 국내 생협운동이 늘어났는데, 이런 운동은 모두 가톨릭농민회가 출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다하지 못 하더라도 유기농 시장이 넓혀지고 생명살림이 일반 대중들에게 다가갔음은 성과라고 봅니다. 하지만 생협운동은 건강한 먹거리를 원하는 사람들과 좋은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과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서 확산되었지만 소비자 중심이라고 봅니다.

우리농과 가톨릭농민회의 활동은 생산자인 농민들을 살리기 위한 운동입니다. 우리는 다른 단체와 달리 순익 계산을 맞추지 않습니다. 또한, 농민들에게 요구하는 생산 기준도 상당히 높습니다. 한살림 등에서 요구하는 수준보다 농약을 금지하는 기준이 더 높고, 환경보호를 위해 비닐 씌우기 등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요구 사항이 까다롭지만, 농민들에게는 그만큼 제값을 쳐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이런 부분을 인식하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공급가와 이윤을 따져, 그 수익을 자기 본당 사업에 쓰려는데 관심이 더 많아요. 혹시라도 이익이 생긴다면 농민들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 농촌을 살리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죠.

  • 지금 농촌에는 젊은 사람이 없는데, 지난 선거 때 진보정당에서 농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준다면 농사짓는 청년들이 늘어나지 않겠냔 말이 나왔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 한국 농업의 심각한 문제는 인력문제입니다. 앞으로 한국 농촌은 농사지을 사람이 없습니다. 정책적으로 제대로 파악하고 한국 농업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농업은 사실상 포기한 정책으로, 장기적으로 농업을 걱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농촌의 문제는 여러 가지 많은데, 가장 힘든 것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겁니다. 외국 농수산물과의 경쟁에서 밀려서 경쟁력이 없습니다. 둘째로 우리나라는 자녀 교육열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데, 주로 사교육에 치중하다 보니 다들 자녀를 위해 도시로 나가려고 합니다. 또한, 학교 통학도 어렵고요. 교육문제가 불리하니 어린 자녀를 둔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오기 쉽지 않습니다. 그다음으로, 농민들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농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식을 잃고 있는 백남기 농민을 외면하는 국가처럼 말입니다. 농촌 인구가 얼마 되지 않으니 정치적으로 무시해 버리고, 정책적으로 뒤처져 혜택이 적습니다. 문화적인 면도 그렇죠. 젊은이들이 살기에 지금의 농촌은 굉장히 사회, 정치, 문화, 교육적으로 맞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이미 학교는 폐교되고 아이들 울음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앞으로 농촌에 농사를 지으려면 경제적으로도 기본소득이 보장되어야 하고, 자녀들을 교육시킴에도 어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정치적, 문화적, 교육적 혜택과 배려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점들을 정치적으로 풀어내야 해요. 지금 농촌에서는 5~6만 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한국 청년들이 농업을 천시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부심을 가지고 농사를 짓도록 사회를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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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0년간의 가톨릭농민회 활동 의미를 평가해 보신다면요.

가톨릭농민회는 한국 전쟁 직후 피폐해진 이 땅의 현실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농업기술이나 경제적인 면 등에서 농민들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그때 외국인 선교사나 수도자들이 선진 농업기술을 우리들에게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계몽적으로 많이 나섰습니다. 그런데 활동하다 보니 이게 기술만 보급한다고 농민들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구조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농민들을 착취하고 수탈하던 수단들이 이승만·박정희 정권까지 이어져 온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농민들이 농사지은 농산물을 착취하는 것과 더불어 농지세도 받아갔습니다. 그것 말고도 수세며 온갖 잡세들을 만들어 세금으로 수탈했습니다. 농민들은 농사를 지어도 자기가 농사지을 씨앗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없었고, 국가의 간섭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농민들을 착취하던 수단들이 해방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았고, 60~70년대까지 이어졌던 겁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없애지 못한 문제입니다.

1960년대 출범한 가톨릭농민회가 그 당시 최고 목표로 내걸었던 것은 ‘농촌사회 민주화’와 ‘농촌사회 복음화’ 운동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활동했어요. 잘못된 제도를 폐지하자고 운동하면서, 많은 농민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마을 이장도 주민 손으로 뽑게 했습니다. 농협은 농민들이 만든 협동조합인데, 정부가 임시조치법으로 조합장을 임명했습니다. 이를 박정희 정부 때 가톨릭농민회가 민주화를 통한 조합장 직선제를 요구해 직선제를 만들었습니다. 지방자치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함께 지방자치 운동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1990년도까지 민주화 운동을 통해 농민운동 단체도 3개로 늘었습니다. 개신교 신자 농민들이 ‘기독교농민회’를 만들었고, 대학 출신 농민들은 ‘농민단체협의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농민단체가 분산되면 힘이 없다는 의견으로 1990년도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이라는 상위 단일 조직도 만들어졌습니다.

가톨릭농민회는 생명농업도 시작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 식량 자급 정책 차원에서 ‘안남미’ 쌀 품종을 들여오면서 비료와 농약 사용이 증가하게 되어 땅을 다 버렸습니다. 가톨릭농민회에서는 농민과 소비자들 보호를 위해 생명살림 운동을 결심했습니다. 가톨릭농민회가 생명살림 운동으로 전환했을 때, 김수환 추기경께서 ‘농민주일’을 만드셨어요. 가톨릭농민회의 전반기 25년은 한국 사회의 제도적 민주화를 위해 일했다면, 후반기 25년은 생명살리기운동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백남기 농민 사태를 계기로 모든 민주 단체들과 함께 다시 우리 사회의 모순, 사회와 인권 문제들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민주화 운동 시기에는 교회 안에서도 농민회 운동을 지지하고 이해가 높아서 함께 했습니다. 농민들과 관련한 시국사건이 발생했을 때, 김수환 추기경께서 명동성당에서 시국미사와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농민들의 현실을 이해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드물어서 그 시절보다 상당히 뒤처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가톨릭농민회의 활동에 달렸지만, 교회 지도자를 통해 교회의 인식도 바뀌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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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톨릭농민회의 50년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아 본다면요?

1977년 ‘함평 고구마 사건’, 1979년 ‘오원춘 사건’, 1987년 ‘농지세철폐운동’ 등 잘못된 일제강점기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농지세나 수세를 폐지하라고 요구한 운동들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1990년대 말 의료보험통폐합 과정에서 역할을 한 겁니다. 정부에서 의료보험을 미국식으로 만들면서 농민, 자영업자, 공무원 등 대상별로 의료보험을 구분 지었는데, 이를 유럽방식으로 통합하여 모든 국민이 골고루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통합하려고 오랜 시간 싸웠습니다. 지금도 의료보험 보험료 부과방식에서 엄청난 차별이 있는 등 여전히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통합을 이끈 건 큰 성과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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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7월 17일 농민주일 앞두고 가톨릭농민회 회장님으로서 한국교회 구성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각박한 세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가치 기준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람 중심, 생명 중심의 가치가 아닌 자본의 가치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올바른 가치보다 옳지 못한 가치를 우선하게 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생명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하느님의 모습을 제대로 살아가야 하는데, 사실 교회도 자본의 가치로 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런 식으로 계속 가다 보면 제대로 된 사회 모습을 지향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도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문제는 크고도 아픈 문제입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신자들에게 올바른 하느님의 가르침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농도 조그만 이익이라도 생기면 농촌으로 돌려야 하는데, 이를 본당 사제관 보수공사를 하는데 쓰는 판국입니다. 그 운동을 통해 수익이 생기면 농촌을 위해,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필요한 곳에 재정을 사용해야 합니다. 함께 살기 위해,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시작했던 운동인데, 잘못된 가치로 인해 돈이 헛된 곳에 쓰이고 있습니다. 교회는 가치 중심으로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다. 꼭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당시 고구마를 수매하기로 약속했던 농협이 원래 약속한 양의 40%밖에 수매하지 않아 헐값에 팔리거나 썩어나가자 농민들이 농협을 상대로 보상을 요구했다. 그런데 국가는 농협을 감싸며 ‘긴급조치 9호’를 내세워 농민들을 탄압하였다. 가톨릭농민회는 ‘피해보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피해조사에 착수하고, 사건의 진상을 알리고 농민 탄압 중지를 요구하는 기도회 노력을 지속하였다. 1978년 4월, 광주 북동성당에서 기도회와 단식투쟁을 하여 결국 일부 보상을 받았고, 이후 감사원을 통해 고구마 수매자금 중 80억을 부정유출한 농협의 비리를 밝혀낸 사건이다. (편집자 주)

경북 농민들이 군 및 농협에서 알선한 감자씨를 심었으나 싹도 나지 않는 바람에 감자농사를 망치자 피해 보상을 요구한 사건이다. 가톨릭농민회와 안동교구 사제단이 나서서 피해액 전액을 보상받았으나, 이 보상운동에 앞장섰던 농민회 회원 오원춘이 납치되어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납치되었다 풀려난 오원춘이 양심선언하자, 안동교구는 이 사실을 전국에 폭로하고 대대적인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이로 인해 가톨릭농민회에 대한 대통령특별조사령이 내려졌고, 가톨릭농민회는 온갖 비방과 탄압, 음해를 받게 되었다. 오원춘은 허위사실을 유포한다며 징역 2년형을 받고 구속되었으나 박정희 사망 후 긴급조치가 해제되면서 석방될 수 있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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